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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 단전 등 연이은 철도사고...코레일의 유지보수 독점 맞나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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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역에서 발생한 무궁화호 탈선사고 현장.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역에서 발생한 무궁화호 탈선사고 현장.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수서고속철도(SR) 천안아산역~평택지제역 사이인 통복터널에서 발생한 전차선 차단사고로 160여개 열차가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2시간 넘게 지연 운행됐다.

 이 사고는 터널 내 방수 하자공사에 사용된 유리섬유질의 부직포가 전차선으로 떨어지면서 전기공급에 이상을 일으킨 탓으로 추정된다.  또 머리카락처럼 잘게 떨어져 선로 주변에 있던 부직포 조각들이 사고 구간을 지나던 고속열차의 환기장치 등에 빨려 들어가면서 전기장치에도 고장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SR의 고속열차(SRT) 32편성 가운데 절반 넘는 17편성이 정비를 받아야만 했다. 그 여파로 다음날에도 20편 가까운 열차 운행이 취소돼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앞서 작년 11월 6일 저녁에는 서울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가 탈선했다.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레일 파손 같은 선로 결함 때문인 것으로 좁혀지는 분위기다. 또 지난해 7월 1일 발생한 대전조차장역 인근의 SRT 열차 탈선사고는 폭염으로 선로가 솟아오르는 '장출' 현상 탓이란 추정이 많다.

지난해 7월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일어난 SRT 열차 탈선사고 현장. 뉴스1

지난해 7월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일어난 SRT 열차 탈선사고 현장. 뉴스1

 지난 한해 발생한 여러 철도 사고 중 이들 대표적인 사례의 공통점은 바로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다. 이들 사고 모두 코레일이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구간에서 일어났다.

 현재 서울지하철 등 도시철도를 제외한 고속·광역·일반철도에 깔린 선로와 운행시설의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독점하고 있다.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제38조에 '철도시설유지보수 시행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2004년 철도 건설과 운영을 한꺼번에 하던 철도청 체제를 바꿔 철도시설은 국가가 건설·소유하고, 운영은 별도 운영사가 하도록 구조개혁을 했다.

 이 과정에서 철도시설의 유지보수는 철도운영자가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코레일에 위탁하게 됐다. 당시 고속·광역·일반철도 운영사는 코레일이 유일했다.

대전역에 나란히 서있는 국가철도공단 본사(오른쪽)와 코레일 본사. 연합뉴스

대전역에 나란히 서있는 국가철도공단 본사(오른쪽)와 코레일 본사. 연합뉴스

 그러나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변했다. 도시철도가 외곽으로 연장돼 광역철도 구간까지 운행하면서 새 운영사가 여럿 나오고, 비효율적인 구조도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지하철 4호선 진접선 연장구간으로 건설은 재정으로 했고, 운영은 서울교통공사가 하지만 유지보수는 별 연관 없는 코레일이 맡고 있다. 연장구간이 광역철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전과 탈선 등 원인이 유지보수와 밀접한 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코레일에 계속 유지보수 독점권을 주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으로 제38조에 있는 유지보수업무의 철도공사 위탁 규정을 삭제하자는 것이다.

 조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2016년 말 SRT 개통으로 새로운 고속철도 운송사업자가 나왔고, 향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이 개통하는 경우 더 많은 철도운송사업자의 등장이 예상된다”며 “코레일만이 철도시설유지보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건 변화하는 철도환경과 현실에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지하철 4호선 연장구간인 진접선. 유지보수를 코레일이 담당한다. 사진 국가철도공단

서울지하철 4호선 연장구간인 진접선. 유지보수를 코레일이 담당한다. 사진 국가철도공단

 정부를 대신해 철도시설 건설과 관리를 담당하는 국가철도공단도 법 개정에 찬성한다. 공단 관계자는 “유지보수를 독점한 코레일이 인건비 위주로 집행하는 탓에 정작 보수비 비중은 작고, 제때 보수를 못 하는 문제도 있다”며 “유지보수 독점을 없애면 기계화·자동화를 통해 인력 효율화가 추진되고 코레일도 운영에만 전념할 수 있어 경영 효율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철도노조는 반발한다. 철도노조는 “유지보수 위탁사업자를 나누겠다는 건 철도 쪼개기를 통해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라며 “안전과 효율성을 추구하려면 운영과 시설유지보수업무의 일원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원 2만여명 중 유지보수인력은 8000여명가량이다.

 코레일도 유지보수 업무는 철도 운행선상에서 이뤄지는, 철도안전과 매우 밀접한 사업이므로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법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전문가 의견도 다소 엇갈린다. 황승순 우송대 교수는 “철도는 운영자 소관인 차량과 궤도, 신호, 전차선, 통신이 서로 기계적으로 연동된 시스템 산업”이라며 “운영과 유지보수를 분리하면 소모적인 책임 공방만 이어질 게 뻔하다”고 말했다.

 반면 유지보수 체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코레일이 철도시설 유지보수를 전담하는 게 효율적이었던 상황이 해소된 지 오래됐다”며 “철도운영사의 다양화 추세에 맞게 법 개정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철도사고가 발생하면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 뉴스1

철도사고가 발생하면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 뉴스1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크고 작은 철도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에서 더는 코레일의 유지보수 능력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법 개정 여부와 별개로 6월께 나올 '철도안전체계 심층진단 및 개선방안 연구용역'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우에 따라 유지보수는 물론 코레일에 위탁 중인 관제업무까지 대폭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 속에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안전'이다. 조직 간 이해득실 등을 떠나 오로지 철도의 안정적인 운행과 승객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판단하고 결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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