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게임의 글로벌 ‘찐팬’은 누구일까.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조사 결과 1인당 K게임에 고액을 쓰는 이용자들은 중동 지역에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게임업체들이 그동안 세계 게임 시장 1~3위를 차지하는 미국ㆍ중국ㆍ일본에 공들여온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지금 중동 게임 시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무슨 일이야
콘진원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2년도 해외시장의 한국 게임 이용도 조사’에 따르면 카타르는 1인당 월평균 76.21달러(약 9만 6200원)를 한국 게임을 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아랍에미리트(UAE)로 68.98달러(8만 7100원). 지난해 1위를 차지했던 중국은 60.77달러(7만 6700원)를 기록하며 3위로 밀렸다.
이번 조사는 16개국 6800명 대상으로 진행됐다. 세계 게임 시장 규모 기준 상위 9개국에 중동 5개국(카타르ㆍUAEㆍ이집트ㆍ사우디아라비아ㆍ요르단)과 서남아시아 2개국(인도ㆍ파키스탄) 등 신흥시장 7개국이 새롭게 추가됐다. 보고서는 “천연가스와 석유가 경제의 중심인 카타르와 UAE는 1인당 국민소득이 각각 6만 8000달러, 4만 3000달러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게임 소비 지출이 높은 이유를 ‘오일머니’에서 찾았다.
이게 왜 중요해
한국 게임에 실제로 지갑을 여는 ‘찐팬’이 중동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오랫동안 한국 게임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중국이었다. 2021년 기준 중국 게임 시장 규모는 2965억 위안(약 55조원)으로 한국(19조원)의 3배 수준이자 한국 게임 수출의 40%가량을 담당하는 핵심 기지다. 지난해 말 중국 정부가 1년 6개월 만에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 등 한국 게임 7종에 대한 외자 판호(版號ㆍ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증)를 발급하면서 숨통이 트였지만, 2017년 사드(THAADㆍ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에 대한 보복으로 한한령(限韓令) 시행 이후 수출길이 막혔다 풀리기를 반복되면서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됐다.
게임사들은 일제히 북미와 유럽 시장으로 눈을 돌렸지만 고전하고 있는 상황. 게임 산업을 이루고 있는 근간이 다른 탓이다. 콘진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게임 시장 규모는 2096억 5800만 달러(약 265조원)로 1위는 모바일 게임(42.6%), 2위는 콘솔 게임(26.6%)이다. 유럽(46.3%)과 북미(35.4%)가 전 세계 콘솔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를 공략하는 것이 숙제다. 한국은 모바일 게임(57.4%)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 올해 출시 예정인 게임들이 콘솔과 PC를 오가는 크로스 플랫폼을 지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동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국부펀드(PIF)는 지난해 국영 게임사 새비게임즈 그룹을 설립하고, 엔씨소프트(9.26%)와 넥슨(9.14%) 지분을 매입하면서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지난해 9월 총리로 임명된 왕세자가 2030년까지 게임 및 e스포츠에 1420억 리얄(약 54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혀 다시 화제가 됐다. 그의 공약대로 사우디 게임 산업 비중이 GDP의 1%까지 커질지는 모르겠지만, 게임 시장에서 중동의 존재감이 커진 것은 확실하다.
K게임 얼마나 많이 하길래
이들 국가는 실제 K게임 이용 시간도 길었다. 파키스탄은 주말 이용 기준 1인당 약 4시간(237분)동안 한국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UAE(235분), 3위는 카타르(229분)가 뒤를 이었다. 파키스탄은 위치상 서남아시아에 속하지만, 중동과 같은 이슬람 문화권으로 묶인다. 중동 5개국에서 이슬람력으로 9월에 해당하는 라마단 기간에 게임 이용 시간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과반인 것도 눈에 띈다.
한국 게임을 즐기는 이유에 대해 기존 9개국 중 8개국이 ‘이용하기에 흥미롭고 재미있어서’를 꼽은 반면, 신흥 시장 7개국 중 5개국은 ‘주변에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서’를 택했다. 이슬람권의 PC·온라인 게임 선호도 역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인 펄어비스의 ‘검은사막’이 가장 높았다.
K-게임 성장세는?
게임은 대표적인 수출 효자 상품으로 꼽히지만 지난해 실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콘진원이 지난달 공개한 2022년 상반기 게임 수출액은 36억 5391만 달러(약 4조 6148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했다. 상반기 게임 매출액은 10조 548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 증가했고, 콘진원은 하반기 실적을 포함한 연간 매출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전망했다. 2019년 5.1%, 2020년 12.8%, 2021년 9.2% 등 최근 3개년과 비교하면 주춤한 성장세다.
이런 상황에서 급부상한 신규 시장 내 성과를 이어가려면 현지 이용자들의 불편에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 콘진원은 보고서에서 “‘게임을 접속하는 서버 속도가 느리다’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온 국가가 많아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하는 점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스페인과 사우디에서는 ‘자국어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며 “스페인어와 아랍어 지원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