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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과 악마화' 방패 꺼내든 이재명…野일각 "당당하게 싸워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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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12월 28일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에서 열린 제51차 광주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12월 28일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에서 열린 제51차 광주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사법리스크에 휩싸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부·여당을 겨냥한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를 강하게 규탄하는 가운데, 때론 검찰 수사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으로 지지층 분노 여론을 자극하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성남 FC 후원금 의혹 사건으로 10~12일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0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회의 종료 직전 이례적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탁자를 툭툭 치며 “잠깐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리는데”라고 운을 뗐다. 회의장엔 일순간 정적이 흘렀고, 이 대표는 짧게 뜸을 들인 뒤 “김남국 의원이 돈 봉투 받는소리 같은데”라고 말했다. 그제야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고, 이 대표는 한술 더 떠 “우리 김성환 의원이 김 의원한테 돈 봉투 전달한 소리가 아닌가”라고 말을 이어갔다. 김남국 의원은 웃으며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라고 거들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2022년 12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 민주당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청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체포동의안은 총 재적 299명, 총투표수 271명, 부161표, 가101표, 기권9표로 부결됐다. 장진영 기자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2022년 12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 민주당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청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체포동의안은 총 재적 299명, 총투표수 271명, 부161표, 가101표, 기권9표로 부결됐다. 장진영 기자

이 조롱성 발언의 타깃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었다. 한 장관은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웅래 민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전 5분 간 범죄 혐의를 상세히 설명하며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녹음돼 있다”고 말했다.

한 장관에 대한 야권의 분노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날 이 대표의 발언을 두고선 정치권이 술렁댔다. 노 의원 체포 동의안 부결을 두고 여권에서 “이재명 방탄 연습”이란 격한 반발이 터져 나온 직후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비리 혐의를 받는 노 의원 체포 동의안을 완력으로 막은 것에 대해 농담 따먹기를 할 때냐”고 비판했다.

민주당 일각에서조차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비명(非明·비이재명)계 의원은 1일 통화에서 “이 대표 본인 사법리스크에 이어 노 의원 체포 동의안 부결로 당이 흔들흔들하는데 꼭 저런 가벼운 발언을 해야 했나”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지난달 29일 검찰 출석 계획을 묻는 취재진에게 “대통령 가족 수사는 언제 하는 지도 관심 가져달라”고 받아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여권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 가족 의혹을 철저하게 제기하는 것은 민주당 자유”라면서도 “자신에 대한 난처한 질문을 한번 회피하기 위해 예민한 대통령 가족 문제를 가볍게 끌어다 쓴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8일 오후 광주 송정매일시장에서 '검찰독재 야당탄압 규탄 연설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8일 오후 광주 송정매일시장에서 '검찰독재 야당탄압 규탄 연설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정부에 대한 분노 여론을 자극하는 수위 높은 발언도 최근 이 대표는 잇따라 내놓고 있다. 1일 당 신년인사회에서 “폭력적, 일방적 지배가 난무하는 시대”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전날 공개한 신년사에서는 “민주주의를 말살시키고 있는 검찰 정권의 야당 파괴, 정치 보복의 폭주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이전에도 자신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두고 “윤 정권의 망나니 칼춤”(23일)이라고 비난하거나,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 사태를 놓고 “(윤 대통령은) 안방 여포”(28일)라고 공격했다. ‘안방 여포’란 집안에서만 소설 삼국지의 등장인물 여포처럼 힘자랑하는 것을 비꼬는 표현이다.

‘쌍·대·성’(쌍방울, 대장동, 성남FC) 의혹을 수사 중인 검사들도 공격의 타깃이 됐다. 민주당은 지난달 23일 검사 16명의 실명과 소속, 얼굴 사진 등을 담은 도표를 공개했다. 이를 두고 같은 당 이상민 의원조차 “몰상식적이고 위험스럽고 이성을 잃은 행태”라고 비판했다.

정부·여당은 물론 수사 기관까지 타깃으로 한 전방위적인 비판을 두고 진보 진영에서조차 “악마화”라는 지적이 나왔다. 진보 논객인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최근 발간한 저서 『퇴마 정치-윤석열 악마화에 올인한 민주당』에서 “민주당은 대선이 윤석열 승리로 끝나자 ‘윤석열 탄핵’까지 거론하는 ‘퇴마 정치’에 목숨을 걸었다”며 “민주당은 윤석열 때리기에 올인해 윤석열을 키워주고 정권을 넘겨준 오만과 어리석음에 대해 처절히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2023 신년인사회에서 막걸리와 식혜로 건배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2023 신년인사회에서 막걸리와 식혜로 건배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민주당 수도권 의원은 통화에서 “팩트에 기반한 냉정한 대응을 해도 모자란 데, 감정적 대응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전했다. 1일 신년인사회에서 당 상임고문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계묘년을 언급하며 “토끼는 굴을 3개 판다고 해서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 당도 플랜2, 플랜3을 마련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 것도 미묘한 해석을 낳았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에게 사법리스크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을 주문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검찰 출석’이란 승부수를 띄운 이 대표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간 연장과 일몰법(日沒法)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 소집 방침을 정해야 한다. 국정조사는 7일, 임시국회는 9일 종료된다. 이 대표의 검찰 출석 예정일은 10~12일이다. 자칫 10일부터 곧바로 임시국회를 열 경우 “이재명 방탄용 임시회 소집”이란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당과 국회를 방패로 삼는다는 오해를 사지 말고 맨몸으로 당당하게 무고함을 입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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