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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통합의 공동체를 여전히 꿈꾸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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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마음이 무겁다. 어두운 경제 상황 탓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앞서는 건 없다. 여러 지표가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음을 증거하는데도 국민 다수 삶의 수준 향상을 실감하기 어렵다. 외려 여의도에서나 거리에서나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목소리만 크게 들려온다.

정확하게 1년 전 이즈음 대통령선거 열기가 뜨거웠다. 단골 메뉴인 후보 단일화가 시작했다. 대통령 후보 모두 앞다투어 역시 단골 레퍼토리인 국민통합을 내걸었다. 국민통합이 중도층 공략을 위한 예정된 전략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통합을 위한 정치적 노력이 이뤄질 거라고 일말의 기대를 품었건만, 나는 한국 정치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서생이었다.

대선 이후 우리 사회는 곧바로 ‘두 국민(two nations) 국가’로 돌아갔다. 두 국민이란 말을 주조한 이는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다. 청년 시절 작가였던 디즈레일리는 1845년 내놓은 『시빌, 또는 두 국민』이란 소설에서 영국의 두 국민, 즉 부자와 빈민을 ‘한 국민(one nation)’으로 통합해야 함을 역설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이런 계급 균열에 전반에는 이념과 지역 균열이, 후반에는 세대와 젠더 균열이 중층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이제 어느 나라든 ‘복합적 두 국민 국가’를 이루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공동체의 모습은
‘두 국민 국가’ 사이의 문화 전쟁
철 지난 국민 동원 방식서 벗어나
다양성 존중 통합의 새해 됐으면

두 국민 국가의 현재적 버전은 ‘문화 전쟁(culture war)’이다. 문화 전쟁은 1991년 사회학자 제임스 헌터가 발표한 『문화 전쟁: 미국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투쟁』이란 책으로 알려진 말이다. 헌터는 ‘결정적 이슈들(hot buttons)’, 구체적으로 낙태·프라이버시·동성애·총기소지 등을 쟁점으로 미국 사회가 둘로 나누어져 있다고 분석했다. 문화 전쟁의 힘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낙태법 입법 예고가 공화당의 압승을 저지한 사례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두 국민 국가와 문화 전쟁은 경험적 자료를 통해 입증된다. 지난해 6월 국제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정책연구소는 미국·독일·중국·일본 등 세계 28개국의 ‘문화 전쟁’에 대한 조사를 발표했다. 그 나라들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문화 전쟁 강도는 12개 항목 중 7개에서 1위를 기록했다. 빈부·정당·이념·종교·남녀·세대·학력 간의 긴장이었다. 이민과 인종에서만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K 컬처’가 세계 최고의 역량을 선보이듯 ‘K 갈등’ 역시 세계 최고의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경기 침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정치마저 지나친 문화 전쟁으로 적지 않은 국민에게 불만과 상실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존재다. 그런데 공동체의 규범과 질서를 제공해야 할 정치가 희망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불만과 상실감, 마음의 고통을 느낀다. 사상가 파커 파머가 2011년 출간한 『민주주의의 마음을 치유하기』에서 말한 ‘비통한 자들의 정치’다.

파머는 21세기 우리 시대에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 있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는 정치에 있다. 정치란 본디 권력 추구 이전에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된 노력이다. 오늘날 문제는 이 정치가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절박한 인간적 요구를 무시함으로써 민주주의와 공공선에 기여해야 할 본래의 의미를 상실해버렸다는 데 있다고 파머는 통렬히 고발한다. 비통한 자들의 정치는 미국 정치의 현실이자 한국 정치의 현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백면서생이라 하더라도 공동체 전체를 위한 사회통합이 사실상 물 건너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보수와 진보가 부딪치고, 자본과 노동이 충돌하고,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이 대결하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갈등하는 것이 대한민국 공동체의 민낯이다. 더하여, 국민통합에 대한 일방적 강조에 담겨 있는 정치적 의도 또한 모르지 않는다. 국민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따라서 익명의 국민을 동원하려는 국민통합은 철 지난 방식이다. 21세기에 요구되는 통합은 권위주의 시대의 국민통합이 아니라 이념·세대·젠더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주의 시대의 사회통합이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사회통합을 일구기 위해 여러 주체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보수 정부라면, 마침 보수적 사회통합 담론이 존재한다. 6년 전 겨울 돌연 세상을 떠난 박세일 교수의 ‘공동체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공동체의 가치와 자유주의의 원리를 결합하려는 이념을 뜻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성찰적 배려와 자율적 책임을 중시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는 한국 보수의 소망스러운 정치 철학이다.

찢긴 공동체를 이대로 놓아둘 순 없다. 내가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까닭은 하나다.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과 분배는 협치와 통합을 추구하는 포용적 정치사회 및 시민사회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통합의 공동체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서생의 희망을 2023년 벽두에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