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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세연의 퍼스펙티브

평어체는 수직 사회 허무는 도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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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수평 사회의 대화법

김세연 전 국회의원

김세연 전 국회의원

‘평어체(平語體)’는 표준어로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경어체(敬語體)’에 대비되는 어법으로 ‘상대방을 낮추어 대하지 않는, 예의 갖춘 말놓기’라고 한다. 불필요한 격식을 버리는 점에서 반말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기본이라는 점에서 본질이 다르다. 평어체는 상시적 수평 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시적 계급 역전 상황극 놀이인 ‘야자 타임’과도 다르다. 평어체는 복잡한 사회적 위계 속에서 경어체를 쓸 때 들어가는 뇌의 정보처리 부담과 이를 말과 글로 옮기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해준다.

인터넷에서 높임말을 검색하면 ‘대화의 주체가 임금이거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쓰는 언어 또는 말하는 것’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임금’ 없어진 지가 벌써 110년이 넘는데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임금’이 남아있는 것일까. 하긴 20대들조차도 ‘정부가 집행하는’이라고 해야 할 대목에서 ‘나라에서 해주는’이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데, 그때마다 ‘나라-나라님-임금’이 연상돼 마음이 개운치 않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완전한 공화국을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쟁취한 공화국’이 아닌 ‘주어진 공화국’에서 나타나는 지체 현상인 것 같다.

갑질하는 사람에겐 ‘나보다 아래’라는 수직적 계급 의식 있어
방송 예능에선 큰 나이 차이에도 평어체 사용 이미 자연스러워
처음이 어색하지 실제 써보면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 경험할 것
진영·세대·성별 간 불신·분열 허무는 새로운 언어로 자리 잡기를

‘님’ 호칭도 처음엔 어려웠다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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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함부로 갑질 못하는 분위기가 됐지만 갑질 관련 기사가 여전히 하루가 멀다고 쏟아진다. 갑질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갑질하는 자의 의식 속에 숨어있는 “너는 나보다 아랫것이야”라는 수직적 위계 관념이다. 갑질하는 자들이 더는 권력과 부와 연공서열의 위계 사다리 위에서 횡포를 부리게 놔둬서는 안 된다. ‘네가 뭔데 감히 나에게’, ‘너 나이 몇 살이야’ 류의 지위·나이를 무기로 삼는 언어폭력은 차단돼야 한다. ‘상대 높임법’의 정의를 보면 ‘듣는 이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을 때 쓰는 높임 표현’으로 나온다. 과장하여 표현하면 ‘나이’와 ‘지위’로 군림하는 것을 우리말 문법이 정당화한다고 볼 수도 있다.

처음 평어체를 사용하려면 어색해서 입이 잘 안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는 늘 변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현대 한국인은 훈민정음 원문을 읽기 어렵다. ‘상대 높임법’ 어미로 ‘-하오’와 ‘-하게’를 일상 생활에서 쓰는 사람을 요즘 만나본 적 있는가? 이미 교과서에서만 존재하는 표현이 됐다. 언어 습관의 변화로 논쟁이 많았던 사례에 ‘님’ 호칭 도입이 있다. 2000년 1월 CJ에서 ‘님’ 호칭을 도입한 이후 여러 기업으로 퍼져나갔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새파란 신입사원하고 호칭에서 똑같은 취급을 당하라고!” 같은 부장·이사·상무들의 불평불만이 하늘을 찔렀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2020년 초면의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곧바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세연님’으로 불리는 것을 경험했다. 호칭만 보면 20년 만에 세상이 한번 바뀐 것이다. ‘부장님’ ‘상무님’ ‘의원님’ 호칭이 아니라 바로 ‘님’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평어체가 교수·학생 친밀감 높여

변화하는 트렌드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영역 중 하나가 방송 예능 프로그램이다. 학교 교실에서의 동급생들 간에 대화하는 설정이긴 하지만, JTBC ‘아는 형님’에서 강호동 씨와 나이 차가 두 배 이상 나는 20대 초반 출연자 간의 전면적인 평어체 사용은 이미 7년 전에 시작됐다. 실제 학교 현장에도 평어체가 진입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의 김진해 교수가 ‘의미의 탄생: 언어’라는 과목에서 평어를 사용하는 사례가 알려져 있다. 학생들이 다른 교수에게 문자를 보낼 때는 첫머리에 꼭 넣어야 할 ‘교수님,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일교차가 심한데 늘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류의 표현이 생략되는 것이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진해, 다음 주 월요일에 휴강이야?’ 이렇게 묻는 장면도 나온다. 학생들은 인터뷰에서 교수와 학생 간, 학생 상호 간 친밀감과 자유로운 소통의 정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평어체 실험을 직접 해봤다. 주변에 제안했을 때 많은 경우 난색을 보이며 사양했다. 다행히 열린 마음과 생각을 가진 동료 그룹이 있어 이들과 단체대화방에서 실험에 들어갔다. 최대 연령차가 20세가 넘어 처음부터 모두 흔쾌히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먼저 온라인에서 써보다가 두 달 쯤 지나 오프라인 대면에서도 써봤는데, 첫 순간의 어색함을 넘기고 나니 이내 모두 적응했다. 한동안 평어만 쓰다가 제3자가 함께 있는 시간에는 다시 경어체를 쓰다가 다시 평어체로 돌아가고 하는 식의 자유로운 혼용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외 다른 영역의 다른 그룹들에서도 오프라인 회의 시 즉석 제안을 통해 평어체 실험을 해보고 있는데, 반응 중 “생각보다 해볼 만하네”, “먼저 아이디어 회의에서부터 적용해보면 좋겠다”의 빈도가 높았다.

평어체는 21세기 단발령?

“무슨 말인지 다 알겠는데, 그렇다고 꼭 평어체를 써야만 수평적 소통이 가능한 건 아니잖아?”라는 반론이 자주 나온다. 익숙함에서 벗어나기를 꺼리는 인지상정(人之常情)상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경어를 쓰던 주변 사람들과 하루, 아니 단 몇 시간 만이라도 평어체를 써보기를 추천한다. 직접 써보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반대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 번 써보면 의외로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평어체를 써보면 경어체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수직적 언어 위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소통을 경험할 수 있다. 이때 밀려드는 의외의 해방감에 오히려 당혹스러울 수 있다.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내 입으로 말해보고, 내 몸으로 실천해보면 달라질 것이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의 ‘7·4제’ 시행을 강력히 추진했던 이유도 행동의 변화에서 의식의 변화를 끌어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행동과 의식이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언어를 바꿔보면 바뀐 언어로 인해 관점과 의식이 함께 바뀔 것이다.

유교적 세계관의 또 다른 산물이었던 외모 기준에 큰 변화가 있었을 때 어떤 사회적 반응이 있었는지 되돌아보자. 『효경』에 나오는 ‘신체발부 수지부모’, 즉 ‘몸과 머리털, 피부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다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에 따르던 선비들이 1895년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지자 ‘목이 잘리더라도 두발(頭髮·머리카락)을 자를 수는 없다’고 분개하며 극렬히 반대했다. 을미사변 후 집권한 김홍집 내각은 친일내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유림은 전국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단발령과 음력 폐지 같은 정부 시책에 강력히 대항했다. 의병 진압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내각은 무너졌고 김홍집도 피살됐다. 지금 우리나라에 60여만 명이 이·미용업계에 종사하고 있고 매일 수백만 명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을 텐데, 100여 년 전에 머리카락 자르라고 하면 그런 격렬한 반응이 나왔었다.

수직적 통제 문화 벗어나야

세상은 언제나 바뀌고 있다. 이전에 절대적이었던 가치도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적 가치가 되기도 한다. 환경이 변하면서 의미와 해석이 달라지며,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들이 늘 나오기 마련이다. 모든 언어에 격식체가 있을 것이나 우리말처럼 격식체가 복잡하게 발달한 경우도 흔치 않다. 언어라는 것이 개인의 의식과 사회의 문화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기 때문에 이 습관과 관습을 바꾸는 것은 길고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역사적·문화적으로 익숙한 수직적 지배·통제·복종의 의식과 문화를 우리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수평적 소통·연결·협력을 우리 사회의 주된 구성 및 운영 원리로 받아들일 때가 됐다. 평어체는 이런 변화를 위한 촉매로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걸핏하면 진영으로 쪼개지고, 세대 간에 서로 이해 못 하며, 성별 간에 갈등하는 불신과 분열의 시대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평어체 사용이 그 시절 단발령만큼이나 불쾌하고 도발적인 제안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황제와 대신이 밀어붙인 1895년 1차 단발령은 실패했다. 2022년 우리는 공화국 시민 각자가 생활 속에서 행하는 작은 실천들을 모아 단단하고 지속가능한 바탕을 만들고, 이 토대 위에 새로운 습관과 의식과 문화로 새집을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세연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