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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유가족다움’이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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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2012년 미국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 6살 딸 에밀리를 잃은 로비 파커는 10년간 음모론에 시달렸다. ‘유가족답지 않다’는 것이 그가 고통받은 유일한 이유다. 파커는 참사 이틀 뒤 유가족 중 최초로 언론 인터뷰를 했다. 예상치 못한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잠시 어색한 웃음을 지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을 본 음모론자 알렉스 존스가 파커를 “자녀를 잃은 연기자”라고 매도했다. 샌디 훅 사건은 “총기규제를 위해 정부가 조작한 사건”이라 주장하며 후원금을 쓸어모았다. 미국 법원은 지난 10월 1조원대의 명예훼손 판결로 존스를 단죄했다. 하지만 파커의 과거 인터뷰 영상엔 여전히 “왜 딸을 잃고도 펑펑 울지 않느냐”는 조롱이 이어진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이태원참사 국회 국정조사에 참석해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이태원참사 국회 국정조사에 참석해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한국 사회에서도 ‘유가족다움’은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상처받은 이들을 옭아맸다. 눈물을 흘리며 절망해 하는 모습, 이 전형성을 넘어 유가족이 동정 이상의 감정을 요구하는 순간 평범한 부모들은 정치적 집단으로 매도되곤 했다. 세월호와 천안함 생존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연구한 서울대 김승섭 교수는 “울면 운다고, 웃으면 웃는다고, 싸우면 싸운다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다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중)”며 ‘유가족다움’을 견뎌내는 것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가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인지에 더 관심을 쏟는다고 했다. 마치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피해자다움을 강요받아왔듯이, 유가족도 유가족다움을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세상의 초점은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옮겨갔다. 참사 때마다 누가 정권을 잡았느냐에 따라 진영 논리도 작동했다. 김 교수의 PTSD 조사에 응했던 한 천안함 생존 장병은 “보수는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했고, 문재인 정부는 서해 피격 공무원의 월북을 단정 짓고 도박 빚을 공개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도 ‘유가족다움’이란 굴레가 씌워지고 있다. 국가애도기간 때와 달라진 건 유가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비참함의 전형성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진영 논리가 작동하며 막말이 쏟아진다. 국정조사에선 장관이 “이미 골든타임이 지났다”고 반문까지 한다. ‘책임을 딱딱 묻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기자 생활을 하며 여러 유가족을 만나왔다. 스토킹부터 묻지마 살인까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자녀와 부모를 잃은 이들의 얼굴엔 다양한 슬픔이 새겨져 있었다. 유가족다움만으론 규정할 수 없는, 하지만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고통이 전해진 그 순간을 기억한다. 목메어 흐느껴도, 소리쳐 진상조사를 외쳐도 모두 유가족이다. 유가족다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