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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위기의 2023…혁신·연대로 넘을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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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해 경제 전망은 어둡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우려했던 인플레이션과 부채 쓰나미, 수출 퇴조, 금리 인상 등이 모두 현실화하며 세계경제는 팬데믹 기간 쏟아부었던 과잉 유동성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거시적 불안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을 2%대로 끌어내리기 위한 자이언트 스텝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제로 금리에 끌려 주택과 암호화폐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추락했다. 하지만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나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피벗(통화정책 전환)은 없다”고 못 박는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을 때 단칼에 잡아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둘째, 중국 변수의 불확실성이다.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지난 3년간 묶여 있었고 성장률도 하락했다. 미·중 갈등 격화 속에 갑작스러운 제로 코로나 정책 철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확진자 폭증으로 의료 시스템 붕괴가 현실화한다든가, 14억 인구로의 폭발적 확산 과정에서 새로운 변이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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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새해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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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뒤늦게 국경을 열기 시작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닫는 배경이다.

셋째, 에너지 가격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세계경제, 특히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럽 경제에 먹구름이 더해진다. 전쟁이 확전되거나 핵무기 사용 같은 돌발 상황은 물론이고, 에너지 가격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효과만으로도 금리 인상 장기화로 경기 회복에는 악영향을 준다. 중국이 연착륙에 성공하고 성장률을 회복한다면 그 또한 에너지 수요를 높일 수 있다. 춥고 어두운 시기를 겪어야 한다면 희생을 최소화하고 재도약을 위한 힘을 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얼음이 녹고 봄이 올 때 꽃을 피울 수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돕고 연대해야 한다.

첫째, 한국이나 미국 모두 저성장 경제에서 실질적 완전고용이라는 퍼즐을 풀어야 한다. 한국은 2%대, 미국은 3%대 실업률을 실질적 완전고용으로 본다. 미국은 코로나19로 인한 이직과 인구 유입 감소가 문제고,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다. 경기가 좋아 고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경제활동인구 자체가 줄어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기술 변동으로 인한 일자리의 질 하락과 노동생산성 하락이 더해지고 있다. 직장에서 비전을 찾지 못하는 젊은 세대는 ‘조용한 퇴직’을 하고, 노년을 지탱하려고 노동시장에 머무르는 대규모 고령 노동력까지 가세하니 살기는 어려운데 실업률은 낮아진다. 마음 놓고 출산·양육하며, 일하고 은퇴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지 않으면 경기 회복을 위해 실업률을 높여야 하는 아이러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둘째, 위기는 혁신을 위한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보고서에서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최고의 방법은 혁신 투자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에는 1997~98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대응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당시 한국 경제의 기둥이던 재벌의 절반이 몰락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고 기술집약적 벤처기업을 육성했다. 그 결과 97년 100여 개에 불과하던 벤처기업은 2001년 말 1만1000개로 늘어났다. 또 97년 전체 기업 R&D의 12%였던 중소기업 비중이 2006년 24%로 늘었다. 오늘날 테헤란로와 판교 테크노밸리를 가득 채운 기술집약적 기업들은 이렇게 위기 속에서 잉태됐다. 윤석열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명박 정부의 대응뿐 아니라 97년 IMF 위기 때 김대중 정부의 대응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예를 들어 택시 대란과 화물연대 사태는 노동개혁과 더불어 모빌리티 산업에 대한 대대적이고 상생적 혁신 투자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셋째,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그 나라 정치에 따라 각국의 정책 대응은 크게 달라진다. 호주는 경제위기 대응에서 좌파 집권 때는 복지 지출을 확대하고, 우파 집권 때는 축소로 대응했다. 반면에 벨기에·네덜란드 등은 좌우에 상관없이 경기 확대와 축소 정책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후자가 경제위기에 훨씬 잘 대응한다. 여야가 행정부와 국회를 각각 장악한 상태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한국 정치가 자칫 최악의 경제위기 대응을 만들어낼 수 있다. 경제위기 대응에서 흔들리지 않는 최소한의 공통분모에 합의할 수 있다면 여야는 설사 갈등하더라도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위기를 함께 극복하려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외환위기 때 자발적 금 모으기는 한국인의 위기 극복 의지를 보여줬고, 빠른 위기 극복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직면한 연금·노동·저출산·고령화 등 난제는 고통 분담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한국인은 해방 이후 숱한 역경을 헤치고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일궜다. 한국인의 위기 극복 유전자가 다시 빛날 새해다.

장덕진

장덕진

☞장덕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이다. 시카고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압축성장의 고고학』 『한국사회, 어디로?』 『복지정치의 두 얼굴』 등의 저서가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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