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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스스로 교황 물러난 가톨릭 수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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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31일 선종한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장례미사가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전으로 열린다. 사진은 2005년 4월 교황에 선출될 당시 모습.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선종한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장례미사가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전으로 열린다. 사진은 2005년 4월 교황에 선출될 당시 모습. [AP=연합뉴스]

8년간 교황직에 있다가 생전에 사임했던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장례미사가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전으로 열린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달 31일 95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난 베네딕토 16세의 본명은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다. 그는 뮌헨 대학과 프라이징 대학을 거쳐 본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20년 넘게 신학자로 활동하며 숱한 저서를 출간했다. 고인은 생전에 “만약 어쩔 수 없이 무인도로 가야 한다면 두 권의 책을 가지고 가겠다. 성경과 아우구스티노(성 오거스틴)의 『고백록』”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학생 신부였을 때 독일 뮌스터 대학교수였던 요제프 라칭거로부터 수업을 들었다. 라칭거 교수가 너무 깐깐해 김 추기경이 논문 작성에 애먹었다는 후문도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교황청에 입성했다. 이후 남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세속주의, 무신론 등에 맞서 보수적 입장을 강하게 취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산주의와 맞서 싸웠다면, 베네딕토 16세는 현대사회의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무신론과 소비 만능주의에 맞서 싸웠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265대 교황에 선출됐고 당시 콘클라베(교황 선출 투표)에서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던 사람이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다. 2013년 2월 베네딕토 16세는 건강 문제로 교황직을 사임했다.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 만에 생전에 퇴위한 교황이 된 것이다. 이후 명예 교황(Pope Emeritus)으로 지내왔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전한 마지막 메시지는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였다. 교황청 공보실은 1일(현지시간) 2006년 8월 29일 독일어로 작성한 2페이지 분량의 영적 유언을 공개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유언에서 장례절차나 시신 안치장소에 대해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베네딕토 16세의 장례식도 현직 교황에 대한 절차에 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교황청은 2일 오전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시신을 안치하고 3일간 공개하기로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교황청은 장례 미사를 베네딕토 16세의 뜻에 따라 최대한 간소하게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임 교황 대다수가 잠들어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묘지에 묻힐 전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새해 첫 미사 강론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우리의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하느님에게 가는 길에 동행해달라”고 기도했다.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그의 관대함과 환대, 의미 있는 대화를 항상 기억할 것이다. 자신의 원칙과 신앙심에 따라 평생 교회에 헌신한 훌륭한 신학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국인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그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 많은 사람에게 특별한 지도자였다”며 “세계는 가톨릭 교회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자 영리한 신학자를 잃었다”고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셨고, 한반도 평화에 앞장서셨다”면서 “‘주께서 내게 더 기도에 힘쓰라며 산에 오르라 하셨다’던 교황님의 마지막 삼종기도 말씀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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