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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테이프 불태우고 싶나" 닉슨에 돌직구…굿바이 월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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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월터스. 지난해 찍은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바버라 월터스. 지난해 찍은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넌 외모도 이상하고 발음도 부정확해. 카메라 앞에 설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작고한 미국의 전설적 앵커이자 인터뷰어, 바버라 월터스가 사회 초년병 시절 상사에게 들었다는 말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앵커를 꿈꾸며 입사한 월터스에게 이 말을 한 이는 돈 휴윗 ABC 프로듀서. 영향력이 막강한 휴윗 PD는 당시 뉴스 프로그램 막내 작가였던 월터스에게 “앵커 말고 PD 일을 배우라”며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월터스는 그러나 조언을 듣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갈고닦았다.

월터스는 모국어 영어 ‘R’발음과 억양이 다소 부자연스러웠다고 한다. 발음을 교정하고, 동시에 자신이 꿈꾸는 인터뷰 전문 기자로서의 소양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상사가 틀렸음을 온 인생으로 증명했다. 93세.
그의 사망 소식은 ABC 방송국에서 보도자료 형태로 세상에 알렸다. 사인(死因)은 밝히지 않았다. “수퍼스타여 굿바이”(AP) “선구자가 떠났다”(뉴욕타임스) “전설이 졌다”(CNN) 등의 추모가 줄을 이었다.

1975년의 바버라 월터스. 당시 46세였다. NBC '투데이쇼' 공동 진행자였던 휴 다운스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975년의 바버라 월터스. 당시 46세였다. NBC '투데이쇼' 공동 진행자였던 휴 다운스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월터스를 모르면 적어도 영어권에선 간첩이다. 그는 ABC ‘60분(60 Minutes)’뿐 아니라 다양한 방송국과 플랫폼에서 진행자로 탁월한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그와 마주 앉은 인터뷰이들 중 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부터 리처드 닉슨 등 열 손가락을 넘기며, 피델 카스트로 등 스트롱맨(strongman, 독재) 리더들도 다수 인터뷰하며 강성 질문을 던졌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은 일명 ‘지퍼 게이트,’ 즉 성 추문 스캔들의 상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 역시 월터스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닉슨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 일화. 닉슨이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뒤에 이뤄진 인터뷰다. 워터게이트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 야당 집무실에 비밀공작원을 보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 월터스는 이에 대해 단도직입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발각의 발단이 된) 도청 테이프를 인멸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시나요?”
닉슨이 답했다.
“그야 그렇죠. (잠시 침묵) 하지만 아예 테이프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란 후회는 합니다.”
이쯤 되면 대다수의 인터뷰어는 멈춘다. 월터스는 아니었다. 다시 물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테이프 불태우고 싶을까요?” 닉슨은 답했다. “네. 그럴 겁니다. 그 테이프에 담긴 건 사적인 대화들이었고, 잘못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내용이었으니까요, 우리 모두 잘 알듯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1980년 인터뷰 중인 월터스. 워터게이트(1972) 사건에 대한 진솔한 대화가 오갔다. AP=연합뉴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1980년 인터뷰 중인 월터스. 워터게이트(1972) 사건에 대한 진솔한 대화가 오갔다. AP=연합뉴스

월터스 본인이 꼽은 최고의 인터뷰는 그러나 르윈스키와의 만남이었다. 월터스는 이땐 다른 질문 전략을 짰다. 직구 아닌 변화구로 인터뷰이의 정곡을 찔렀다. 그의 질문.
“나중에 말이죠. 딸아이의 엄마가 된다면 (지퍼 게이트에 대해) 어떻게 말하겠어요?”
르윈스키의 답. “‘엄마가...큰 실수를 했어’라고요.”
월터스는 이 답을 듣는 순간, 몸을 돌려 카메라를 직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 올해 기억할만한 문장입니다.”

르윈스키는 월터스의 사망 소식에 대해 “매력적이고 위트가 넘쳤던 선배 여성이었다”며 “명복을 빈다”고 SNS를 통해 전했다.

로스앤젤레스(LA)에 새겨진 월터스의 이름. EPA=연합뉴스

로스앤젤레스(LA)에 새겨진 월터스의 이름. EPA=연합뉴스

그에게 ‘최초 여성 앵커’라는 수식어는 ”태양이 동쪽에서 뜬다“처럼 지나치게 명징해서 두말하면 잔소리인 말이다. 그는 남녀를 통틀어 모든 방송인의 본보기가 됐다. 오프라 윈프리와 같은 살아있는 전설도 월터스에게 “당신은 내 롤모델”이라고 극찬했다. 그런 그에게도 그러나, 안티 세력은 있었다. 비판의 요지는 이랬다. 그가 인터뷰이들과 지나치게 친분을 깊게 쌓는다는 것, 정통 저널리즘과는 다소 거리가 떨어진 방식의 인터뷰를 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50년 넘게 카메라 앞에 서고, 전설의 별이 된 건 월터스였다.

바버라 월터스는 총 3번 결혼했다. 위 사진은 1986년 당시 남편 메리 애델슨과 찍은 사진.AP=연합뉴스

바버라 월터스는 총 3번 결혼했다. 위 사진은 1986년 당시 남편 메리 애델슨과 찍은 사진.AP=연합뉴스

경력에선 일가를 이뤘지만, 개인적으론 불행을 겪었다. 이혼도 두 번 했다. 일하는 과정에서 만난 명사들과 로맨스도 수차례. 그와 연애를 했던 인물 중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 등이 있다. 월터스는 심장 질환으로 2010년 수술을 하고 방송에 복귀했으나 고령으로 점차 마이크를 잡는 횟수를 줄였다.

월터스의 명언 중 일부를 추려 그대로 옮긴다. 젊은 여성들, 이 시대의 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싸우세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작은 싸움으로 스스로를 지치게 하지 말아요. 큰 싸움에서 승부를 걸어야 해요. 준비를 미리 철저히 하고, 어떤 전투에 나설지를 고르세요. 징징거리지 말고, 불평도 말아요. 큰 싸움을 하세요.”  

“직업은 단순한 경력이 아닙니다. 저도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그 일은 곧 내 인생을 바꾸었어요.”  

“가장 어려운 건 스스로를 믿는 겁니다. 그래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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