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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업 자녀’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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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연애는 하지 않고 키스만 하는 관계인 ‘쭈이여우(嘴友, 입 친구)’가 최근 한국에도 알려져 화제다. ‘쭈이여우’는 시간·감정·돈이 들어가는 보통의 ‘연애’는 할 자신이 없고, 이성과의 ‘스킨십’은 원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찾은 대안이다.

‘쭈이여우’ 처럼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단어가 또 있다. 바로 ‘취안즈얼뉘(全職兒女)’, 한국어로 해석하면 ‘전업 자녀’다.

[사진 바이자하오 @人物]

[사진 바이자하오 @人物]

‘전업 자녀’는 부모에게 얹혀살며 일정한 노동을 제공하고, 경제적 지원을 받는 중국 이삼십대 청년을 말한다. 이들은 졸업 후 학생 신분은 벗었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부모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단순히 부모에게 기생하는 ‘컨라오주(啃老族, 캥거루족)’와는 다르다. 이들은 높은 학력과 비교적 뚜렷한 커리어 계획을 갖고 있으나, 치열한 경쟁으로 당분간 집에 머물기를 택했다. 구직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컨라오주’와 달리, 이들은 ‘전업 자녀’로 살면서 공무원 시험, 대학원 진학, 취업 등을 준비한다.

또한, 아무 대가 없이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부모의 요구를 따르는 조건으로, 예컨대 집안일을 하거나 말동무가 되어 드리거나 맞선에 나가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

[사진 펑파이하오 @三聯生活實驗室]

[사진 펑파이하오 @三聯生活實驗室]

‘컨라오주 생활’보다는 능동적이고 ‘갭이어 생활’보다는 부담이 크다.

‘전업 자녀’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이들은 부모가 주는 안정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미묘한 균형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

*갭이어(Gap year):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는 기간. 영미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중등교육을 끝내고 고등교육을 받기 전인 학생들이 갭이어를 보낸다.

'전업 자녀' 관련 중국 밈 [사진 펑파이하오 @三聯生活實驗室]

'전업 자녀' 관련 중국 밈 [사진 펑파이하오 @三聯生活實驗室]

CASE ① "제 손으로 월급도 벌어봤는데, 답이 없어서요."

저장(浙江) 성에 사는 우(午) 씨는 사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교육기관에 취직했다. 그는 입사 후 3개 반을 이끌며 하루 평균 12시간씩 일했다. 그러나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에 1700위안(약 31만 원) 남짓.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버티던 그는 1년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현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전업 자녀’로 살고 있다.

우 씨는 매달 부모에게 5000위안(약 91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받고 있다. 이는 그가 전에 받던 월급의 3배에 달한다. 성인이 돼서도 부모에게 신세를 지고 있지만, 우 씨는 꽤 떳떳하다. 그들을 보살펴드리고 가사에 참여한 대가로 돈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제게 주시는 월급은 제가 두 분이 요양보호사를 구하거나 양로원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해 드렸기 때문에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결혼도 별로 안 하고 싶고, 그냥 부모님 곁에서 이대로 지내고 싶어요.”

[사진 바이자하오 @人物]

[사진 바이자하오 @人物]

CASE ② "부모님께 따뜻한 밥을 지어드리고 죄송함을 달랩니다."

우 씨처럼 ‘전업 자녀’의 삶에 당당하고 만족스러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 허난(河南) 성에 사는 아(阿)씨가 그렇다.

아 씨는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전업 자녀’로 살고 있다. 그러나 부모는 그에게 한 번도 구직 스트레스를 준 적이 없다.

“벌써 26살인데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아서 부모님께 신세 지는 제가 한심합니다. 부모님께서 이제껏 고생하시며 저를 키워 주셨는데, 아직도 저 때문에 필사적으로 돈을 버시는 걸 보면 너무 괴로워요.”

그는 부모가 잘 대해줄수록 죄송함을 느낀다며,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성심성의껏 저녁상을 차린다.

아 씨가 차린 밥상 [사진 바이자하오 @人物]

아 씨가 차린 밥상 [사진 바이자하오 @人物]

CASE ③ "어머니가 떠나지 말고 여기 있으라고 저를 붙잡으셨어요."

반면에, 자의가 아닌 부모의 뜻으로 ‘전업 자녀’가 된 이들도 있다. 샤먼(廈門)에 사는 자오(趙) 씨의 이야기다.

자오 씨는 2년 차 ‘전업 자녀’다. 그는 졸업 후 해외 유학을 준비했으나, 부모의 완강한 반대로 뜻을 굽혔다. 부모는 외동인 그가 멀리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매달 돈을 주면서까지 그를 붙잡았다.

“부모님은 제가 해외에 나가면 죽을 수도 있다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상상하셨어요. 어머니는 행여라도 제게 무슨 일이 생기면 본인은 살지 못할 거라면서 매일 같이 눈물로 호소하셨어요.”

부모의 압박에 숨이 막힌 자오 씨는 결국 원하던 유학을 포기했다. 대신에 부모님의 뜻대로 국내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다. 그러나 대학원 진학은 실패로 돌아갔고, 취직을 위해 노력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더 이상의 ‘내적 소모’를 관두고 당분간은 집 안에 머물기로 했다.

자오 씨는 ‘집에서 그냥 논다’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 집안일을 돕고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는 그 대가로 자오 씨에게 월 5000위안(약 91만 원)씩을 건넨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탕핑(躺平, 의욕을 잃고 드러눕다), 네이쥐안(内卷, 과도하고 소모적인 경쟁)에 이어 취안즈얼뉘(全职儿女, 전업 자녀)까지. 암울한 현시대를 반영한 신조어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걸 보면 이웃 나라 청년들의 삶도 녹록지 않은 듯하다.

차이나랩 권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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