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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도 매번 찾았는데…'107년 역사' 유성호텔 문닫는다, 왜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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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후 2시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 유성호텔 2~3층 연회장. 기업이나 연구소·종교시설 등에서 크고 작은 모임을 열고 있었다. 한 달 전쯤 호텔 매각 소식이 알려졌지만, 직원들은 큰 동요 없이 평소처럼 일한다고 했다. 하지만 유성온천을 대표하는 100년 역사의 호텔이 1년 남짓 뒤면 문을 닫게 된다는 소식에 호텔을 찾는 단골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모임에 참석했던 한 고객은 “쇠락해가는 유성온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매각이 결정된 대전 유성호텔. 1915년 개장해 107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성호텔은 2024년 3월까지만 영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최근 매각이 결정된 대전 유성호텔. 1915년 개장해 107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성호텔은 2024년 3월까지만 영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1970~80년대 신혼여행과 외국인 관광지로 인기를 누렸던 온천 명성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대전 유성온천을 비롯해 수안보와 온양·도고, 부곡 등 전국 온천지구는 66개에 달한다. 하지만 호텔과 숙박시설은 대부분 낡은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았다. 아직도 온천에서는 물속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행정안전부가 올 초 내놓은 ‘2022년 전국 온천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온천 이용자 수는 전년(4219만 명)보다 18.6% 감소한 3435만6000명을 기록했다.

1994년 국내 첫 '온천관광특구'로 지정된 대전 유성온천은 한해 1000만명이 찾을 정도로 문전성시였다. 하지만 지난해는 처음으로 100만명을 밑돌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관광업계는 보편화한 해외여행에다 온천이라는 특수성이 젊은 층에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분석했다. 1970~80년대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끌어 연간 이용객이 500만 명을 넘었던 경남 창녕군 부곡온천은 지난해 이용객(264만9000명)이 절반 가까이 뚝 떨어졌다.

1915년 개장…대전 대표적 향토호텔 

온천산업이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전국을 대표하는 숙박시설도 줄줄이 문을 닫는 추세다. 107년 역사의 대전 유성호텔도 변화를 거스르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유성호텔은 최근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직원들에게 이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호텔을 매수한 업체와 규모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았지만 지난 10월 서울 소재 부동산신탁회사가 매입했다고 한다. 유성호텔 영업 기한은 2024년 3월까지로 알려졌다.

최근 매각이 결정된 대전 유성호텔. 1915년 개장해 107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성호텔은 2024년 3월까지만 영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진호 기자

최근 매각이 결정된 대전 유성호텔. 1915년 개장해 107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성호텔은 2024년 3월까지만 영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진호 기자

1915년 개장한 유성호텔은 대전을 대표하는 호텔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정부 고위직이 대전을 방문할 때 마다 이곳에 머물렀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김종필 전 총리는 휴가 때 유성호텔에 머물며 정국을 구상하기도 했다. 유성호텔은 190개의 객실과 연회장·수영장·대중탕까지 갖춰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대전선수촌으로 지정, 각종 국제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온천문화 쇠락 여파…다른 호텔과의 경쟁에서 뒤져

하지만 유성호텔도 경기 불황과 다른 호텔과 경쟁에서 뒤지며 결국 문을 닫게 됐다. 유성온천에서 5㎞쯤 떨어진 도룡동 롯데시티호텔이나 호텔ICC·호텔오노마 등으로 고객이 쏠리면서 매각이나 폐업은 시간문제였다는 게 관련 업계 평가다. 유성온천에서는 2017년 리베라호텔을 시작으로 2018년 아드리아호텔이 잇따라 영업을 중단했다. 레전드호텔은 지난해 5월 문 닫은 상태다. 문을 닫은 호텔 부지에는 주상복합건물이나 오피스텔 건축 공사가 진행 중이다.

대전시와 유성구, 부동산업계 등은 유성호텔 부지 5성급 호텔이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유성호텔 측은 “5성급 호텔을 신축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된 게 없다”며 “다만 유성호텔 역사성이나 의미를 생각하면 호텔 영업을 지속하는 게 투자자나 지역을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유성구 관계자는 “유성호텔 측에서는 건물과 토지를 매각하더라도 투자 방식으로 개발이나 후속 사업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999년 1월 15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자유민주연합 신년교례회가 열리고 있다. 중앙포토

1999년 1월 15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자유민주연합 신년교례회가 열리고 있다. 중앙포토

유성호텔이 문을 닫으면 그나마 유지하던 유성온천 명맥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게 관광업계 우려다. 다른 온천지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충북 수안보온천의 대표 관광호텔이던 와이키키리조트는 2002년 폐업했다. 관광호텔과 온천시설 등을 갖춘 국내 최초의 테마파크 부곡하와이도 적자에 허덕이다 2017년 영업을 끝냈다.

코로나19 쇠락 부채질…객실 절반은 비어 

코로나19 사태로 이용객이 줄어든 것도 쇠락을 부채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호텔협회의 2019~2020년 호텔업 운영 현황에 따르면 유성지역 전체 호텔 객실 이용률은 2019년 66%에서 2020년에는 48%로 떨어졌다. 객실 절반이 빈 상태로 호텔을 운영했다는 얘기다.

최근 매각이 결정된 대전 유성호텔(오른쪽). 1915년 개장해 107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성호텔은 2024년 3월까지만 영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최근 매각이 결정된 대전 유성호텔(오른쪽). 1915년 개장해 107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성호텔은 2024년 3월까지만 영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시와 유성구는 관광거점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유성온천 살리기에 나섰다. 유성구가 중점 추진하는 관광거점 조성사업은 260억원을 투입, 계룡스파텔 부근 4만8247㎡ 부지에 온천수체험관과 온천박물관 등 온천테마파크를 만드는 사업이다. 이곳은 2025년 완공 예정이다. 경남 창녕군은 겨울철 동계훈련과 전국 규모 체육대회를 유치, 부곡온천 명맥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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