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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계묘년 한국 정치의 대반전을 기대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0호 34면

0.73%p차의 승패가 촉발한 대선 연장전

소통·협치 대신 무시·불복에 민생은 뒷전

올해와 정반대 길 가는 쪽에 표 몰아주자

임인년의 마지막까지 국회엔 반전이 없었다. 여야는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추가연장근로제와 화물차 안전운임제 등 일몰법 처리 실패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밀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올 1월 1일 자 사설에서 중앙SUNDAY는 “선거의 해 임인년을 통합과 치유의 계기로 삼자”고 했다. “대선 후유증과 갈등의 골을 메우기 위한 승자의 관용과 패자의 승복”을 강조했다. 꼭 1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통합과 치유인가, 아니면 그 반대쪽인가.

한국 정치는 올 한해 극한 대결과 혼돈을 부른 주범이었다. 대선은 끝났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협치를 위한 절묘한 균형일 수도 있었던 0.73%포인트 차의 승부는 오히려 독(毒)이 됐다. 죽기 살기로 상대를 짓밟았던 대선의 네거티브 공방이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자리를 겨뤘던 두 후보는 대통령과 야당 대표로 다시 맞섰다. 정권을 탈환한 소수 여당과 권력을 놓친 거대 야당의 충돌에 민생은 뒷전으로 밀렸다. 경제 위기 속에서도 법정 시한을 3주나 넘긴 새해 예산안이 생생한 증거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국민 삼중고는 제쳐 놓고 여야는 ‘윤석열 예산, 이재명 예산’을 1원이라도 더 차지하겠다고 다퉜고, 예산안은 누더기가 됐다.

소통과 협치 대신 무시와 불복이 판을 쳤다. 새 정부 국정 과제와 직결된 주요 법안 12건 중 국회를 통과한 건 고작 3건이었다. 야당은 정권 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여당은 이런 야당을 무시했다. 나라를 위해선 누구와도 김치찌개를 먹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야당 지도부와 만나지 않았다.

정치권은 고비 때마다 진영 결집이란 쉽고 익숙한 길을 택했다. 합리적 중도층보다 열혈 지지층의 이해에 따라 움직였다. 이태원 참사 앞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진상 규명 뒤 문책이냐 곧바로 문책이냐, 국정조사를 하느냐 마느냐로 걸핏하면 싸웠다. 국민 158명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는데도 정무적 책임이든 법적 책임이든 물러난 고위직은 한 명도 없다. 9%에 불과했던 16강 진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월드컵 축구 대표팀과는 정반대로 국회는 100% 확실한 미션도 번번이 수포로 돌리곤 했다.

여야 내부 정치도 국민의 혐오를 부추겼다. 30대 당 대표를 축출하려는 여당 내 권력투쟁은 ‘윤핵관’ ‘체리 따봉’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며 집권 세력의 위신을 끌어내렸다. 대표 경선 룰 변경이나 ‘재롱 잔치’라고 손가락질당하는 충성 경쟁도 낯뜨겁다. 야당은 사상 유례없는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휘청대고 있다. 당이 대표의 방패로 전락했고, 야당이 장악한 국회 역시 묻지마 방탄 기지로 추락 중이다.

2023년의 한국 정치는 달라질 수 있을까. 정부와 정치권의 숙제 주머니는 더 무거워졌다. 올해보다 더 춥다는 경제 빙하기에 대처하면서도 국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도 수행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노동 시장, 낡은 교육 시스템, 파산이 예정된 연금 제도 등 3대 분야의 개혁에 나라의 미래가 달렸다.

개혁은 인기가 없다. 기득권의 저항과 숱한 우여곡절이 불가피하다. 진영 결집으로, 다양성을 차단한 당원 100%의 경직성으로, 체포 동의안 부결 과정의 일사불란함과 뻔뻔함으론 달성할 수 없다. 아무리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지만 결국 정치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어느 쪽이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상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밤을 새워 중재안을 궁리하고, 극단이 아닌 유연성을 추구하는지,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올해와는 정반대 방향에서 반전을 만드는 세력에 2024년 총선 승리는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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