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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디지털 혁신·스타링크·드론으로 반전 이끌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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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호 24면

디지털 걸리버여행기

우크라이나의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 터미널.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 터미널. [AFP=연합뉴스]

전쟁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끈다. 2022년 2월 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디지털 시대의 전쟁과 평화의 모습을 보여준 첫 번째 전쟁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골리앗을 상징하는 러시아의 재래식 탱크들이 자유를 갈망하는 우크라이나군이 쏜 미제 자율추적 재블린 미사일에 의해 무참히 파괴됐다. 재블린 같은 고가의 자율추적 미사일과 더불어 저렴한 드론의 사용이 전장에서 일상화됐다.

이런 드론 하드웨어와 인공지능(AI), AI 반도체 기술을 결합하면 적의 위협을 자율적으로 인식하고 추적하는 차세대 전략 무기도 저비용으로 만들 수 있다. 인공지능을 내장한 무기들을 통해 전장 상황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전술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면 미래 전장의 모습이 바뀔 것이다. 쉽게 이길 것으로 생각했던 전쟁에서 밀리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이제 핵무기 사용까지 언급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했다.

구글 CEO와 이사회 의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컴퓨터과학자 에릭 슈미트 박사는 2018년 8월 미국이 AI 시대에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SCAI)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9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던 슈미트 박사에 따르면 전쟁을 반전시킨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의 일상 생활은 빠르게 정상화됐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전기·수도 공급이 불안정하지만 식당에는 사람이 붐볐다. 국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디지털혁신부 장관에 91년생 전문가 임명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에릭 슈미트 박사(오른쪽 둘째).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에릭 슈미트 박사(오른쪽 둘째).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반전은 젤렌스키 대통령 없이는 불가능했다. 전쟁 초기에 피신을 권유한 우방에게 피신지 대신 싸울 무기를 달라고 외치자 자국민과 우방들이 그의 편에 섰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추진한 범국가적 디지털 혁신도 전쟁의 반전에 한몫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부패가 없는 투명한 ‘디지털 국가’로 만들기 위해 디지털 혁신부를 만들고 IT 전문가인 1991년생 미하일로 페도로프를 이 부처의 장관 겸 부총리로 임명했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 여권 등 다양한 정부 서비스를 제공하는 Diia라는 모바일 전자정부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했다. 2024년까지 모든 정부 서비스의 100%를 휴대폰으로 가능하게 하고 서비스의 20%는 자동화하는 것이 목표다.

미하일로 페도로프(31)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부 장관. [AFP=연합뉴스]

미하일로 페도로프(31)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부 장관. [AFP=연합뉴스]

전쟁이 임박하자 우크라이나는 두 가지의 신속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 첫째는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 정부 서비스가 언제 어디서나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의 모든 데이터와 디지털 서비스를 국외의 클라우드로 이전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한 것이다. 러시아 침공 첫날 아마존 AWS 클라우드팀이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있는 우크라이나 대사관을 방문해 우크라이나 정부 데이터와 서비스의 클라우드 이전을 시작했다. 미사일로는 클라우드에 있는 전자정부를 파괴할 수 없다. 대신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이 시작됐다. 하지만 아마존이 함께 이 공격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보호했다. Diia에 적군의 동향을 보고하는 메뉴 등 전시 국가 운영에 필요한 기능이 추가됐다.

우크라이나의 반전에 결정적인 또 다른 요인은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한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현재까지 쏘아 올린 3604개의 저궤도 위성이 제공하는 이 통신 서비스는 러시아가 공격할 수 없다. 러시아 침공이 시작되자 페도로프는 머스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머스크는 바로 스타링크 인터넷 서비스와 위성 안테나 터미널들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하나로 뭉쳐 러시아군을 퇴치하는데 필수적인 인프라가 됐다.

스페이스X는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선을 이용해 한 번에 수십 개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 1만2000개를 목표로 위성을 계속 쏘아 올리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4만개까지 고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미국·유럽·일본 등 45개국에서 100만여 개 이상의 위성 터미널이 깔렸다. 우크라이나에는 군과 정부, 그리고 폴란드행 열차 등에 현재 약 2만4000개의 스타링크 터미널이 깔려 있다. 최근 머스크는 1만개의 터미널을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스타링크 터미널의 3%가 우크라이나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에 2만여개 스타링크 터미널 깔려

지난 5월 18일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가 53개의 스타링크 위성을 실은 팰컨9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18일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가 53개의 스타링크 위성을 실은 팰컨9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며칠 전 북한 드론이 서울까지 침투한 후 되돌아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참고해 디지털 시대에 맞는 국가 안보 체계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이런 대전환의 핵심은 데이터 기반의 첨단 AI 기술을 사용한 새로운 전략 무기와 디지털 인프라, 이를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인재 양성과 군통수권자의 리더십이다.

가장 앞선 체계를 갖춘 미국도 초당적으로 NSCAI를 만들어 미국 국가안보 체계의 새로운 그림과 로드맵을 제시하도록 했다. NSCAI 보고서의 서문에서 슈미트 박사는 네 가지의 필수적 변화를 강조했다.

▶리더십: 새 시대의 국가안보체계는 대통령의 책임이다(The buck stops with the President).

▶인재: 디지털 시대는 디지털 군대를 필요로 한다. 완전히 새로운 인재양성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하드웨어: 인공지능의 기반이 되는 반도체 제조를 미국 내에서 되살려야 한다. 올해 발효된 반도체 과학법(CHIPS+ Act)에 반영됐다.

▶혁신 투자: 공통 기반 기술인 AI와 안전한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고 국방 AI 분야의 벤처 창업을 지원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 터미널.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 터미널. [AFP=연합뉴스]

200억 달러의 부를 가진 슈미트는 NSCAI 활동이 2021년 10월에 끝나자 비영리재단 ‘특별 경쟁력 연구 프로젝트(SCSP)’를 만들어 미국 국가안보 전략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과 중국을 이웃으로 둔 대한민국이 새로운 국가안보체계를 설계하려면 우선 폐쇄적인 국가안보 논의에 디지털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관학교의 교육 체계를 개편하고 군 장병에 대한 AI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취약한 디지털 무기체계 SW 연구개발을 주도할 연구원 설립도 시급하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초대 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2년 실리콘밸리에 실험실벤처를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 2022년 삼성호암상 공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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