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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2023년 새해와 역사의 전환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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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호 35면

황건강 경제산업 부문 기자

황건강 경제산업 부문 기자

역사의 전환점(Zeitenwende). 독일 언어학회에서 선정한 2022년 ‘올해의 단어’다. 이 단어는 지난 2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의회연설을 통해 유명해졌다. 당시 숄츠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의 질서를 위협하는 역사의 전환점”이라 밝힌 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군사력 대신 대화와 무역을 우선시하던 독일 외교정책 전통이 역사적 전환을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평가는 독일 외교정책의 한쪽 면만 바라본 꼴이 됐다.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던 독일은 미국이 주도하는 탈(脫)중국 전선에서 이탈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사고 있다. 숄츠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직후인 지난 11월 누구보다 먼저 중국을 방문했다. 탈중국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보다 중국의 산업 스파이 행위로 인한 손실이 더 크다는 미국 정치권의 지적이 나왔지만, 숄츠 총리는 최근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를 통해 “중국을 고립시키거나 협력을 억제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1월 올라프 숄츠(왼쪽) 독일 총리는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회담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1월 올라프 숄츠(왼쪽) 독일 총리는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회담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와 중국을 가르는 독일 외교정책의 온도차는 어디서 비롯될까. 중국과 경제로 엮인 탓이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과 미국 국방부 차관보 등을 지낸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그의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중국은 주로 경제를 통해서 외교정책을 실행한다”며 “그 이유는 그럴 능력이 있기 때문인데, 중국은 130개가 넘는 나라들에게 가장 큰 무역파트너”라고 지적한 바 있다. 중국에 의존하게 된 나라들은 중국의 경제적 힘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독일의 행보를 두고 독일 산업계를 염두한 포석이란 해석이 나온다. 포린폴리시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 산업은 최근까지도 독일의 중국 투자의 70%, 유럽 전체의 중국투자의 3분의 1을 담당했다. 화학 대기업 바스프는 2030년까지 중국에 100억 유로(약 13조5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고, 지멘스 역시 중국에서 대대적인 사업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독일 입장에서 중국과 선을 긋기란 부담이 너무 크다.

경제에 기반한 중국의 외교정책은 앞으로도 위력이 배가될 것으로 여겨진다. 시진핑 주석은 사우디와 걸프만 6개국을 상대로 투자와 경제협력을 제시하며 페트로위안(원유 거래시 위안화결제) 체제에 공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가격이 급등락한 니켈을 두고도 수출업체들에게 런던금속거래소 대신 상하이선물거래소 가격을 기준 가격으로 사용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중국을 옥죌수록, 전면전 대신 취약한 국가를 찾아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며 실리를 챙기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미국 편에 선 국가들도 경제적 실리 챙기기에 혈안이 된 건 마찬가지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차단한 뒤로 대만은 이미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 역시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산업 육성 지원을 약속받고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 “서방의 갈등에 중간에 낀 국가들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줄리아 프리드랜더 전 미국 국가안보회의 유럽연합 담당 국장의 지적처럼 2023년은 전 세계가 자국의 이익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한해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전환점 앞에 한국경제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짚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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