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우면 면역력 줄고 심혈관 질환 늘어, 공존 모색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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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호 32면

러브에이징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고독이 밀려올 때 슬기롭게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현대화에 따른 급속한 핵가족화와 개인주의 발달로 나 홀로 사는 가구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 중 33.4%(716만6000가구)다. 한국보다 일찍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는 핀란드 47%, 스웨덴 45.4%, 독일 42.1% 등이며 이웃 나라 일본도 38%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고독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신설했고, 일본도 2021년 고독부를 만들어 장관을 임명했다. 외로움이 초래하는 개인적인 불행을 국가가 개입해서라도 막아보겠다는 의미다.

실제 1인 가구가 늘면서 고독사(孤獨死, Godoksa)도 증가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고독사 인원은 3378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1%를 넘겼고 5년 전(2412명)보다 40%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50~60대가 약 60%를 차지했고 남성이 여성보다 5.3배 많았다.

영국·일본 정부, 고독부 잇따라 신설

사회신경과학적으로 인간이 고독(loneliness)을 느끼는 것은 험한 세상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발달시킨 본능적인 감정이다. 고독감은 ‘내가 지금 뭔가 잘못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경고음인 셈이다.

태생적으로 인간은 세상에 홀로 고립되면 자연재해나 맹수의 위협을 극복하기 힘든 나약한 존재다. 다행히 슬기로운 인간 사피엔스는 대뇌 기능을 지구촌 살이에 알맞게 지속적으로 확대·발전시켜 신의 영역까지 탐하는 만물의 영장이 됐다.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체가 범접할 수 없는 고유하고 탁월한 장점이 많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협동을 통해 ‘대규모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존하는 능력이다. 덕분에 사피엔스는 최상위 포식자들을 제압하고, 직립보행을 했던 여러 고대 인류 중 유일하게 눈부신 문화를 꽃피우며 건재하는 호모(Homo)속이 됐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마지막 빙하기에 인류와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강인한 체력과 근육질을 가진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언어로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도구를 이용해 맹수를 사냥했다. 또 중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무스테리안 문화를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동체 규모는 15명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사피엔스는 사회적 유대감이 뛰어나 수렵-채집 시대 때도,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도 자연스레 공동체를 만들 경우 구성원 숫자는 네안데르탈인의 열 배 이상인 150명 정도다.

사피엔스가 큰 규모의 공동체를 만들어 공존했던 원동력은 기나긴 유년기를 거치면서 습득하는 뛰어난 사회성과 유대감에서 나온다. 참고로 유년기의 끝을 알리는 영구치가 네안데르탈인은 6세경, 사피엔스는 10살 즈음에 나온다. 사피엔스의 유년기가 네안데르탈인보다 4년이나 긴 셈이다.

인간은 공동체 일원으로 소속감을 느낄 때 마음이 안정된다. 반면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고독감과 더불어 면역력 감소, 심혈관 질환 위험 증가, 사고력 감퇴 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실제 실험 대상자에게 고립감을 느끼게 한 뒤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해 보면 신체적 통증이 있을 때와 동일한 부위에서 같은 반응이 나타난다. 외로울 때나, 몸이 아플 때나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은 매한가지인 셈이다.

외로움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통제력을 떨어뜨려 공격성을 띠게 만든다(『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저). 문제는 선사시대 석기인과 달리 문명사회에 사는 현대인은 혼자 있더라도 맹수의 위협이나 자연재해를 직면해야 할 위험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홀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면 본능적으로 외롭고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과연 현대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감은 해롭기만 한 감정일까. 우선 고독감이나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크게 느껴지고 여러 사람과 어울린 상황에서는 없어지는 감정이 아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의 지적처럼 특히 현대인은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내적인 고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군중 속의 고독이다. 반면 고독을 즐기면서 내면세계를 성숙시키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고독을 통해서만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 바 있다. 종교계의 묵언 수행, 여름과 겨울에 세상과 단절된 채 수행에 전념하는 하안거, 동안거 등은 모두 고독을 찾아 떠나는 영성 여행인 셈이다.

“외로움, 노인보다 청년이 더 느껴”

똑같은 상황에 처해도 고독감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차가 크며 객관화시킬 방법도 없다. 자연 고독에 관해서는 오해가 많다. 영국의 BBC방송은 전 세계 5만5000명을 대상으로 외로움을 조사해 외로움을 가장 자주 느끼는 연령층은 노인이 아닌 청년층이라고 밝힌 바 있다(16~24세 40%, 75세 이상 27%). 또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계절도 크리스마스가 포함되는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이라고 답한 사람이 3분의 2 이상이었다. ‘고독’하면 상식처럼 떠올렸던 노인이나 추운 겨울 이미지는 상상 속 신화였던 셈이다.

개인주의가 심화하는 현대사회를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외로움과 고독이 수시로 찾아올 수 있다. 새해에는 좋은 친구와 우정을 가꾸는 것과 더불어 고독을 느낄 때마다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뒤 장기적으로 공존하면서 지낼 방법도 모색해 봐야 할 것 같다. 고독을 극복하는 과정은 인생을 성숙시키는 여정이며, 고독을 잘 다루고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 세모(歲暮)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다수의 칼럼을 연재했다.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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