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스트레스 신호, 공감하되 스스로 이겨내게 이끌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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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호 30면

[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15·끝〉 스트레스와 회복탄력성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현아가 상기된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지난 여름 내원 당시, “선생님! 저 곧 있으면 언니, 오빠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요.”라고 흥분하며 자랑하던 아이였다.

“현아야. 이제 학교 입학이 얼마 안 남았구나. 기분이 어때?” 6개월 만에 만난 아이의 어색함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가볍게 질문을 건넸다. 그러자 현아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학교 무서워요. 공부할 것도 많고 시험도 많이 본대요.” 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가까스로 대답했다.

“현아야, 학교는 누구나 다 가는거야. 그게 울 일이니? 선생님께 씩씩한 모습 보여드려야지.” 옆에 앉아있던 엄마가 현아를 부드럽게 나무랬다.

강하게 키우려고 못 본 척 해도 안 돼

“어머님, 초등학교 입학은 아이들에게는 큰 스트레스 중에 하나일 수 있어요. 현아가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 그나저나 여름에 만났을 때만 해도 현아가 학교 간다고 좋아하고 흥분했었는데 그 사이에 감정 변화가 생겼나봐요?”

“네. 현아가 가을에 ‘학교 준비반’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학교에 대해 공포심을 느꼈나봐요. 그 동안 막연하게 언니 오빠 다니는 곳에 자신도 간다는 생각에 좋아하기만 했는데, 수업시간에 40분 앉아 있어야 하고 받아쓰기 시험도 본다고 하니 걱정이 많아졌어요. 요새는 밤에 자다 깨는 일이 부쩍 많아졌어요.” 엄마는 하소연했다.

“현아야, 선생님도 초등학교 입학할 때 무서웠단다.” “정말요? 선생님도 무서웠어요?” 현아는 엄마가 건네준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그럼. 아마 모든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게 무서울걸?” 내가 대답했다. 현아는 이때부터 자신이 걱정하는 내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어떡해요? 학교에 지각하면 어떡해요? 시험을 빵점 맞으면 어떡해요?” 현아는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부모에게 아이의 걱정들에 대해 우선 충분히 공감을 해주도록 당부했다. 그리고 만약 내년에 등교를 회피하는 모습 (예컨대, 잦은 울음이나 복통과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날 경우 동조하지 마시고 학교에 가도록 잘 격려하라고 말씀드렸다.

모든 인간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특히 아이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다양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큰 정신적 충격을 줄만한 사건을 경험한 경우에는 외상(트라우마)을 입었다고 말한다. 외상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아동학대나 방임이다. 특히 부모로부터 어린 시절 학대나 방임을 당한 경우 아이는 생존에 대한 공포 반응이 과도하게 활성화 되어 두뇌 발달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준다. 인지나 주의력, 정서, 사회성 발달 모두 뒤처지게 만든다. 학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이나 폭력을 당한 사례들도 적지 않다. 최근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가 된 아이들도 늘고 있다. 대형 사고나 재난 재해, 신체적 질병으로 심리적 후유증을 겪고 치료받는 아이들도 많다. 반면 어른이 보기에는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아이들에게는 스트레스일 수 있는 일이 더 흔하다. 학교 입학과 전학, 경미한 접촉사고, 무서운 영상을 본 경우, 발표하다가 창피를 당한 경우, 친구와의 다툼 등이다. 대부분 아이들이 발달해가면서 한 번 쯤은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반드시 신호를 보낸다. 아이의 울음은 대표적인 스트레스 반응이다. 부모가 눈여겨봐야 할 대표적인 아이의 신호들은 두통이나 복통, 손톱 뜯기, 머리카락 뽑기, 대소변 실수, 악몽, 불면, 징징대기, 말 안하기, 과도한 걱정, 분노 발작, 공격성 등이다. 자녀가 이런 신호를 보낼 때 부모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행여나 위로해주면 나약해질까봐 아이의 신호를 못 본 척 하고 무시하는 부모 유형이 있고, 아이와 함께 불안해지면서 즉각 문제를 해결해주고 과잉보호하는 부모 유형이 있다.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의 스트레스에 공감해주세요. 아이가 보내는 신호에 즉각 반응하세요”라는 전문가의 조언에 대해, 아이의 문제를 부모가 즉각 해결해주라는 의미로 오해하는 부모들이 드물지 않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 인생의 걸림돌을 깨끗하게 제거해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에 대한 ‘완충 장치’를 갖추게 해서 아이 스스로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러한 ‘완충 장치’를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른다. 즉 스트레스로부터 복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다면 내 아이가 “회복 탄력성”이 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부모는 무엇을 해야할까?

가장 첫 번째 요소는 아이에게 ‘정서적 지지와 유대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시련을 더욱 잘 견딘다. 여기에서의 ‘지지’란 ‘과잉보호’가 아니다. 아이의 스트레스에 부모가 함께 불안해하면서 성급히 개입해서 아이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과잉보호’라면, 아이가 시련을 견디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해결책을 함께 찾는 태도가 ‘지지’이다. 과잉보호하는 부모의 내면에는 아이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깔려있다. 따라서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아이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매사 의존적이며 자신감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날까지 제출해야할 만들기 과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초등생 아들을 보고 대신 과제물을 만들어주는 부모가 아니라 ‘자,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아이가 생각하게 한 후, 비록 과정이 서툴러도 아이 스스로 해내려 노력하는 모습에 격려해주는 부모가 ‘지지적인’ 부모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성취감을 느끼고 뭔가 해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아이가 부모와 유대감을 갖기 위해서는 아이의 표현을 억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청해야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어느 대기 공간에서든 부모와 아이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병원 진료 대기실에서 모두 각자가 스마트폰에만 집중하고 있다. 부모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 아이도 내려놓는다. 두서없이 말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부모, 사소한 잡담을 즐기는 부모가 아이에게 유대감을 갖게 만든다. 이런 아이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부모가 대처하는 방식과 문제 해결 기술을 쉽게 배우고 습득한다.

새로운 도전·성공 쌓이면 불안 줄어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두 번째 요소는 ‘건강한 위험을 시도’하게 만드는 것이다. 건강한 위험이란 무엇일까? 익숙한 것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 것이다. 비록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해를 입지 않는 위험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운동 시도하기, 학교 연극에 참여하기, 수줍지만 친구에게 말 걸기 등이다. 아이가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지 않고 회피하는 것에 부모가 암묵적으로 동조할 때 아이는 스스로 약한 아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앞서 현아의 사례에서 학교 입학에 대해 과도한 걱정을 할 경우 부모가 그 불안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주되, 학교 가는 것을 회피할 경우 잘 격려해서 무조건 등교시키라고 강조한 이유이다. 새로운 시도 후 성공한 경험이 축적되면 아이의 불안은 점차 줄어든다.

회복 탄력성을 키우기 위한 세 번째 요소는 ‘아이의 감정이 당연한 것이고 결국 지나갈 것이다’라고 안심시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후 느끼는 불안과 슬픔, 분노는 누구나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이런 감정은 보통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가 간다고 말해줘야 한다. 다만, 빨리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말해야 한다. 아이들은 미래가 불확실할 때 더욱 불안해진다. 이 감정이 영원할 것 같아서 더욱 힘든 것이다. 아이가 지금 느끼는 나쁜 감정들이 보통은 지나간다는 것을 예측만 하게 해줘도 아이는 안심할 수 있다. 스트레스 없는 인생은 없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편안하고 순탄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양육은 자녀가 스스로 잘 살아나가도록 독립시키는 과정이다. 아이의 스트레스를 즉각 제거해주는 부모가 아니라, 스트레스 후 복원력이 강한 아이로 키우는 부모가 되길 바란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의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 가정법률상담소 교육위원, 법무부 여성아동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 『아이 마음을 다 안다는 착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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