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공요금발 물가충격 현실로…전기료 역대급 인상, 끝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내년 1월 1일부터 전기요금이 9.5% 오른다. 40~50년 전 오일쇼크(석유파동) 이후 최대 폭 인상이다. 이번이 끝이 아니다. 정부는 내년 2분기 이후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공공요금발(發) 물가 충격이 현실로 닥쳤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전기요금 인상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전기요금 인상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30일 한국전력공사는 내년 1분기(1~3월) 적용하는 ㎾h당 전력량요금을 11.4원, 기후환경요금을 1.7원 각각 올린다고 발표했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현행 ㎾h당 5원이 상한인 만큼 그대로 두기로 했다. 적용 시기는 내년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다.

1분기 전기요금 인상폭은 전력량요금과 기후환경요금을 합쳐 ㎾h당 13.1원이다. 올해 4분기 대비 인상률은 9.5%에 달한다. 한 번에 전기요금을 10% 가까이 올린 건 1970~80년대 오일쇼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전 관계자도 “전기요금 조정 단일 회차로는 오일쇼크 이래 최대 폭 인상”이라고 말했다.

올해 한전은 ㎾h당 전기요금을 4월 6.9원, 7월 5원, 10월 7.4원 세 차례에 걸쳐 올렸다. 모두 더해 인상 폭은 19.3원이었다. 내년 1월 이에 버금가는 13.1원을 한꺼번에 올리기로 했다. 한 달 평균 307㎾h(2020년 에너지총조사 기준)를 쓰는 4인 가구가 내야 할 주택용 전기요금은 월 4만6382원에서 5만404원으로 약 4022원 오른다. 전력기반기금 3.7%와 부가가치세 10%는 뺀 금액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08년 고유가 위기 때도 전기요금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한 번에 4~5%씩 여러 차례에 나눠 인상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번에 한전이 ‘역대급’ 전기요금 인상에 나선 건 30조원대에 이르는 누적 적자 때문이다.

석탄ㆍ액화천연가스(LNG) 등 전력 생산에 쓰이는 연료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요금 인상을 억눌러 적자가 쌓였다. 문재인 정부 때 무리하게 추진한 탈원전 여파도 있다. 에너지 위기 속에서도 한전이 긴축경영, 구조조정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 개선, 비용 절감 노력만으로는 한전과 한국가스공사의 재무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한전과 가스공사의 경영을 정상화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기ㆍ가스요금의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번 요금 인상으로 한전이 올릴 추가 수익은 7조원 정도다. 30조원대 적자를 털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산업부는 한전 적자를 해소하려면 ㎾h당 51.6원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내년 1분기 인상분을 제외하더라도 ㎾h당 30원 넘게 요금을 더 올려야 한다. 전기요금 인상이 2분기 이후에도 이어진다는 얘기다.

가스요금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가스공사는 내년 1분기 가스요금은 겨울철 난방비 부담을 이유로 동결했다. 대신 2분기 이후 인상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 장관은 “단계적인 요금 현실화를 통해 한전의 누적 적자와 가스공사의 미수금을 2026년까지 해소하겠다”며 “내년 2분기 이후엔 국제 에너지 가격과 물가 등 국내 경제, 공기업 재무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기ㆍ가스요금 인상 여부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미 오른 물가에 공공요금 인상 충격까지 더해졌다. 이날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번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0.15%포인트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며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내년 3.5%의 물가 상승률을 전망했는데 그 안에 (요금 인상이) 다 감안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렇게 선을 그었지만 ‘전기세’라 불릴 만큼 전기요금이 체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데다, 가스ㆍ대중교통 등 다른 공공요금 줄인상도 예고된 상황이다.

내년 1분기에 적용될 전기료 인상 폭 발표를 앞둔 가운데 29일 서울 시내의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내년 1분기에 적용될 전기료 인상 폭 발표를 앞둔 가운데 29일 서울 시내의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서민 가계 어려움은 더 커지게 생겼다. 기업과 농가도 비상이다. 이날 중소기업중앙회는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중소기업 피해 경감을 위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도 한전 적자는 여전히 대규모로 유지될 걸로 보인다”며 “누적 적자, 한ㆍ미 금리 역전 등으로 한전채 발행, 은행 차입이 쉽지 않은 만큼 전기요금 추가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산업용 전기 역시 10% 정도 오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업은 물론 PC방ㆍ노래방 등 자영업하는 분들 타격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기요금 인상에 맞춰 정부와 한전은 기초생활수급자ㆍ차상위계층 등 취약계층이 낼 내년 요금을 총 1186억원 할인해주기로 했다. 올해 평균 사용량(복지할인가구 월평균 313㎾h)까진 요금을 동결하고, 추가 사용분에 한해서만 오른 요금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농가를 대상으로는 이번 전력량요금 인상분 11.4㎾h를 한꺼번에 부과하지 않고, 3년에 걸쳐 나눠 올리기로 했다. 또 전기를 많이 쓰는 뿌리기업(주조ㆍ용접 등 분야 중소기업)과 농가를 대상으로 효율향상사업 예산을 늘려 지원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