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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하의 시시각각

당의 주인이 과연 당원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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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디렉터

김정하 정치디렉터

내년 3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국민의힘이 지난 23일 경선룰을 개정했다. 원래는 당원투표 7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 30%로 돼 있던 규정을 당원투표 100%로 변경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칠게 대드는 유승민 전 의원이 여론조사에서 강세를 나타내자, 친윤계가 유 전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없애버렸다는 게 정설이다. 경선룰이야 정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국민의힘이 경선을 두 달여 앞두고 룰을 갑자기 바꿨다고 해서 그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경선룰 개정은 영 뒷맛이 찝찝하다.

한국 정당들 국고보조금 의존 커 #비당원 지지층 발언권 보장해야 #여당 경선, 여론조사 폐지는 퇴행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2월 23일 전당대회 경선룰 개정을 위해 열린 당 전국위원회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당권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뉴스1]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2월 23일 전당대회 경선룰 개정을 위해 열린 당 전국위원회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당권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뉴스1]

우선 친윤계가 이번에 경선룰을 변경하면서 내세운 명분, 즉 “당의 주인이 당원이니 당원만으로 대표를 뽑는 게 뭐가 문제냐”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만약 정당이 당원들이 내는 당비만으로 지출을 100% 충족한다면 그 말이 맞다. 진짜 그렇다면 당이 경선룰을 어떻게 지지고 볶든 비당원은 참견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중앙선관위 정당수입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2020년 당비 133억원 국고보조금 361억원, 2021년 당비 120억원 국고보조금 185억원, 올해 1~6월 당비 106억원 국고보조금 502억원의 재정수입을 기록했다. 참고로 더불어민주당의 수입은 2020년 당비 312억원, 국고보조금 327억원, 2021년 당비 284억원, 국고보조금 210억원, 올해 1~6월 당비 144억원, 국고보조금 573억원이었다. 여야 할 것 없이 정당의 재정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큰 기둥은 당비가 아니라 국고보조금, 다시 말해 국민의 세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4년 3월 2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 의원(가운데). 한나라당은 이 때 처음으로 당 대표 경선에 여론조사를 도입했다. [중앙포토]

2004년 3월 2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 의원(가운데). 한나라당은 이 때 처음으로 당 대표 경선에 여론조사를 도입했다. [중앙포토]

그렇다면 과연 당의 주인은 누구인가. 당원들이 당의 주주인 건 맞지만, 원리상 일반 납세자들도 당에 대한 발언권이 있다고 봐야 한다. 당원이라고 해서 ‘공당(公黨)’을 배타적으로 점유할 권리는 없다. 차떼기 사건과 대통령 탄핵으로 엉망이 됐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2004년 3월 대표 경선에서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처음 도입한 것은 공당의 이미지를 복원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다만 A당 지지자가 B당에 대해서도 발언권이 있는지는 논쟁의 소지가 있다. 그래서 일단 비지지층은 접어두더라도, 당의 주인을 따질 때는 당원뿐 아니라 국고보조에 기여한 ‘비당원 지지층’도 걸맞은 대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국민의힘이 18년간 이어져 온 대표 경선 여론조사를 폐지한 것은 정치적 퇴행이라는 우려가 든다. 민주당 지지층의 경선 개입이 걱정됐다면 70% 대 30% 구조는 손대지 말고 여론조사에서 역선택 방지 조항을 삽입하는 정도로만 끝냈으면 어땠을까.

2021년 6월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당시 이 대표는 딩원투표에서 나경원 전 의원에게 41대 37로 뒤졌지만, 여론조사에서 과반인 59%를 득표하면서 최종 승리를 거뒀다. 오종택 기자

2021년 6월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당시 이 대표는 딩원투표에서 나경원 전 의원에게 41대 37로 뒤졌지만, 여론조사에서 과반인 59%를 득표하면서 최종 승리를 거뒀다. 오종택 기자

친윤계는 당원이 1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여론조사가 없어도 민심을 잘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쎄 과연 그럴까.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얻은 표는 총 1639만 표다. 이 중 수도권 표는 809만 표(49.4%)고 영남권 표는 538만 표(32.8%)다. 윤 후보 지지자 중 두 명 중 한 명이 수도권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당원 구성은 지난 8월 현재 영남권이 약 40%이고 수도권이 37% 수준이라고 한다. 당원 구성이 일반 지지층(비당원)의 지역별 분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당원들의 연령별ㆍ성별 분포도 일반 지지층과 꽤 다를 것이란 심증이 있다. 그동안 여론조사는 당원의 편중성을 다소나마 보정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그마저도 사라졌다.

민주당의 전례에서 드러나듯 일반 지지층보다 당원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당의 노선이 완고해지고 중도층 확장이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당원 100%로 뽑힌 국민의힘 지도부가 정권의 명운이 걸린 2024년 총선에서 얼마만큼 성과를 낼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특히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