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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공룡플랫폼’에 칼 빼든 정부…자율규제, 당근일까 채찍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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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9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디지털 플랫폼 발전방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9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디지털 플랫폼 발전방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재난대응 등에 관한 제도를 손보고 관련 법 규정을 마련한다. 민간 주도의 자율 규제 원칙을 중심으로 하되, 필요할 경우 과감히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을 둔 것. 무늬만 ‘자율’일 뿐 사실상 규제 강화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무슨 일이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29일 ‘디지털 플랫폼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함께 마련한 범정부 합동대책이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 이용자 보호 강화 등을 위한 전략이 담겼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고, 디지털 신질서 구현의 이정표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게 왜 중요해

이해진 네이버 GIO과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창업자)가 지난 10월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소관 감사대상기관에 대한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뉴스1]

이해진 네이버 GIO과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창업자)가 지난 10월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소관 감사대상기관에 대한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뉴스1]

네이버·카카오 등 거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자 이를 규율할 제도를 정부가 마련했다. 독과점·불공정 행위를 처벌할 근거를 마련하고, 제2의 ‘카톡 먹통 사태’를 막기 위해 재난 방지 의무도 더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해외 주요국은 미국과 중국의 플랫폼 서비스를 주로 사용하지만, 한국은 검색·메신저·커머스 등에 경쟁력 있는 토종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들 플랫폼의) 건전한 성장을 유도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산업 전체의 글로벌 경쟁력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내용 뜯어보니

① ‘문어발식 확장’ 차단: 디지털 플랫폼의 특성에 맞는 ‘독과점 심사지침’을 제정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심사 지침은 전통 산업 기준이라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것. 검색 횟수, 체류 시간 등 플랫폼 서비스의 특성을 반영한 기준을 만들고 독과점 금지 행위 유형도 구체화 하기로 했다. 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겨냥해 기업결합(M&A) 심사 기준도 개정할 예정이다. 앱 마켓 경쟁 활성화를 위해 ‘인앱결제’를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② 네·카에 재난관리 의무: 일정 규모 이상의 데이터 센터와 네이버·카카오 등의 부가통신사업자를 재난관리 의무 대상에 추가한다. 설비 분산과 다중화, 안전성 강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또 서비스 장애가 발생할 경우 피해 구제 정보 등 이용자 공지를 강화하고 오픈마켓, 주문배달, 구인구직, 부동산, 숙박, 병의원 예약 등 생활 밀접 서비스에서 개인정보가 안전하게 쓰일 수 있도록 기준을 세울 방침이다.

③ 그밖에: 유망 플랫폼의 해외 진출과 혁신 기업의 성장을 돕는 방안도 나온다.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차세대 플랫폼 기술 개발과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소상공인의 온라인 판로 개척, 상권정보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위한 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자율보다 규제?

정부는 ‘범부처 플랫폼 정책협의체’를 통해 이날 발표 사항의 이행 현황을 점검하고 민간 플랫폼 기업의 자율 규제를 돕겠다는 계획이다. 내년 8월 출범하는 플랫폼 자율 기구의 법적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업종·분야별 자율 규약도 만든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정부가 중재 또는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입장.

자율 규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라지만 사실상 ‘규제 신설’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플랫폼 기업 관계자는 “자율 규제에 기반한 플랫폼 발전 방안이라고 하지만 내용은 거의 규제 강화”라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의 M&A를 규제하려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창업 후 투자를 받아 기업을 키워 대기업에 매각한 후 다시 창업에 나서는 선순환 구조를 약화할 수 있다는 것.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자칫 스타트업 M&A가 위축돼 창업 생태계가 영향을 받을까 걱정”이라며 “규제에 앞서 각계의 상황을 세심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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