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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녀·택시기사 살해범 31세 이기영…집 곳곳엔 또다른 핏자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개월여 사이에 동거녀와 택시기사를 잇따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은닉 등)로 구속된 이기영(31)의 신상정보가 29일 공개됐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이날 오후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이씨의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 등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29일 얼굴 사진이 공개된 택시기사와 동거녀 살해 피의자 이기영. 사진 경기북부경찰청

29일 얼굴 사진이 공개된 택시기사와 동거녀 살해 피의자 이기영. 사진 경기북부경찰청

경찰은 최근 신당역 살인사건 등의 사례처럼 피의자의 과거 사진과 실물 간 차이가 나 신상정보 공개의 효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 등을 고려해 새로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이씨의 선택에 따라 기존의 운전면허 사진을 공개했다.

신상공개심의위원회, 신상 공개 여부와 범위 결정 

 이날 위원장 1명을 포함해 총 7명(경찰 3명·외부 위원 4명)으로 구성된 신상공개심의위원회는 심의를 거쳐 이씨에 대한 신상 공개 여부와 범위를 결정했다.

특정강력범죄처벌법과 경찰청 신상 공개 지침에 따르면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인 경우 ▶범행에 대한 증거가 충분한 경우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나 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닌 경우 등 4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이기영이 지난 28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경기도 고양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이기영이 지난 28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경기도 고양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씨는 지난 20일 오후 10시 20분쯤 고양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 뒤 택시기사인 60대 남성 A씨에게 합의금 주겠다며 파주시 집으로 데려와 둔기를 수차례 휘둘러 살해하고 시신을 옷장에 유기한 혐의로 지난 25일 체포됐다. 지난 27일 경찰이 이씨의 차 뒷자리에서 혈흔을 발견해 추궁하자 지난 8월 초 거주 중인 집의 명의자이자 전 여자친구였던 50대 여성 B씨를 살해한 사실도 털어놨다.

이씨는 B씨의 시신을 집에서 9㎞가량 떨어진 파주시 공릉천변에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이씨는 “B씨와 생활비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자전거 수리 중 들고 있던 둔기로 살해한 뒤 루프백(차량 지붕 위에 짐을 싣기 위해 설치하는 장치)에 시신을 담아 옮긴 뒤 공릉천변에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공릉천 일대에서 지난 8월 초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돼 유기된 50대 여성의 시신을 찾기 위해 수색작업 중이다. 손성배 기자

경찰이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공릉천 일대에서 지난 8월 초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돼 유기된 50대 여성의 시신을 찾기 위해 수색작업 중이다. 손성배 기자

지난 28일 이씨가 구속되면서 경찰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29일 경기 일산동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찰은 전널 이씨의 통신기록과 금융계좌 거래내역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았다. 이씨는 피해자들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결제하거나 대출받은 금액이 총 7000만원가량에 달하고 동거녀 명의로 1억여원을 대출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범행이 모두 우발적이었다는 이씨의 주장 달리 범행 직후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거액을 사용한 사실 등이 미뤄 계획범행이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집안 소파, 신발 등에서도 핏자국 발견…국과수 성분분석 의뢰

 경찰은 감식 결과 집 내부 곳곳에서 핏자국을 발견해 또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를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사는 범죄가 이뤄진 집 안 소파, 신발, 캠핑용 수레, 벽면 등에서도 혈흔이 발견됐다. 발견된 혈흔에 대한 성분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모두 의뢰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캠핑용 수레의 혈흔은 동거녀의 시신을 옮기려고 담으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씨는 “캠핑용 수레의 크기가 작아, 다시 천으로 된 차량용 루프백에 시신을 넣어 파주시 공릉천변에 범행에 사용한 둔기와 함께 유기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진술을 토대로 혈흔이 묻은 캠핑용 수레는 확보했으나, 동거녀의 시신과 범행 도구, 차량용 루프백은 아직 찾지 못한 상태다.

고양이 사료 찾던 여자친구가 옷장에서 시신 발견 

 경찰 조사 결과 묻힐 뻔했던 이씨의 잔혹한 잇단 범행은 고양이 사료가 떨어지자 사료를 찾으려다 시신을 발견한 여자친구의 112 신고로 드러났다. 여자친구는 집안을 뒤지다가 끈으로 묶여있던 옷장 문을 열게 됐고, 짐들 아래에 있던 시신을 발견해 충격 속에서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 여성은 택시기사 살인 사건이 벌어진 날 자신의 가족과 함께 이씨와 식사를 한 뒤 음주운전을 말리다가 말을 듣지 않자 말다툼을 벌인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며 “이후 이씨는 음주 상태로 차를 몰고 가다 택시와 접촉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경찰은 이날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여죄를 캐고 있다. 사이코패스 검사도 준비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를 통해 이씨의 엽기적 범죄 행각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검사와 추가범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씨가 택시기사를 살해한 사실이 드러난 후 남녀 프로파일러 2명을 투입했는데, 당시 조사 과정에서 특별한 이상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일반적인 우발 범죄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범죄 행각이 드러나 다시 프로파일러를 투입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28일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이게 정말 큰 일이다’ 이런 상황 판단이 일반인과 좀 다른 것 같다”며 “적어도 닷새 동안 집에서 시신과 함께 생활하고 여자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인 것을 보면 희로애락의 감정이 일반인과 다르다. 이런 점에서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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