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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서 메뉴 고르기 힘든 이유? 자신의 취향 몰라서죠" [쿠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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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美食)은 한자가 말해주듯, 아름다움을 뜻한다. 어떤 맛이냐가 아닌, 어떻게 감상하며 먹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실제로 음식을 먹는다는 건 보고 맡고 듣고 만지고 먹는 오감을 자극하는 행위의 예술이다. 이 아름다운 예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을 미식 도슨트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프렌치 셰프 이영라다. 그는 “미식 도슨트의 역할은 식재료를 감상하는 심미안을 주는 것”으로 “스스로 취향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법학자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로스쿨을 마친 후 요리와 사랑에 빠졌고, 32세에 요리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오너 셰프로, 호텔의 메인 셰프로, 또 공유주방의 메뉴개발을 맡으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지금은 각종 식재료를 연구하며 강연을 통해 미식을 알리는 중이다.

주방에서 요리할 때가 가장 신난다는 이영라 셰프. 프렌치 샴페인 바 '르 캬바레 도산'에서 메뉴개발 중인 당시 모습. [사진 이영라]

주방에서 요리할 때가 가장 신난다는 이영라 셰프. 프렌치 샴페인 바 '르 캬바레 도산'에서 메뉴개발 중인 당시 모습. [사진 이영라]

미식 도슨트를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도슨트는 예술가의 작품을 잘 감상하게 도와주는 사람이죠. 저는 각각의 식재료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 하나하나를 잘 감상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게 미식 도슨트예요. 더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미식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거죠.

미식은 뭘까요.  

허기를 채우기 위한 끼니가 아니라, 나를 채우는 끼니를 하는 모든 과정이에요. 먹는 행위만큼 즐겁고, 단순하고, 필요하고, 그렇기에 위로가 되는 것이 없거든요. 좋아하는 케이크 한 쪽을 먹는 것,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그것 때문에 아침에 눈 뜨는 사람도 있거든요. 혹은 퇴근해서 찌개에 소주 한 잔 먹는 게 낙인 사람도 있고요. 그 모든 순간이 미식이죠. 파인다이닝에서 코스 요리를 대접받는 것만이 미식이 아니에요. 내가 나를 귀하게 생각하면서 먹는 한 끼, 혹은 한 입조차 미식이에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면 커피 한 잔을 내려도 고심해서 원두를 고르고, 정성스럽게 물 온도를 맞추게 되죠. 그 한 잔이 미식의 의식이자 큰 위로예요.

미식에 입문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건요.  

시장에 자주 가보세요, 놀이 삼아 때론 운동 삼아서요. 어쨌든 시장에선 그 철에 나는 식재료를 만날 수 있잖아요. 거기에 가면 적어도 '지금이 삼치가 나는 때구나', '감이 나오는 때구나'를 알 수 있죠. 식재료에 대한 지식과 취향이 쌓이고요. 한 끼 정도는 나를 위해 제철 식재료를 찾아서 먹는다거나 대단히 좋아하는 재료로 요리할 수 있게 돼요. 그게 식사의 즐거움을 높이고요. 곧 삶을 윤택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죠.

생각해보니 저도 어떤 식재료를 좋아하는지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취향을 알려면 자신을 스스로 끈기 있게 관찰해야 해요. 근데 그 과정을 많이 생략하세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취향에 무지하다는 걸 레스토랑을 하며 알게 됐어요. 메뉴를 고를 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여기 뭐가 제일 맛있어요?”예요. 그다음엔 블로그를 찾기 시작해요(웃음). “파워 블로거가 이거 맛있대”라면서요. 나는 오늘 뭐가 먹고 싶고, 나는 이런 음식을 좋아한다는 의견이 없어요. 강연에서 제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자신을 애정 어리게 관찰하지 않으면 평생 남의 취향으로 산다는 거예요.

 이영라 셰프는 지난 달까지 올리브 오일에 대한 미식 도슨트로 활약했다. [사진 이영라 인스타그램 캡처]

이영라 셰프는 지난 달까지 올리브 오일에 대한 미식 도슨트로 활약했다. [사진 이영라 인스타그램 캡처]

왜 자신의 취향에 무심할까요.  

국내 시장의 다양성이 부족해요. 취향을 알려면 다양한 경험에 나를 노출해서 관찰해야 해요. 경험하지도 않고 선호를 알 순 없잖아요. 해외에서 육류를 살 땐 목초 먹인 고기, 곡물 먹인 고기, 어미 젖을 먹다가 곡물까지 먹인 고기 등을 선택할 수 있어요. 사과만 하더라도 최소 8여 품종을 판매하죠. 반면 국내 시장은 판매 품종이 획일화되어 있어요. 육류는 부위별로만 구분되고, 사과는 대게 부사만 있죠. 우유에서 저지방이라는 옵션이 등장한 것도 비교적 최근이에요. 취향에 따라 선택하기보다 규격화된 상품을 고민 없이 집는 것에 익숙한 거죠.

다른 요인은요.

개성을 드러내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하죠. “전 뭐 안 먹어요”라고 말하길 꺼리잖아요. 까다롭게 보일까봐 대충 다 먹는 척하고요. 여럿이 식당에 가면 다른 이들이 시킨 대로 메뉴를 통일하는 것도요. 그게 각자의 식취향, 내지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까지도 드러내거나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식재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것 같아요. 

셰프에겐 식재료가 가장 큰 무기예요. 종일 함께해야 할 사랑하는 대상이고요. 또 내가 요리를 왜 사랑하게 되었나를 곱씹어보면 결국 식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맡았던, 오감을 자극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어요. 어머니가 요리를 참 좋아하시는데요. 매일 3시쯤에 우리 세 자매를 데리고 장을 보러 가셨죠. 집에 와선 우리한테 재료 손질하는 걸 놀이처럼 시키셨고요. 덕분에 어릴 때부터 각종 식재료에 친숙했죠.

이영라 셰프가 만든 산딸기를 얹은 봄나물 비빔밥. [사진 이영라 인스타그램 캡처]

이영라 셰프가 만든 산딸기를 얹은 봄나물 비빔밥. [사진 이영라 인스타그램 캡처]

프렌치 양식에 한국 식재료를 접목한 창작 메뉴를 주로 선보이시는데요.  

2016년에 세계적인 스페인 셰프인 페란 아드리아를 만난 적이 있어요. 분자 요리의 선구자이자 요리계에서 파격의 아이콘이죠. 당시 그분이 저한테 “영라, 너는 맥주가 뭐라고 생각해?”라고 묻는 거예요. 그야 음료라고 답했죠. 아니래요. 맥주는 메인 디쉬가 될 수도, 드레싱이나 디저트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 후 어떤 재료에도 상상력에 제한을 걸지 않고 접근해요.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서 많이 먹는 채소의 요리법을 봤어요. ‘우리나라 식재료 중 이걸로 대체해서 이렇게 조리하면 더 맛있는 요리가 되겠는데?’를 밤새 구상해보는 거죠.

본인을 위한 요리도 즐겨 하시나요.

그럼요. 전 요리하는 행위 자체를 너무 사랑해요. 틈만 나면 저에게 요리를 해주죠. 퇴근하고 절대 요리 안 하는 셰프들도 많거든요. 반면 전 밖에선 좋은 음식 대접하려고 애쓰고 정작 나에겐 대충 대접하기 싫어요. 반드시 하루에 한 끼는 나를 위한 끼니를 챙겨줘요. 고객을 위한 요리와 나를 위한 요리가 전혀 차이가 없죠. 손님에게 대접하듯 제철 재료를 활용해서 정성스럽게 조리하되, 그때그때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요. 맥주나 와인도 한 잔 곁들이고요.

올해가 요리 시작한지 10주년이시죠. 앞으로의 계획은요.  

셰프로서 제 목표는 딱 하나에요. 현역으로 이 일을 오래 하는 것. 그러려면 이 시점에서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식재료에 대한 내 전문성이 충분한가에 관해서요. 올해 2월부터 R&D 총괄직을 내려놓고 연구년을 가졌죠. 총 4개의 연구 분야를 정했는데, 지금까지 빵, 유제품, 올리브 오일에 관한 연구를 마쳤어요. 마지막 주제가 우리나라의 해산물이에요. 겨울에 해산물이 가장 다양하게 나오거든요. 내년 2월까지 연구하려고요. 연구가 끝나면 새 프로젝트를 할 예정이에요. 일상에서 미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개설하는 건데요. 레스토랑, 혹은 제철 식재료를 소개하는 팝업 공간이 될 수도 있겠죠. 이를 위해 요리사뿐 아니라 제빵사, 소믈리에,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과 ‘느슨한 미식 연대’라는 F&B 컨설팅 그룹을 만들었어요.

황희원 쿠킹 인턴기자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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