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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국내 감귤 육종을 위한 ‘꺾이지 않는 마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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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기고 이지원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장 

세밑 한파가 매섭다. 이맘때면 따뜻한 이불 속에서 손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새콤달콤한 감귤을 한 입만 먹으면 겨울 고뿔쯤 쉬 달아날 듯싶다. 서양에서는 대항해 시대 오랜 바다 생활로 인해 발생하는 비타민C 결핍증인 괴혈병을 감귤류로 극복했다. 감귤 100g에는 비타민C 36mg이 함유돼 있어 하루 3개면 성인 하루 비타민C 요구량을 충족할 수 있다. 감귤에 들어있는 비타민P는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고 혈액순환을 촉진해 뇌졸중·고혈압·동맥경화 극복에 도움을 준다. 동의보감에는 감귤 껍질과 씨가 위장장애·천식·식욕부진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의 감귤 생산량은 2021년 기준 61만3000t가량이다. 한 해 동안 한 사람이 대략 5kg짜리 2상자 이상을 소비한 셈이다.

감귤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재배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사에 기록된 백제 문무왕 2년 ‘탐라에서 방물을 헌상하였다’는 내용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 제주에서 감귤이 재배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감귤은 현재와는 다른 재래귤로, 고문헌에는 35종 정도가 기록돼 있으나 12종만 전해지고 있다.

현재 우리가 주로 먹고 있는 온주밀감은 중국의 온주 지방이 원산지로 일본에서 개량된 품종이다. 1911년 프랑스 신부인 에밀 타케에 의해 국내에 처음 도입된 뒤 1960년대 정부 지원으로 우리 땅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즐겨 먹는 대부분의 감귤이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임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농촌진흥청은 일본 품종 일색인 감귤 산업을 품질 좋은 우리 품종으로 발전시키고자 1991년 제주에 감귤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리고 2004년 국내 육성 1호 감귤 품종 ‘하례조생’을 개발했다. ‘하례조생’은 기존 품종 대비 당도가 1브릭스 높고, 신맛이 덜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도입 품종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아 농가들은 굳이 ‘하례조생’을 심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 품종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다시 10여 년이 걸렸다.

감귤을 재배하는 농업인의 마음을 흔든 것은 초기 ‘하례조생’을 심은 농가들이 수확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시설 안 토양에 피복재를 덮어 수분을 조절하면 도입 품종보다 당도 높은 과일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 입소문을 타며 ‘하례조생’의 재배면적은 546ha까지 늘었다.

최근 ‘하례조생’은 시설재배를 통해 내륙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체험농장 등에서 소소한 일상 속 특별한 이야기를 원하는 고객들로부터 사랑받으며 새로운 문화소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게다가 ▶새로 개발한 고당도 품종 ‘미니향’ ▶과즙이 진하고 껍질을 벗기기가 쉬운 만감류 ‘윈터프린스’ ▶향이 진하고 신맛이 강한 레몬 ‘제라몬’ 등의 재배도 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농산물 온라인 상점인 ‘레알리마켓’ 등을 통해 국내 개발 품종 유통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감귤산업 성장의 발판은 도입 품종이었으나, 이제는 외국 종자에 의존하던 시대를 지나 치열해진 국제 시장에서 우리 품종으로 당당히 경쟁할 수 있게 됐다.

산업을 굳건히 키우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 않던가. 10년 뒤 보급률 20%를 목표로 연구자들은 오늘도 치열한 마음으로 현장을 누빈다. 흰 눈 속, 싱그럽게 열매 맺은 주홍빛 감귤처럼 시장에 선보인 우리 품종에 더 주목해 주시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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