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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각' 구조조정 몸살 "매크로 못 봤다…초록마을 곧 시너지 낼 것" [팩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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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각은 도축한 돼지고기를 짧으면 하루, 길면 나흘 안에 배송해주는 온라인 D2C(direct to consumer, 직거래) 스타트업이다. 당일 산란한 달걀, 당일 짠 우유 등 신선식품이 주종목. ‘수학 영재’ 출신인 카이스트 졸업생 김재연(32)대표가 스물 여섯이던 2016년 창업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기업가치 2000억원을 찍고, 올해 4월에는 대상그룹의 친환경·유기농 식품 기업 ‘초록마을’을 인수했다. 중소기업벤처부로부터 ‘예비 유니콘’으로도 뽑혔다. 여기까지가 올해 상반기의 소식.

유동성 파티가 끝난 후 불어닥친 한파에 정육각은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달 47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한숨 돌렸으나, 당초 계획엔 한참 못 미치는 자금이다. 결국 같은 달 말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다. 신사업도 전면 중단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정육각 본사에서 김재연 대표를 만났다. 그는 “이번 위기는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라고 했다. 허리띠를 졸라맨 정육각의 생존 전략을 들어봤다.

23일 정육각 본사에서 정육각 김재연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정육각

23일 정육각 본사에서 정육각 김재연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정육각

“정육각을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구조조정까지 한 원인은.
“지난해까진 유동성이 풍부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원했던 만큼 자본을 조달할 수 없었다. 공격적인 투자로 성장하는 구조보단 재무 건전성을 우선해야할 상황이다.”
권고사직 대상은.  
“적자 구조를 탈피해야 하기 때문에 신사업을 전부 정리하기로 했다. 그 담당자들이 대부분 대상이 됐다. 산지직송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직샵’, 식품전문 판매몰인 ‘초샵’ 등이다. 재무 안정성이 확보되거나 대규모 후속 투자를 받기 전까지 신사업은 못 할 것 같다.”
사업 계획시 너무 낙관한 것 아닌가.
“정육각을 믿고 입사한 분들을 내 손으로 떠나 보낸 거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투자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시장이 얼어붙었다. 초록마을 인수(4월 29일) 후 일주일 만에 미국이 금리를 0.5%포인트나 인상했다. 예상 못했다. 반성하자면 매크로(거시경제)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했다. 지난 7년 동안 매크로(거시경제)에 대한 고민을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사업 방향을 수정했다던데, 뭘 바꿨나.
“스타트업은 적은 자원을 어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가 중요하다. 현금이 많을 땐 광고 등을 많이 했다. 지금은 현금 흐름이 빠듯해졌기 때문에 오가닉 성장(organic growth, 자체 경쟁력 강화 등)에 집중하고 있다.”
오가닉 성장이란 게 뭔가.
“우선 운영 효율을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정육각은 제조 공장을 주 5일만 가동해왔다. 여력이 없어서 그랬지만, 이걸 바꾸려면 자원 투입량이 많아져서 점차 우선순위서 밀렸다. 지금은 고객들의 구매를 유기적으로 늘려야 하므로, 1월초부터 공장을 주7일 가동할 예정이다. 이외의 각종 효율화 작업으로 매출 총이익률이 올해 초 대비 20%포인트 상승했다.”

초록마을, 내년 새벽배송 시작...“본격적으로 시너지 내겠다”

정육각은 지난 4월 컬리·바로고·이마트에브리데이 등을 제치고 대상그룹의 초록마을을 900억원에 인수했다. 온·오프라인 강점을 결합하겠다고 했지만, 두 회사 모두 적자여서 인수 당시부터 시장에선 우려가 나왔다.

무리한 인수로, 정육각이 자금난에 빠졌다는 시각도 있다.
“오해가 있다.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일은 아니지만, 인수를 하지 않았더라도 올해 투자 유치는 해야했다. 다른 스타트업들도 신사업을 중단하는 추세다. 신사업은 비용 대비 성과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록마을 인수 이후, 뭘 했나.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있었다. 최소 3단계였던 의사결정 체계를 조직장 자율에 맡겼다. 이전엔 3개월이 걸리던 신제품 개발 기간이 지금은 최장 2주로 단축됐다. 초록마을은 풀어야 할 문제들이 명확해서 고칠 때마다 성과가 굵직하게 나온다. ‘딱 봐서’ 우리가 개선할 수 있는 문제면 전부 고치는 중이다.”
딱 보고 개선한 게 뭔가.
“소비자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내부의 문제들이다. 가령 본사 물류센터 배송기사들이 주문 내역서를 일일이 확인후 수작업으로 물건을 픽업했다. 이걸 기계가 처리하게 하면 전체 비용의 10% 이상이 절감된다. 내년 1분기 적용 예정이다.” 
정육각·초록마을 둘 다 적자인데.
“초록마을은 지난해 감사보고서상 매출 2000억원, 영업손실 40억원이지만 내년 상반기엔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 정육각은 시간이 더 걸릴 거 같다. 다음달 초 정육각·초록마을의 첫 시너지를 선보이려 한다. 정육각이 오프라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신호탄이자, 초록마을의 축산 경쟁력을 끌어올리게 될 거다. 설 전후로 초록마을에 새벽배송도 도입할 계획이다.”
창업 7년차다. 이번 위기로 느낀 점 있다면.
“계획들이 무너져 힘든 시기이지만, 밖에서 보는 것 만큼 불안정한 상황은 아니다. 이 위기를 이겨내야 다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테니 열심히 해결해보겠다. 재정비한 정육각·초록마을이 성과를 내면 더 좋은 회사로 인정받을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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