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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밖 모스크바 노린다, 러 폭격기 잡은 우크라 '비밀무기'

중앙일보

입력

지난 11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을 조작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1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을 조작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개전 10개월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인기(드론)가 핵심 ‘비대칭 전력(상대방이 대응하기 힘든 무기)’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드론을 활용해 수백㎞ 떨어진 러시아 군사기지를 잇따라 타격하며 러시아의 장거리 미사일 공습 저지에 나섰다. 러시아도 여분이 부족한 미사일 대신 자폭 드론을 통해 우크라이나 민간 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이달 들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 내 군사기지를 겨냥한 장거리 공격을 벌이고 있다. 공격 수단은 드론이다. 지난 26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500㎞ 떨어진 러시아 남부 사라토프주 엥겔스 공군 기지엔 우크라이나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드론 공격으로 러시아군 3명이 숨졌다. 지난 5일과 6일에도 엥겔스 기지를 비롯해 러시아 서부 랴잔주 댜질레프 공군기지,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쿠르스크주 보스토치니 비행장 등에 우크라이나 측이 보낸 드론에 의한 공습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우크라 드론 공격에 주춤한 러 미사일 공습

지난 4일 위성사진으로 찍은 러시아 엥겔스 공군기지의 모습. 사진 막사테크놀로지

지난 4일 위성사진으로 찍은 러시아 엥겔스 공군기지의 모습. 사진 막사테크놀로지

이 같은 공격은 지난 10월부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미사일 공습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 “엥겔스 기지 등 비행장이 공격을 받으면 러시아는 전투기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이곳에 배치된 일부 순항미사일까지 잃을 수 있다”며 “그러면 이들 무기로 우크라이나를 공습하려던 러시아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엥겔스 기지엔 핵폭탄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Tu-95, Tu-160이 배치돼 있다. 러시아는 이들 폭격기와 장거리 순항미사일로 우크라이나의 기반 시설을 집중 공격해 우크라이나 전역을 에너지난에 빠뜨려 왔다.

드론은 사실상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유일한 장거리 공격 수단이다. 미국의 도움으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지만, 장거리 미사일은 미국이 지원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무기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해 확전하는 걸 원치 않아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자체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하는 건 반대하지 않는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6일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겨냥할 수 있는 자체 장거리 타격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막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5~6일 러시아 본토를 공격한 드론은 옛 소련제 드론 TU-141을 우크라이나군이 개조한 것”이라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최근 우크라이나의 국영 군수업체는 비행 거리가 960㎞ 이상으로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까지 타격할 수 있는 드론을 개발 중이다.

“우크라전은 최초의 드론 전쟁” 

지난 11월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1월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드론을 전장에서 활용하는 건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계속된 미사일 공습으로 발사할 수 있는 여분의 미사일이 줄어들자 이란제 자폭 드론인 ‘샤헤드-136’을 통해 우크라이나 기반 시설을 타격하고 있다.

이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최초의 본격적 드론 전쟁”(워싱턴포스트)이란 평가가 나온다. 드론이 전면에 등장해 전쟁 당사자 모두에 실질적 피해를 입힌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에서 미군이 드론을 활용해 왔지만 그때는 미국의 공군력으로 상대방이 완벽히 제압당한 상황에서 벌어진 작전이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대전에서 드론의 효용가치가 커지는 건 무엇보다 저렴한 비용 때문이다. 샤헤드-136의 경우 대당 가격이 2만 달러(약 2550만원) 내외인 데다 비행가능 거리도 2000㎞에 달한다. 한 발 발사하는 데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씩 드는 장거리 순항 미사일에 비하면 매우 싸다. 아군의 인명 피해 없이 적의 후방 공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군이 정찰용으로 쓰는 중국 드론기업 DJI의 매트리스300 드론의 경우 4000달러(약 500만원)에 불과하지만, 러시아의 군사시설을 탐지해 우크라이나군의 로켓 타격 정확도를 매우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전했다.

알 자와히리 암살·아제르바이잔 전쟁 등에 사용

미국 공군의 드론 MQ-9 리퍼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공군의 드론 MQ-9 리퍼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드론은 이스라엘이 1970~80년대 중동 국가들의 방공망 식별을 위해 전장에 처음 투입했다. 당시엔 정찰 목적으로 쓰였다. 이스라엘의 성공에 자극받은 미국이 코소보전쟁(1999)에서 정찰용 드론 MQ-1 프레데터를 시범 투입한 이후 본격적인 개발에 나서면서 드론은 공격용으로 진화했다. 기술력을 쌓은 미국은 지난 2020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올해 8월 알카에다 2인자 알 자와히리를 드론으로 암살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이외의 국가들도 드론을 활용한 다양한 작전을 벌여왔다. 이란은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생산 시설을 드론으로 공격해 피해를 줬고, 2020년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전쟁에서는 아제르바이잔군이 튀르키예(터키)산 무인기로 아르메니아 기갑전력을 무력화시켜 전세를 역전시켰다.

지난 2020년 아제르바이잔 드론이 아르메니아 기갑차량에 대해 공습하고 있다. 사진 아제르바이잔 정부 유튜브 계정 캡처

지난 2020년 아제르바이잔 드론이 아르메니아 기갑차량에 대해 공습하고 있다. 사진 아제르바이잔 정부 유튜브 계정 캡처

생화학무기 통한 대량 살상 우려도

지난 10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이란 출신 난민이 이란산 드론을 통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0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이란 출신 난민이 이란산 드론을 통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론의 효율성이 확인됨에 따라 향후 세계 각국은 드론 전력 확충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퇴역 장군 유리 발루예프스키는 올해 발간한 선진 군사 전략에 관한 책에서 드론을 “현대전의 진정한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드론 전력이 커지면서 생화학무기 등을 통한 대량 살상 공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우크라이나군 산하 민병대 조직인 아조우 연대는 “러시아 무인기가 마리우폴에 정체불명의 화학 물질을 배출하는 공격을 벌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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