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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이름이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노인 천국' 일본이 찾은 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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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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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일본 현장방문 동행 취재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한국 노인이 선호하는 임종 장소는 뭐니뭐니해도 집이다. 나와 가족의 체취가 가득한 집에서 떠나길 고대한다. 어유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서비스연구센터 부연구위원과 고정은 경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지난 8월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에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노인의 37.7%가 자택을 원했다. 병원(19.3%), 호스피스(17.4%) 순이다. 실상은 딴판이다. 지난해 의료기관 사망이 74.8%, 가정 사망이 16.5%이다(통계청).

재택임종이 늘려면 환자가 무조건 집으로 간다고 될 게 아니다. 큰 병원 입원에서 출발해야 한다. 집에 가도 되게 재활치료나 회복기 치료를 한다. 집으로 가면 방문 의료, 응급의료, 돌봄, 복지체계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지역포괄케어 체계를 갖춰야 한다. 한국에선 이런 게 안 된다. 분야별로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고, 핵심인 의료가 빠져 있다.

‘입원 대신 집 보내기’ 계속 늘어
가족 설득 후 방문의료·돌봄 제공
입원기간 79% 단축, 의료비 절감
수가 조정해 재택의료 활성화를

전 직원이 조기 귀가 방안 짜내기

일본 도쿄 ‘집으로돌아가자병원’ 의료진이 환자를 빨리 집으로 보낼 방안을 찾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일본 도쿄 ‘집으로돌아가자병원’ 의료진이 환자를 빨리 집으로 보낼 방안을 찾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노인 인구 29%인 세계 최고령 국가 일본은 우리보다 15~20년 앞서 있다. 지난 18~21일 보건복지부 이기일 제1차관 일행의 일본 고령화 현장 방문에 동행했다. 일본의 해답은 ‘집으로’이다. 19일 오후 일본 도쿄 이타바시구 ‘집으로돌아가자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이 속한 의료법인 호무라의 방문간호팀 이름은 ‘집이라다행이다’, 치과팀은 ‘밥이먹고싶다’이다. 그 병원 4층에서 테이블을 둘러싸고 13명의 의료진이 태블릿 PC를 보며 토의 중이다. 의사·간호사·작업치료사·물리치료사·사회복지사·행정직원 등 다양한 직종이 모였다.

이기일 차관이 회의 주재자 간호사 미우라에게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미우라는 “환자는 집으로 가고 싶어하고, 가족은 시설로 보내기를 원한다. 어떻게 할지 토의 중”이라고 대답했다. 미우라는 “환자 의견을 존중하면서 실행 가능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환자가 집으로 가면 우리가 어떤 서비스를 지원할지 가족에게 제시해 설득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는 다른 데서 급성 치료를 받은 환자가 온다. 뇌경색·폐렴·골절 환자를 받아서 재활 치료를 한다. 암 환자 통증을 조절하고, 호흡기 환자가 걷게 해서 귀가 준비를 한다. 외래진료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동안 환자의 집을 정비한다. 더 공을 들이는 게 있다. 환자와 가족이 서로 말하지 않은 속내를 끌어내 귀가 방안을 찾는다. 여기에 3주가량 걸리고, 대개 30~35일 만에 귀가한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후 지난달까지 입원 환자 980명의 77~98%가 집으로 갔다. 나머지는 노인시설로 갔다. 집으로 보낸 뒤 의사·치과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사회복지사 등이 방문 진료를 간다. 한국의 요양보호사격인 헬퍼도 재택요양을 돕는다. 미즈노 신타 원장은 “어떡하든 환자를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보내려 노력한다”고 말한다.

사이타마센트럴병원 마루야마 원장(앞줄 왼쪽에서 넷째)을 비롯한 직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 복지부 이기일 제1차관(앞줄 왼쪽에서 다섯째) 일행을 반기는 모습. 두 병원은 의료진·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 등이 환자 집에서 포괄적 케어를 제공한다. [사진 보건복지부]

사이타마센트럴병원 마루야마 원장(앞줄 왼쪽에서 넷째)을 비롯한 직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 복지부 이기일 제1차관(앞줄 왼쪽에서 다섯째) 일행을 반기는 모습. 두 병원은 의료진·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 등이 환자 집에서 포괄적 케어를 제공한다. [사진 보건복지부]

19일 오전 방문한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센트럴병원도 지역포괄케어 전문이다. 급성 치료가 끝나고 회복 단계에 있거나 만성기에 접어든 환자의 재활을 담당한다. 요양병상·노인보건시설·지역포괄지원센터 등을 운영한다. 이 병원 마루야마 나오키 원장은 “자기 동네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중단없이(Seamless) 돌보는 게 중요하다”며 “집으로 가지 못하고 요양시설로 가는 환자도 괜찮아지면 집으로 간다”고 말한다. 그는 “‘집에 갈 준비하러 갑시다’라고 하면 환자가 다 받아들인다”며 “민간병원이지만 지역과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치된 82세 초기 치매 환자의 예를 들었다. 인공항문 전용 백 대신 비닐을 쓰고 있었고,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지역포괄지원센터 직원이 방문해 개호(한국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받게 설득했고, 방문진료·방문케어로 연결됐다고 한다. 마루야마 원장은 “주민센터 같은 행정기관과 연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택의료하니 가정사망 40%로 올라

일본은 왜 ‘집으로’로 방향을 틀었을까. 사이타마 센트럴병원의 지역포괄지원 담당자 데하리 유키는 “2025년 단카이세대(1947~49년 출생한 베이비부머)가 75세가 된다. 3년 안에 지역포괄케어를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75세 이상의 초고령 노인 증가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의료법인 유쇼카이는 재택의료 전문이다. 전국 21개 의원이 7369명의 재택환자를 돌본다. 연 14만여건의 진료를 한다.

사사키 준 이사장은 “재택의료를 하면 환자의 급작스러운 악화를 막아 입원을 예방한다. 환자당 입원 기간이 41.2일에서 12.5일로 줄어 연간 636억원의 입원비를 절감했다”고 말한다. 편안한 임종에도 기여한다. 유쇼카이 환자의 40%(병원 사망 28%)가 집에서 숨진다. 사사키 이사장은 “네덜란드·스웨덴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사사키 이사장은 왜 일본에서 재택의료가 가능한지를 설명했다.

“고령화가 지속하면서 수명이 늘고, 이들이 아프지만 숨지지는 않아요. 돌봄이나 요양 수요로 이어지지요. 이런 사람은 병원에 오기 힘들어 의사가 가야 하는데, 그래서 일본은 재택진료 수가를 올렸어요. 재택진료를 안 하고 외래진료만 봐서는 어렵게 만들었어요. 일본의 젊은 의사는 외래진료보다 재택의료를 선호합니다. 열심히 하면 돈을 더 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