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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역지사지(歷知思志)

정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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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문화부 기자

유성운 문화부 기자

정성공은 17세기 ‘반청복명(反淸復明)’을 외치며 대만을 근거지로 청나라에 대항했던 인물이다. 부친 정지룡은 해적이면서 동시에 무역업을 하며 세력을 키웠다. 명나라에서 벼슬도 얻었다. 청나라가 들어서자 정씨 세력은 이를 부정하고 중국 남부 해안을 거점 삼아 명나라 부흥운동을 펼쳤다. 중과부적이라고 판단한 정지룡은 곧 청에 투항했다.

반면 아들 정성공은 강력한 해군을 앞세워 저항을 이어갔다. 정성공은 한때 난징(南京)을 포위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청나라가 해안 마을을 모두 내륙으로 옮겨 연결을 차단하자 세력이 위축됐다. 정성공은 대만으로 건너가 그곳을 지배하던 네덜란드 세력을 물리치고 새 기반을 마련했다.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서 말한 정도령이 정성공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정성공

정성공

정성공은 20세기 중반 대륙을 공산당에 내주고 쫓겨온 대만 국민당 정부에게 좋은 상징이 됐다. 그의 이름을 딴 대학을 설립하는 등 정성공을 통해 대륙 수복의 꿈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최근 대만에서 정성공의 이미지는 조금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반청복명 투쟁보다 대륙과 결별하고도 독립을 유지하며 경제와 국방을 일군 과정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그 발판이 된 것은 일본 및 동남아시아와의 해상 무역 네트워크였다. 현재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는 속에서도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미국·유럽·일본 등과 밀착하며 가치를 높여가는 대만의 노선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한국의 처지도 대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에서 의병투쟁만 찾아 강조할 때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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