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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北무인기 도발 전…김정은 '김씨일가 성지' 삼지연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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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백두산 인근의 양강도 삼지연(三池淵)을 방문했다고 대북 소식통이 26일 전했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8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백두산 인근 삼지연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보고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당시 행사에서 김 위원장과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8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백두산 인근 삼지연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보고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당시 행사에서 김 위원장과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연말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소집을 앞두고 '삼지연 지도부 회의'를 통해 내년도 국가 전략의 큰 방향을 결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백두 혈통을 권력의 정통성으로 내세워온 김 위원장이 그간 삼지연을 찾아 주요 전략과 정책을 결정해왔다. 이에 따라 이번 주 열리는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모종의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이날 북한이 무인기를 한국 내로 침투하며 무력 도발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삼지연행이 북한의 대남 도발 결정과 관련됐는지 주목된다.

김여정 막말 담화, 삼지연서 나왔나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달 중하순께 삼지연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위원장의 연말 삼지연행엔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비롯해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등 북한을 움직이는 핵심 최고위층 인사 소수만 동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지난 20일 북한의 무기체계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한 한국과 미국을 향해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던 김여정의 담화도 김 위원장의 삼지연 일정 과정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8월 평양에서 열린 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김 부부장은 지난 20일 자국의 무기체계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 한 ·미를 향해 막말이 담기 담화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8월 평양에서 열린 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김 부부장은 지난 20일 자국의 무기체계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 한 ·미를 향해 막말이 담기 담화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위치한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고출력 고체 엔진' 시험 과정을 지켜본 이후 열흘 이상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11주기 추도식이 열린 평양 금수산 태양궁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까지 열린 10번의 김정일 추모행사에 모두 참석했다.

삼지연 회의 내년 메시지 주목 

이번엔 김 위원장이 추모식을 불참하면서 삼지연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내놓을 내년 대남, 대미 메시지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북한은 백두산을 김일성 주석의 항일투쟁 본거지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출생지라고 주장하며 '김씨 일가'의 정치적 배경으로 내세워왔다. 특히 김 위원장은 2018년부터 삼지연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발했고, 1·2단계 공사가 완료된 2019년 12월 이곳을 '군(郡)'에서 '시(市)'로 승격했다. 지난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 80주년을 맞아 열린 중앙보고대회도 평양이 아닌 삼지연에서 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3년 11월 고모부인 장성택 숙청을 결심하기 위해 백두산 삼지연을 찾은 모습. 이때 동행한 이들은 '삼지연 8인방'으로 불린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3년 11월 고모부인 장성택 숙청을 결심하기 위해 백두산 삼지연을 찾은 모습. 이때 동행한 이들은 '삼지연 8인방'으로 불린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삼지연과 백두산을 자신의 중요한 정치적 결정의 계기로 삼아왔다.

특히 집권 초기인 2013년 11월 말 고모부인 장성택을 숙청했는데, 장성택 처형 직전에 삼지연을 방문했다. 당시 항공기용 화기인 고사포로 자신의 고모부를 공개처형한 것은 김정일 사망 전까지 권력을 누려오던 세력과의 정치적 결별을 공개 천명한 것으로 해석됐다. 해당 결정에 참여했던 당 부부장급 '삼지연 핵심멤버' 8인방도 김정은 시대의 신진 세력으로 떠올랐다.

"러시아산 백마 수입"…선전전 가능성

북한은 지난 11월 북한 동북부 나선특별시 두만강역과 러시아 연해주 하산역을 오가는 열차의 운행을 약 2년 8개월 만에 재개했는데, 당시 러시아 언론들은 북한이 '오를로프'종 준마(駿馬) 30마리를 반입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0월에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0월에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모습. 연합뉴스

이와 관련 한·미 정보당국은 식량난에 봉착한 북한이 돌연 백마를 수입한 데 대해 "백두산 마케팅을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익명을 원한 정보 관계자는 "러시아산 백마는 오랫동안 기획된 삼지연 회의와 관련이 있다"며 "이번 주 노동당 전원회의를 앞두고 백두산과 백마 등을 활용한 선전전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백마는 북한이 김일성 주석 때부터 백두혈통의 상징으로 내세워왔던 동물이다. 한국에선 검찰 수사를 받는 김성태(54) 쌍방울 전 회장이 김 위원장에게 에르메스 말안장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김정은 정권은 백두산과 삼지연을 북한 주민들을 설득할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 활용해왔다"며 "스스로 핵무력 완성을 주장하면서 경제·외교적 고립에 처한 김정은이 '삼지연 구상'과 미래 세대를 향한 메시지를 통해 강경한 대외 메시지와 주민들의 결집을 유도할 새로운 정치 구호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왜 삼지연인가?…중대 결심 전후 삼지연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내외적 고비마다 자신들이 '혁명의 성지'라고 부르는 삼지연에서 장고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북한은 각종 계기마다 행정구역상 삼지연시에 포함된 백두산을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활동 본거지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출생지라고 밝히며 정권의 정통성과 연결하곤 했다.

북한 최고지도자에 오른 김 위원장의 삼지연 첫 공식 방문은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숙청과 연결됐다. 이후에도 삼지연은 대미·대남 평화공세로 자신들의 정책적 노선을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하고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직후 삼지연을 방문해 장고에 들어갔는데, 이듬해 신년사에서 대외 강경노선을 유화 노선으로 급전환하는 메시지를 내놓으며 평창겨울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다.

2018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한 국면에서도 삼지연을 찾았다. 같은 해 9월엔 남북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삼지연 공항을 통해 백두산 천지를 찾았다.

북·미 대화 국면이 소멸된 2020년 10월 김 위원장은 백두산에 오른 일주일 후 남북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금강산관광지구의 남측 시설들을 들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지난주 최고위급 간부들과 함께 삼지연을 방문한 이유도 이달 하순 당 전원회의를 앞두고 한반도 정세 및 국정 운영과 관련 모종의 결단을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연말 전원회의를 앞두고 김 위원장이 삼지연을 방문한 만큼 내년도 전략의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삼지연은 백두혈통으로 불리는 김씨 일가와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을 정치적으로 상징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과 엘리트들의 충성과 결속을 강화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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