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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학현학파’ 키운 진보 경제학의 거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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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진보 경제학계 대부 고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명예이사장의 생전 인터뷰 모습. [중앙포토]

진보 경제학계 대부 고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명예이사장의 생전 인터뷰 모습. [중앙포토]

대표적 원로 진보 경제학자인 변형윤(서울대 명예교수) 서울사회경제연구소 명예 이사장이 25일 별세했다. 95세.

1927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나 경성중학을 졸업하고 1945년 서울대 상대 전신인 경성경제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28세 때이던 1955년 모교 교편을 잡았다.

1992년까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분배경제학 등을 가르치고 소득 재분배와 균형적 경제 발전을 강조했다. 성장 일변도의 한국 경제학계에 분배의 중요성을 알린 학자로 평가받는다. 1950년대에는 경제통계학·계량경제학을, 60년대에는 경제변동론 같은 최신 이론을 국내에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서울사회경제연구소는 고인에 대해 “성장의 폐해인 물가·분배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등 한국 경제가 걸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중소기업·노동자 등 경제 주체들이 정당한 경제적 권리를 관철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평가했다.

고 변 명예 이사장은 평생 영국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1842~1924)을 연구하고 소개했다. 마셜의 케임브리지대 교수 취임사 문구인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경제학은 부의 축적뿐 아니라 인간 존중의 학문, 인간 행복을 추구하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수차례 고위직을 제안받았으나 사양하고 후학 양성에 집중했다.

마음속에 새긴 경구처럼 사회·경제 민주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1960년 4·19혁명 때 4·25 교수단 시위에 참여했다. 1980년 서울대교수협의회 회장으로 민주화에 앞장서다 강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1989년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창립 당시 공동대표도 맡았다.

1982년 해직 교수 시절 문을 연 ‘학현연구실’은 후학 양성의 요람이자 그의 이론을 따르는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을 아우르는 ‘학현학파’의 산실이었다. 학현학파는 서강학파, 조순학파와 함께 국내 경제학계 3대 학파로 꼽힌다. 학현연구실은 1993년 지금의 ‘서울사회경제연구소’로 확대 개편됐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진보정권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 ‘학현(學峴)’은 학문의 고개를 넘자는 뜻의 고인의 아호다. 노무현 정부 때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문재인 정부 당시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학현학파로 꼽힌다.

유족으로는 아들 기홍씨와 딸 기원·기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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