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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 화병" 질게 뻔한 소송 건 그들…'만원의 행복'은 사치다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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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가 1600여명과 함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 서 교수 등은 ″조 전 장관이 청문회와 소셜 미디어 등에서 숱한 거짓말을 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페이스북 캡처

지난해 5월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가 1600여명과 함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 서 교수 등은 ″조 전 장관이 청문회와 소셜 미디어 등에서 숱한 거짓말을 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페이스북 캡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숱한 거짓말로 우울증·탈모·불면증·울화병·자살충돌·대인기피·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다” 

 지난해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등 시민 1617명이 조 전 장관에게 1인당 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장의 일부다. 소장에는 자식에게 ‘아빠 찬스’를 주지 못해 미안해 밤잠을 설친다는 사연,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출신 의사에 대한 불신이 생겨 병원에 갈 때마다 불안감에 시달린다는 사연 등이 가득 담겼다.

그들이 주장한 분노와 슬픔이 승소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1년 넘게 이 사건을 들여다본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정치적·형사적 책임을 부담해야 할 수는 있다”면서도 “국민 개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불법행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조 전 장관의 행동으로 국가적·사회적 법익이 침해된다고 해도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매우 주관적”이라며 “이런 감정으로 인해 배상이 필요할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예상치 못한 결론은 아니었다. 원고들을 대리한 김소연 변호사(윌 법률사무소)는 “손해배상 법리와 맞지 않아 패소를 예상하고 있었다”며 “법조인 입장에서 보면 부적절한 소 제기였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조 전 장관에게 소장을 한 차례 쥐여준 것에 큰 의미를 뒀다. “조 전 장관이 소장에 담긴 수많은 울분을 읽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소송을 ‘만원의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원고 한 명당 소송비용을 만 원씩 부담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이 만 원짜리 우표를 모아 부친 편지 같은 것이라는 의미다.

 법원이 홧병난 시민들의 사서함이 되는 현상은 ‘뉴노멀’이다. 국정농단 사태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시민 4400여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했다가 2020년 12월 최종 패소했다. 그 대척점에 선 어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관들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지난달 1심에서 패소했다. 지난 대선 직후에는 한 현직 변호사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단일화를 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해 2월 첫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항의한다’고 쓰인 소장은 접수하는 것만으로도 원고들에게 위로가 된다고 대리인들은 이야기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일단 상대에게 자신의 성난 감정을 전달한 것으로 일단 얼마간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역시 사법의 회복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에는 소송과정 내내 승패와 관계없이 서로의 상처를 파헤쳐 쌓이게 되는 앙금이 너무 무겁다.

물론 재판청구권은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편지 같은 소장도, 첨예한 법리 다툼이 벌어지는 소장도 법관에게는 모두 같은 무게다. 그러나 만성적인 재판 지연과 사건 적체가 하루가 다르게 심각해져 가는 현실에서 판결이 하루 더 늦어지냐 당겨지냐는 누군가에겐 흥망의 문제일 수도 있고 생사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들이 말하는 ‘만원의 행복’은 타인의 보이지 않는 희생을 전제로 한 사치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파도의 종착지는 늘 법원이라지만 어느 물결은 법원 앞에서 멈춰야 한다. 재판청구권은 ‘만원의 행복’보다는 권리구제가 보다 절실한 이들의 권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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