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 이후 3년…아직 韓 문턱 못넘은 이 낙태약

중앙일보

입력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3년여가 흐른 가운데 현대약품이 추진해 온 먹는 낙태약의 국내 도입이 불발됐다. 현대약품은 자료를 보완해 다시 품목 허가를 신청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여성 건강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현대약품 “허가 재신청할 것”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현대약품이 임신중절 의약품 '미프지미소정'의 품목허가 신청을 15일 자진 취하하면서 허가 심사 절차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2일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현대약품 측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식약처에서 요청한 여러 자료를 정해진 기한 내에 제출할 수 없어서 취하하기로 했다”면서 “미흡한 자료의 상세 내용은 개발사 관련 정보라 공개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일정을 말하긴 어렵지만, 최대한 적극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자료 확보 즉시 품목 허가를 재신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식약처는 향후 제약사가 미프지미소정의 품목허가를 다시 신청할 경우 이번 심사에서 제출되지 않은 보완사항을 중심으로 심사하겠다고 했다.

미프지미소정은 미페프리스톤(200mg 1정)과 미소프로스톨(200ug 4정)을 주성분으로 하는 임신중절 의약품이다. 현대약품은 지난해 3월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미프지미소에 대한 국내 판권을 독점 계약했다. 국내에 알려진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톨 성분의 제품명이다.

현대약품은 “미프진(미페프리스톤)의 자궁 내 임신중단의 허가된 용법은 해당 약을 단독으로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소프로스톨이나 그와 유사한 계열의 약물을 별도로 복용하게 되어 있다”면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임신중단약물로 지정한 필수의약품 역시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로 구성된 의약품”이라고 밝혔다. 현대약품에 따르면, 미프지미소정은 캐나다 및 호주에서 시판 허가를 받고 판매 중이다.

“보건 당국, 국민의 건강·안전 방치” 비판

식품의약품안전처 전경. 연합뉴스.

식품의약품안전처 전경.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지난해 1월부터 낙태죄 처벌 효력이 사라졌지만,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선 미프진이 무허가 의약품이라 판매와 구매 모두 불법이다. 낙태를 원하는 일부 여성들이 의사 처방 없이 인터넷에서 암암리에 팔리는 검증 안 된 약물을 비싼 값에 사서 복용하고 불완전 유산 등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 문제 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허가 문턱을 넘지 못하며 미프진의 국내 도입은 또 기약 없이 미뤄졌다. 시민단체에선 식약처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등 시민단체는 지난 16일 성명서를 내고 “사용된 지 30년 된 의약품에 안전성·유효성 자료 보완을 요구하는 등 허가 절차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심사를 운영해 왔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이 약을 이용한 임신 중지를 원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방치해 왔다”면서 “식약처는 (제약사의) 자진 철회를 핑계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통상 다른 신약을 검토하던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검토했다”면서 “특별히 더 자료를 요청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자료를 (현대약품이)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받아와야 하는 것이다 보니까, 그 과정 중에 조금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앞서 식약처는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약품에 안전성·유효성·품질 자료 등 일부 자료의 보완을 요청했는데, 제약사 측이 제출 기한을 두 차례 연장한 뒤에도 일부 보완 자료를 제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허가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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