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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20년 숙원' 초음파 승리했지만…더 큰 장벽 기다린다

중앙일보

입력

간 초음파 사진. 중앙포토.

간 초음파 사진. 중앙포토.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한의사협회는 “정의로운 판결”이라고 대환영을 표했고, 의사협회는 “총력을 다해 저지하겠다”고 반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2일 한의사 A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0∼2012년 한의원에서 초음파 진단기기를 이용해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촬영하고 이를 토대로 진단을 내리는 등 의료 행위를 했다는 이유(의료법 위반)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의료 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며 유죄 판결했다. 반면에 대법원은 22일 “의료공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의료 행위 기준이 필요하다”며 “한의사가 해당 기기를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 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등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법원은 X선, 초음파 진단기기가 “의료법상 한의사의 면허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왔는데, 이번에 초음파 진단기기는 뒤집은 것이다. 이번 판결은 A씨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면허된 것 이외의(면허 외의) 의료 행위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진단용 의료기기인 경우에 한정해 보조 수단으로 쓰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4년 2월 대법원 선고(2010도 10352)를 포함해 이번 판결과 배치되는 기존 판결들을 변경할 예정이다.

 현대 의료기기를 둔 갈등의 역사는 깊다. 한의사가 사용하다 적발되면 소송으로 맞섰다. 소송 끝에 한의사의 사용이 허용된 게 초음파 치료기, 극초단파 치료기, 초단파 치료기, 온·냉 경락요법, 적외선 치료기 등 14개인데 이번에 초음파가 추가됐다. 이 중 안압 측정기·청력검사기 등 5개는 헌법재판소가 2013년 12월 허용 결정을 한 것이다.

 법원·헌재에 의해 한의사 사용 불가 판결이 난 게 7개이다. 컴퓨터 단층촬영(CT), X선 골밀도 측정기, 필러,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 카복시 치료기기 등이다. 뇌파계는 현재 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보건복지부도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면허 범위에 벗어난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해 왔다.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X선·CT 등) 안전관리 규칙 같은 법령 적용자에 의사·치과의사·치과위생사·방사선사·간호사·간호조무사 등은 있지만, 한의사는 없다.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특수의료장비 관련 법령도 마찬가지다. 다만 대법원 판례나 헌재 결정에서 한의사에게 허용하면 이를 따랐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뉴스1.

 한의계에서 가장 강하게 요구해 온 의료기기가 초음파와 X선이다. 초음파는 20여년 만에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X선은 그렇지 않다. 한의사 사용을 허용하는 법령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진도가 안 나간다. 그 전 국회에서도 그랬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대법원의 초음파 판결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한의사협회는 22일 성명에서 “한의사들이 국민 건강을 위해 현대 진단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되기를 기대한다”며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 반면 박수현 의사협회 대변인은 23일 “이번 판결이 초음파 기기 사용을 완전히 허용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중앙지법의 후속 판결에 집중하거나,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의료법 개정 작업에 나서는 등 최선을 다해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전면 허용할지 이런 걸 담은 지침을 내놓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양측 갈등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을 세밀하게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한의사들이 초음파 기기를 얼마나 사용할지도 관심 거리다. 초음파 기기 사용의 전제 조건은 건강보험 장벽 넘기다. 건강보험에서 건보 적용, 비적용(비급여)의 가르마를 타줘야 한다. 이 과정이 멀고도 험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한방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을 거쳐야 한다. 신의료기술로 판정되면 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 비급여라도 인정받아야 한의사들이 초음파 진단 비용을 받을 수 있다. 그 전에는 비용을 받을 길이 없다. 진단 보조용으로 쓸 수밖에 없다. 이마성 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대법원이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을 허용했기 때문에 환자들이 폭넓게 혜택을 볼 수 있게 조속히 건강보험이 적용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비급여로 인정된다면 급여로 전환하는 데 추가로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다. 2008년 한의사의 물리요법이 비급여로 인정받은 이후 지금까지 급여로 전환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의사는 “이번 판결을 환영할 만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에 당분간 상징적인 의미로만 남아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22일 보도자료에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자료에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허용된다고 하여 곧바로 한의원의 초음파 검사료가 국민건강보험의 대상이 된다는 취지가 이니다. 즉,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대상에 해당하는지는 국가의 보건의료정책 및 재정의 영역으로, 그 진료 방법이 의료법 위반인지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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