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北, 7분이면 日타격…유사시엔 따질 시간없다, 지금부터 챙겨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이 북한·중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확보하면서 한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게다가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의 '1%'에 묶여 있던 방위비를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패전국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달가울 리 없지만, 날로 과격해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앞에 두고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는 현실이 됐다. 동맹인 미국이 환영 일색의 지지를 밝힌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임시 각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적 미사일 기지 등을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 보유를 포함한 내용의 안보 문서 개정을 결정했다.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임시 각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적 미사일 기지 등을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 보유를 포함한 내용의 안보 문서 개정을 결정했다. 연합뉴스

문제는 한국의 사전 동의 없이 일본이 북한을 겨냥해 한반도에 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우려다. 주일 국방무관을 지낸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장(예비역 육군 준장)은 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긴 어렵다"며 "사전 동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한·일 양국이 한반도 유사시 군사작전에 대한 역할 분담 논의를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왜 '반격 능력'을 가지려 하나.
우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현실화됐다. 북한은 50~70발의 핵탄두와 이를 일본에 쏠 수 있는 600여발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이동식 발사대(TEL)뿐 아니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수단도 다양해져 미국의 확장억제만 의존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또 다른 위협 요소는 중국과 러시아의 연계 가능성 증대다. 일본은 핵전쟁 개념 변화에 주목한다. 그간 핵은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처음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중 전략경쟁 격화로 역내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커졌다. 일본 입장에선 굉장히 위협이 커진 상황이다. 또 일본이 역내에서 군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미국의 주문도 있었다.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장이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부영태평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장이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부영태평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한국의 동의 없이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우려는 예전부터 있었다. 실제 2015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제가 논란이 됐을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과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간 회담에서 관련 논의가 오갔다. 한 장관은 "헌법상 북한도 우리 영토"라며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북한을 공격할 때는 반드시 한국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문제 제기했다. 이때 나카타니 방위상은 "한국의 시정권(施政權, 입법·사법·행정 등 3권의 행사 권한)은 휴전선 이남 지역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한·미·일 안보 협력 차원에서 유사시 그 문제는 당연히 사전 논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완곡히 말했다. 결국 "양국간 안보 현안에 관해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는 수준에서 당시 한·일 양국의 공식 입장으로 정리됐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어떤가.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7분 30초 만에 일본 전역에 닿는데, 사전 동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일본이나 미국이 북한의 공격을 받는 상황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상황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전에 대처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한·미·일 간 긴밀한 정보공유는 물론 유사시 상호 역할 분담과 대처를 위한 훈련도 진행해야 한다. 그동안 한·일 간에는 유사시 군사작전에 대한 역할 분담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관련 논의가 시급하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 보좌관은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일본의 방위문서 개정에 대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강화하고 방어하기 위한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EPA=연합뉴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 보좌관은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일본의 방위문서 개정에 대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강화하고 방어하기 위한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EPA=연합뉴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일본의 결정에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강화하고 방어하기 위한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치"라며 반겼다.
미국은 옛 소련과 맺은 '중거리 핵탄도미사일 제한 협정(INF)' 때문에 역내에 배치한 중거리 미사일(사거리 500~5500㎞)이 전무하다. 반면 중국은 1900발의 탄도미사일과 300발의 순항미사일을 배치했다. 한반도와 대만해협 유사시 중국이 이길 것이란 우려가 크다. 일본이 최대 500발의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사거리 1250㎞)을 구입하고 독자적인 장사정 미사일 개발·배치에 향후 5년간 5조 엔(약 48조원)을 쏟기로 한 배경이다.
일본은 현재 GDP의 1% 수준인 방위비도 5년 뒤 2%까지 크게 늘리기로 했다.
방위비 증액은 이번 일본 정부의 3대 안보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비정비계획) 개정에서 핵심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비롯한 동맹국들이 GDP의 2% 정도를 국방비로 편성해 안보 비용을 공동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방위비 증액을 통한 구체적인 전력 증강 방향은?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은 물론 미사일 위협을 조기에 탐지하기 위한 정찰위성과 경계 감시 체계를 확충할 것이다. 우주전, 전자전 등 미래전을 대비한 예산도 키운다. 특히 사이버 방어부대의 경우 기존 870명에서 1만명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일본은 방위산업 활성화도 명시했다. 방위산업을 국가발전 원동력의 하나로 설정할 것으로 본다. 또 경항공모함과 같은 전 세계 전력 투사 능력 확대에도 많은 방위비를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반격 능력' 확보와 관련해 오는 2027년까지 미국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500발을 구매할 계획이다. 사진은 미 해군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 AFP=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반격 능력' 확보와 관련해 오는 2027년까지 미국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500발을 구매할 계획이다. 사진은 미 해군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 AFP=연합뉴스

한국의 국방비 증대가 일본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처음 일본에 갔던 1992년 당시만 해도 한국의 국방예산 규모는 일본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한국 국방비가 일본 방위비를 넘어섰다. 평소 같으면 일본 국내에서 반발이 심할 법한데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한반도 안보전문가인 미치시다 나루시게(道下德成)) 일본 정책연구대학원 교수는 "북·중·러 연대와 한반도 유사시 대만 문제 등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군이 미군의 전략적 분산을 막아줘야 일본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간 군사협력을 심화할 것으로 보나.
현 정부는 비정상적으로 가동되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을 정상화하고 있다. 양국 간 정보공유는 군사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지소미아 개념이 필요하다. 한·미·일이 분리된 형태가 아니라 하나가 돼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북한의 다양한 위협을 아주 짧은 시간 내 대처하기 위해선 정보공유 대상을 북한의 핵·미사일로 한정할 게 아니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이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미사일 방어 체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꾸릴 지도 논의해야 한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