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반도체, ‘새우 몸집’ 될 위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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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호 35면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요즈음 인기 있는 재벌가 이야기 드라마 가운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새우가 고래 싸움에 등 터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주인공이 고심 끝에 발견한 답은 “몸집을 키워야 한다”였다.

고래와 새우 비유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밑에 깔린 패배주의와 체념론적인 뉘앙스 때문이다. 자칫 고래만 탓하고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소홀하기 쉽다. 그런데 정말 우리 국민들은 대단하다. 땀 흘려 일해 우리 경제의 몸집을 돌고래만큼은 만든 것이다. 1960년대 경공업, 1970년대 중화학공업, 그리고 2000년대 초 이래 정보통신, 컴퓨터 산업 등을 주축으로 성장했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됐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고비마다 정치 리더십의 결단과 정부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1960~70년대 경제성장을 주도한 박정희 대통령, 1997년 외환위기 직후 IT산업의 기반을 닦은 김대중 대통령이 본보기였다.

세수 감소와 부자 감세 이유로
반도체기업 세액 공제 후퇴 유감
형평성 못지않게 효율성도 중요
국가 차원 소탐대실 안 되도록 해야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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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도 정부 역할이 중요했다. 정부는 1979년 세계은행에서 도입한 2900만 달러 차관을 기반으로 2년 후 한국전자기술연구소(KETI)의 반도체 생산시설을 준공해 반도체산업 육성의 계기를 만들었다. 1986년에는 정부 주도로 민·관·학·연이 연합해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사업’ 계획을 출범시켰다. 지금 우리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반도체는 가전, 인공지능, 슈퍼컴퓨팅, 자율주행, 군사장비 등 수많은 관련 산업의 필수부품이다. 국부 창출뿐 아니라 군사안보 문제까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전략산업이다. 그처럼 중요하기에 이 분야에서 어떤 부품이나 공정을 장악하면, 다른 국가들을 의존하게 만들어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상호의존 관계를 통한 몸집 불리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만의 반도체회사 TSMC가 가동을 중단하면 중국도 미국도 큰 타격을 받기에 대만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소재 산업의 강대국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소재 산업이 GDP의 27%를 차지하고 1700여 개의 소재연구개발 기업이 활동하고 있으며, 전 세계 실리콘칩의 90% 이상이 네덜란드산 부품을 쓰고 있다. 반도체 전문가 권석준 교수에 의하면 이렇게 네덜란드의 반도체산업 경쟁력이 강화된 데는 기업들이 차세대 반도체 공정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정부가 강력하게 지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산·학·연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플랫폼을 만들도록 도왔는데, 권 교수는 이를 한국이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정부가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산·학·연·관의 효율적 연계시스템을 얼마나 잘 구축할지, 반도체 전략의 큰 그림을 어떻게 그려낼지, 그리고 정부 부처별로 중복되고 있는 비효율적 지원 시스템을 어떻게 다른 선진국들처럼 조정, 통합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국회 산자위는 지난 15일 국가첨단전략산업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특화단지 조성·지정,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범위 확대, 인허가 처리기간 단축, 첨단산업 인력양성을 위한 대학생 정원확대 등을 내용으로 담았다. 전반적으로 맞는 방향이다. 그런데 대학생 정원확대는 수도권 대학정원 제한에 걸려 정해진 대학별 총원 안에서 다른 학과 정원을 줄여 반도체 관련 전공 학생 수를 늘리게 되어 있다. 이는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느 교수도 자기 학과 학생 정원을 줄여 반도체학과 쪽에 양보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여야 간에 합의가 안 되어 상임위 논의를 미뤄왔다. 그런데 반도체산업의 대단히 빠른 기술변화 사이클을 고려할 때 이 법안이 오히려 더 급하다.

먼저 기재부는 세수감소를 이유로 8% 이상의 세액공제를 반대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이 국제경쟁에서 이겨 성장한다면 세수는 오히려 훨씬 늘어날 것이다. 국가 차원의 소탐대실이 되지 않도록 긴 안목에서 전략적으로 결정해 주기 바란다.

야당은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여당의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 세액공제 주장을 반대하고 10-15-30%안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 세액공제를, 대만도 세액공제를 15%에서 25%로 올리는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야당이 중소기업-대기업 간 형평성을 중시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형평성과 전략적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할 좀 더 과감한 대안을 제시하면 어떨까? 기술적 취약성 때문에 국내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자립도는 30%에 그치고 아직도 일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대기업 고율 세액공제에 찬성해 주면서 동시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스타트업들, 중견, 중소기업들을 육성할 근본적 방안을 새로 마련한다면? 야당이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다.

GDP 규모가 우리보다 13배 큰 미국, 9배 큰 중국 그리고 일본과 대만이 우리보다 훨씬 더 기민하고, 일사불란하고, 치열하게 반도체산업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한국은 지금 자칫하면 서서히 새우의 몸집으로 되돌아갈 분기점에 와 있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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