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거리 좁혀 늘푸른 솔잎처럼, 합심해야 환한 세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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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호 30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미국의 크리스마스트리 농장 풍경. [중앙포토]

미국의 크리스마스트리 농장 풍경. [중앙포토]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이 곡은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크리스마스캐럴 ‘오, 탄넨바움(Tannenbaum)’을 번안한 노래다. 가사는 원래 전나무를 말한다. 전나무나 소나무와 같은 상록침엽수는 겨울에도 초록색 잎을 갖기 때문에 크리스마스트리에 적합하다. 그렇다면 이 나무들의 잎이 사시사철 초록색인 이유는 뭘까?

우선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엽록체 때문이다. 나뭇잎을 즙을 내서 걸러낸 후 원심 분리하면 초록색을 띠는 부분, 즉 엽록체만 가라앉는다. 이것을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내부의 내용물들을 충격으로부터 누그러지게 하는 스트로마(stroma)가 있고, 그 내부에 얇은 원판 모양의 주머니들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있는 틸라코이드(thylakoid)가 있다. ‘스트로마’는 그리스어로 ‘침대용 깔개’를 뜻하고, ‘틸라코이드’는 그리스어로 ‘틸라코스’와 ‘오이드’가 결합된 말로 ‘작은 주머니’와 ‘닮은 것’을 말한다. 작은 주머니들을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이미지로 엽록체를 상상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중 선명한 초록색은 틸라코이드에서 보이는데 이것을 색층 분석하면 청록색, 초록색, 그리고 노란색과 주황색의 색소로 분리된다. 청록색 색소를 엽록소a, 초록색 색소를 엽록소b, 노란색과 주황색 색소를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라틴어로 ‘카로타’는 당근을 뜻함)라고 한다.

나뭇잎이 초록색인 이유는 엽록소a와 엽록소b 때문이며, 가을 나뭇잎에 붉은 단풍이 드는 것은 기온이 낮아지면서 엽록소가 먼저 파괴되고 카로티노이드만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록침엽수는 겨울이 되어도 엽록소가 파괴되지 않아서 계속 초록색을 유지한다.

엽록소, 인간 헤모글로빈과 구조 비슷

상록침엽수의 엽록소가 겨울에도 파괴되지 않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엽록소의 구조 및 광합성 과정을 알아야 한다. 엽록소의 화학적 구조는 취리히대학교 교수였던 리하르트 빌슈태터에 의해 발견됐다. 이 공로로 그는 식물학 분야로서는 처음으로 1915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는데, 특히 엽록소와 헤모글로빈(hemoglobin)과의 유사성을 밝혀냈다. ‘헤모(hemo-)’는 ‘혈액’을 뜻하는 그리스어 ‘하이마토스’에서 왔고, 단백질을 의미하는 ‘글로빈’과 결합되어 ‘헤모글로빈’은 ‘혈액 단백질’을 뜻한다.

미국의 화학자 멜빈 캘빈. 식물이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합성하는 과정을 밝혀냈다. [중앙포토]

미국의 화학자 멜빈 캘빈. 식물이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합성하는 과정을 밝혀냈다. [중앙포토]

리하르트 외에도 독일의 생화학자 한스 피셔는 1930년 헤모글로빈이 산화되어 생기는 색소인 헤민(hemin)의 성분을 분석하여 혈색소의 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으며, 미국의 멜빈 캘빈은 1961년 엽록소가 빛에너지로 물과 이산화탄소를 산소와 유기물로 바꾸는 과정을 밝혀낸 공로로, 또한 독일의 요한 다이젠호퍼와 로베르트 후버, 하르트무트 미헬은 1988년 광합성반응센터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한 공로로 각각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 엽록소는 식물이 초록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 외에도, 빛을 흡수해서 물과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산소와 포도당을 생산하는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과정을 나누어 명반응과 암반응(멜빈 캘빈의 이름을 따서 ‘켈빈 회로’라고도 함)이라고 하는데, 명반응은 빛에너지와 물을 화학에너지와 산소로 변환케 하는 것으로 엽록체 속에 있는 틸라코이드 막에서 이루어진다. 반면에 암반응은 엽록체의 완충부분인 스트로마에서 탄수화물을 생성케 한다. 명반응에서 틸라코이드에 있는 엽록소는 빛을 받아들이는 기능과 그 빛의 에너지를 붙잡아 두는 기능을 하는 두 가지 복합체가 있는데, 하나는 빛의 파장을 잘 잡아낸다고 하여 ‘안테나복합체’라고 하고 또 하나는 빛으로 높아진 에너지의 반응이 일어난다고 하여 ‘반응중심복합체’라고 한다. 이 반응 이후 스트로마에서 이 에너지를 필수 생존 에너지로 삼는 암반응으로 포도당까지 생성하는데, 이 전체 과정이 바로 광합성이다.

대부분의 엽록소가 겨울에 파괴되는 이유는 식물의 틸라코이드 막에 있는 단백질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량으로 손상되면 엽록소도 파괴된다. 틸라코이드 막에는 단백질 복합체가 두 개 있는데, 광계 I과 광계 II라고 한다. 광계 II에서 한편으로 식물에 흡수된 빛은 엽록소에 전달되며, 또 한편으로 식물 내부에 있던 물분자(H₂O)가 분해되면서 산소가 발생한다. 여기서 생성된 전자가 이동하면 ATP(adenosine triphosphate·아데노신 삼인산)라는 에너지 전달 물질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광계 I에서 빛을 흡수한 엽록소로 전달되면서 전자가 흥분 상태로 들떴다가 떨어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NADPH가 생성되도록 한다. 암반응이 일어나는 스트로마에서 한편으로 NADPH는 양성자(수소 양이온, H+)를 공급하고, 다른 한편으로 ATP가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포도당이 생성된다. 상록침엽수 이외의 나무들은 광계 I과 광계 II 사이의 간격이 벌어져 있는데 거기에 있는 단백질이 손상되어 엽록소가 파괴되고 그것 때문에 초록색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틸라코이드 막에 있는 단백질에 손상을 입히는 것일까? 범인은 바로 남아도는 빛에너지. 겨울에는 엽록소가 빛에너지를 흡수만 하고 기온이 낮은 관계로 다음 단계의 생화학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엽록소가 흡수한 빛에너지는 광합성에 쓰이지 못하고 남게 되는데, 남은 빛에너지가 도리어 광계들 사이에 포함된 다량의 단백질들에 피해를 주고 엽록소를 파괴하는 것이다.

갈등 딛고 함께 웃는 ‘푸른 새해’ 되길

독일의 유기화학자 한스 피셔. 혈색소의 구조를 밝혀 낸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중앙포토]

독일의 유기화학자 한스 피셔. 혈색소의 구조를 밝혀 낸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중앙포토]

하지만 상록침엽수는 기온이 낮아지더라도 단백질이 손상되지 않으며 엽록소가 기능을 잃지도 않는다. 스웨덴 우메오대학교의 스테판 얀센 교수에 따르면 겨울철에 빛에너지로부터 피해를 막는 “보호 장치”가 소나무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광계 II와 광계 I 단백질 복합체 사이의 거리 감소는 광계 II에서 광계 I로 에너지를 직접 전달할 확률을 증가시킨다. (……) 이 보호 장치는 북반구의 혹독한 겨울철 소나무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얀센 교수는 『소나무에 있어서 광계 II에서 광계 I로의 직접적 에너지 전달』(NATURE COMMUNICATIONS, 2020. 11)이라는 논문에서 혹독한 겨울철 상록침엽수의 경우 두 광계가 서로 거리를 좁히면서 반응을 일으키는 빛에너지가 직접 전달되어 둘 사이의 단백질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엽록소도 파괴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얀센 교수는 이것을 “보호 장치”라 한다. 이 장치 덕에 상록침엽수는 겨울철에도 초록색을 유지하며 광합성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리하르트와 피셔의 연구에 따르면, 엽록소의 중심원소는 마그네슘(Mg)이고 헤모글로빈의 경우는 철(Fe)인 것만 제외하면 두 색소는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 엽록소는 에너지와 포도당을 얻게 하고 헤모글로빈은 척추동물의 신체 내부에 산소를 운반한다. 두 색소 모두 동식물의 생명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다른 생명체를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으므로 ‘종속영양생물(heterotroph·그리스어로 ‘다른-양분’을 뜻함)’인 반면, 식물은 자신에게 필요한 양분을 엽록소를 통해 스스로 생산하므로 다른 생명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는 ‘독립영양생물(autotroph·그리스어로 ‘자기-양분’을 뜻함)’이다.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을 것 같지만 헤모글로빈 이외에 엽록소를 가진 ‘엽록소 인간’이 존재한다면 에너지와 영양 공급에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럴 수 없다.

그런데 실제 생태계 중에는 광합성을 이용하는 동물들이 있다. 2015년 학계에 발표된 해양생물인 푸른민달팽이는 나뭇잎을 닮은 자신의 몸에 직접 엽록소를 지닌 채 광합성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직까지는 이 외의 동물이 엽록소를 갖기는 불가능하지만 바다 동물인 산호와 도롱뇽은 엽록소를 가진 미세조류와 식물성 플랑크톤과의 공생을 통해 광합성 에너지를 얻는다. 반면 미세조류와 플랑크톤은 서식지와 광합성을 위한 화합물을 제공받으면서 공생하고 두 개체는 함께 있을 때 생존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이제 정리해 보자.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가 언제나 푸르른 이유는, 우선 사시사철 틸라코이드 주머니 속에 있으면서 엽록소를 포근한 담요처럼 감싸주는 스트로마의 완충 효과, 그리고 틸라코이드 막에 있는 두 광계들 사이의 거리 좁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소나무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혹독한 한파 속에서도 담요처럼 따뜻한 보호와 서로 다른 존재 사이의 거리 좁힘이 있을 때 그 사회는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바다 동물 산호와 도롱뇽이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광합성 식물과 공생하듯 우리도 나와 다른 처지의 이웃들에게 다가가 거리를 좁히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호하며 공존할 때 더 이상 스크루지 영감도 없고 성냥팔이 소녀도 없는 푸른 세상이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거리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웃으면서… 아이들도 노인들도” 마음을 모아 함께 “은종을 만들어 거리마다 크게 울리”게 될 것이다.

2023년 새해는 모든 갈등을 딛고 웃으면서 함께 만드는 푸르른 한 해, 아름다운 은빛 소식들로 가득한 한해가 되기를 소원한다.

김동훈 인문학자. 서양고전학자·철학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희랍과 로마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희랍어와 라틴어 및 고전과 인문학을 가르친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키워드 필로소피』  『별별명언』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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