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된 올댓재즈, 뮤직카우 수혈로 부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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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부활한 ‘올 댓 재즈’ 진낙원 사장

어린 시절부터 재즈 마니아에 빈티지 오디오 수집광이었던 진낙원 사장은 모든 재즈 뮤지션들의 아버지로 통한다. 박종근 기자

어린 시절부터 재즈 마니아에 빈티지 오디오 수집광이었던 진낙원 사장은 모든 재즈 뮤지션들의 아버지로 통한다. 박종근 기자

지난 19일, 최근 재오픈한 이태원 ‘올 댓 재즈’에서 가수 김종진의 환갑잔치가 열렸다. 1976년 문을 연 ‘올 댓 재즈’는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검사시절 단골집으로 화제가 된 국내 가장 오래된 재즈 클럽인데, 팬데믹에 쓰러져 폐업했다가 지난주 극적으로 부활했다.

이날 김종진과 기타리스트 한상원, 베이시스트 최원혁 등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선후배들은 흥건하게 취해 레전드 무대를 만들었다. 고수 중의 초고수 드림팀이 ‘브라보 마이 라이프’ ‘수지큐’ ‘미인’ 등을 즉흥 연주하니 이런 귀호강이 없었는데, 손님들도 대부분 뮤지션이었다. 환갑잔치도 흥겹지만, 사실 이들이 정말 기뻐하는 건 ‘올 댓 재즈’의 부활이었다.

‘올 댓 재즈’. 재즈 불모지 시절부터 40여 년간 연주자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해외 뮤지션들과 교류의 장까지 열어준 한국 재즈의 성지다. 이곳을 상업 시설을 넘어 서울에 몇 안 되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문화 공간으로 만든 건 ‘한국 재즈신의 아버지’ 진낙원 사장이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의 등장인물로도 유명한데, 별말 않고도 푸근한 미소로 사람을 사로잡는 마성의 매력이 있다.

차인표·신애라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

‘올 댓 재즈’에서 첫 프로 무대를 밟았다는 김종진(왼쪽)과 베이시스트 최원혁 등이 즉흥 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 신웅재]

‘올 댓 재즈’에서 첫 프로 무대를 밟았다는 김종진(왼쪽)과 베이시스트 최원혁 등이 즉흥 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 신웅재]

고교시절부터 단골이었다는 김종진이 여기서 환갑잔치를 연 것도 진낙원 사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처음 프로 무대에 발을 디뎌본 게 진 사장 덕이란다. “고2 때 이런 데 오는 건 불법이었거든요. 어느 오후 가게를 들여다보니 손님은 없고 진 사장님이 컵을 닦고 계셨어요. ‘기타 한 번 쳐도 돼요?’ 물으니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치세요’ 하시더군요. 손에 땀이 쏟아져 5분도 못 쳤는데, 여기서 연주하면 음료수를 준다면서 맥주를 달라는 제게 콜라를 갖다 주셨어요. 그렇게 우리 음악가들 모두의 아버지가 돼주신 분이에요. 제가 환갑이 될 때까지 음악으로 먹고 사는 것도 다 사장님이 만들어 주신 거라 생각해요.”

재오픈한 올 댓 재즈 무대에 선 김종진 [사진 신웅재]

재오픈한 올 댓 재즈 무대에 선 김종진 [사진 신웅재]

정작 진 사장은 이날을 기억 못했다. 후일 김종진이 밴드와 함께 오디션을 보러 온 것부터 생각난단다. “워낙 오래 됐으니까요. 젊은 친구들이 실력이 좋길래 무대를 열어줬죠. 80년대 초엔 퓨전이 드물었는데 종진이네가 유일하게 해서 좋았고. 스타가 되고 나선 자주 안 오더군요.(웃음)”

사실 ‘올 댓 재즈’의 부활을 도운 게 김종진과 허영만이다. 재오픈을 모색하던 진 사장과 음악 저작권료 조각투자 플랫폼 뮤직카우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음악 생태계 확장’을 표방하는 뮤직카우 서대경 대표에게도 ‘올 댓 재즈’ 투자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음악 시장의 뉴커머인 저희는 기존 플레이어들과 경쟁하려는 게 아니라 시장을 확대하려고 해요. 음악으로 번 돈을 음악의 본질로 환원하는 차원에서 비주류 음악가들을 지원하고 있죠. 40년 된 뉴욕의 재즈 클럽 ‘블루노트’보다 형님인 ‘올 댓 재즈’야 말로 자긍심을 갖고 지켜야 할 자산이다 싶었습니다.”

진 사장은 팬데믹을 버티고 버텼다. 1년 반 동안 개점휴업 상태로 매달 수천 만원의 임대료와 월급을 밑 빠진 독에 쏟아붓고 빈 깡통이 되어 지난해 폐업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새 가게를 ‘올 댓 재즈’의 헤리티지로 채울 수 있었다. 이태원과 삼각지 사이에 있던 첫 가게가 건물에서 쫓겨나 2011년 이전했던 해밀톤 호텔 뒷골목의 두 번째 가게는 규모가 커 재즈 바가 아니라 나이트클럽 분위기였던 것. “처음 가게와 디자인을 비슷하게 했어요. 가운데 기둥이 있는 것까지 옛날 가게를 닮았더군요. 층고도 낮아져서 아늑한 느낌이 들죠. 예전에 왔던 친구들은 옛날 느낌 난다고 하고, 손님들도 술맛 난다고 하네요.(웃음)”

처음엔 그도 손님이었다. 오픈 당시 19살이던 그는 ‘재즈 바’라는 게 생겼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국민학교 시절 친척 아저씨가 운영하던 댄스 교습소에서 데이브 브루벡의 ‘테이크 파이브’에 마음을 뺏긴 이래 재즈의 노예가 된 그다. 집에 LP 2000장으로 오디오룸을 차려놓고 절친이었던 고 김현식을 비롯해 엄인호, 이광조, 고 조덕환 등에게 연습실로 제공했다. 진작부터 밴드 뮤지션들의 든든한 뒷배였던 것이다.

김종진의 후배들이 맞춰 온 3단 축하케잌. 유주현 기자

김종진의 후배들이 맞춰 온 3단 축하케잌. 유주현 기자

“신촌에서 DJ를 하면서 음악하는 친구들과 친해졌어요. 나도 드럼을 좀 쳐서 같이 밴드를 해볼까 했는데, 하다보니 나는 백업하는 게 맞겠다 싶어 바로 포기했죠. 우리 집에서 손발을 맞추다 ‘신촌블루스’로 뭉쳤는데, 현식이도 가게에 자주 놀러왔어요. 술 취해서 ‘저스트 투 오브 어스’ 부르다가 가사를 홀라당 잊어버리곤 했죠. 걔는 워낙 능구렁이라 스캣을 하는 척 잘 넘어갔지만요.(웃음)”

뮤지컬 ‘시카고’의 메인테마에서 이름을 따 ‘올 댓 재즈’를 연 건 중국계 미국인 마명덕 사장이었다. 군수산업 로비스트이자 옥수동에서 ‘사파리 포스트’라는 카지노를 운영하던 큰손 마 사장은 음악을 잘 아는 단골 청년 진낙원에게 DJ, 매니저를 맡기며 가까이 뒀다. 진 사장이 가게를 인수한 건 마씨가 86년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국외로 쫓겨나면서다. “점잖고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분이었어요. 재즈를 워낙 좋아해서 한남동에 재즈 클럽을 한 개 더 열기도 했는데, 저를 많이 도와줬죠. 가게를 인수할 돈이 모자랐는데, 벌어서 갚으라더군요. 지난번 가게는 한 번 오셔서 흡족해 하셨죠. 그래도 너한테 물려주니 안 없어졌다면서요.”

하지만 80년대 재즈 불모지에서 바 운영은 쉽지 않았다. 빚보증을 섰다가 파산 위기까지 몰렸다. 창고에서 숙식하며 가게를 지킨 끝에 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 촬영지로 떡상했다. 차인표의 색소폰 연주에 신애라가 반하는 장면과 함께 순식간에 재즈가 로맨틱하고 세련된 신문물로 뜬 것이다. “둘이 결혼한다길래 나한테 양복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기대도 했었죠. 신애라라는 색시는 연예인 같지 않고 되게 착했는데 말이죠.(웃음)”

재오픈한 올 댓 재즈 무대에 선 김종진 [사진 신웅재]

재오픈한 올 댓 재즈 무대에 선 김종진 [사진 신웅재]

문밖 계단에 길게 줄을 설 정도로 재즈 붐이 일고, 많은 경쟁 업소가 생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올 댓 재즈’만은 한결같았다. 재즈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문을 두드리는 ‘아티스트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려면 반드시 진 사장의 깐깐한 오디션을 통과해야 하고, 신인은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 끼어 성장할 수 있다. 재오픈 다음날은 1세대  유복성씨가 사운드체크를 했다니 말 다했다.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연주자 중 그의 ‘원픽’은 누굴까. 그는 색소포니스트 고 정성조를 꼽았다.

“정성조씨는 기네스북에 올라야 해요. 내가 인수한 86년부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매주 일요일 연주를 했거든요. 거의 30년 개근을 했는데, 그렇게 한곳에서 계속 연주한 사람은 없을 걸요. 이정선씨와 서울예대에 최초의 실용음악과를 만들 땐 내가 교재를 만들어줬죠. 교수를 하면서도 그렇게 무대를 사랑했어요. 전형적인 하드밥 음악을 들으려면 일요일에 와야 했죠. 몇십 년된 밴드니 호흡도 최고였고요.”

40여년 단골 “진 사장 덕에 음악 즐겨”

아티스트도 훌륭하지만, 손님들은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연 주인장 진낙원이야말로 ‘올 댓 재즈의 힘’이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가게를 열었다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지방에서도 많이들 오시거든요. 먼 데서 음악 들으러 왔는데 문닫고 있으면 김새지 않겠어요. 그런데 요즘은 환경이 달라졌으니 생각을 좀 해 봐야겠어요.”

진낙원 사장과의 인터뷰는 만만치 않았다. 대화를 하다말고 다른 테이블로 쉼없이 오간다. 손님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은근히 뮤지션과 다리를 놓는 게 그의 스타일이라는데, 연주중인 색소폰 주자를 가리키며 “저 친구가 과천에서 빵집을 하는데, 빵이 진짜 맛있다”는 식이다. 이런 스킨십이야말로 장수 비결이라는 게 손님들의 이구동성이다. 재오픈날부터 매일 왔다는 이현준 오디오평론가는 “진낙원은 사랑이다. 외로운 사람이 혼자 음악을 들으러 와도 따스하게 맞아주는 그를 남녀노소가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올 댓 재즈의 진낙원 사장 [사진 신웅재]

올 댓 재즈의 진낙원 사장 [사진 신웅재]

그래선지 40여년 단골이라는 손님들도 여럿 있었다. 진 사장과 함께 『식객』에 티격태격 커플로 등장하는 올라운드 음악 마니아 ‘창식’씨는 김종진 환갑을 축하하며 손님들에게 와인 수십 병을 돌렸는데, “진 사장이 없었다면 내가 음악을 이렇게 좋아하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원의 터줏대감으로 46년차를 맞은 ‘올 댓 재즈’는 이제 영역을 넓힐 전망이다. 뮤직카우가 참여해 ‘올 댓 재즈’의 이름으로 정통 재즈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매장을 벗어난 기획을 하고 있다. 재즈 뮤지션이 많아진 만큼 설 자리도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용음악과 출신들이 많아지면서 연주자들 퀄리티가 굉장히 좋아졌어요. 이제 ‘K재즈’ 수출도 가능할 것 같고, 한국에도 젊은 팬들이 많아졌죠. 우리 가게도 평소엔 젊은 여성들이 압도적인데, 트렌드를 주도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입구도 빨간 조명으로 꾸민 거예요. 사진 찍기 좋으라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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