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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가 없다고?" 모짜르트 아버지는 왜 넝마 타령을 했을까[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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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있던 자리

아네테 케넬 지음
홍미경 옮김
지식의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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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컨슈머
J B 매키넌 지음
김하현 옮김
문학동네

서기 100년 무렵 중국의 채륜이 발명한 종이 제조기술은 이후 1000년 안팎이 지나서야 유럽에 전파됐다. 유럽의 종이 수요는 계몽주의의 확산과 함께 특히 18세기에 급증했는데, 당시 상황은 작곡가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출판업자에게 쓴 편지에도 드러난다. "힘들게 완성해낸 작품을 멋진 종이에 옮기지조차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라며 "넝마재고가 더 이상 없다고요? 우선 재고를 확보해야 한다고요?"라고 출판업자를 타박하는 내용이다.

오랜 세월 동안 종이는 넝마, 즉 헌옷이나 낡은 옷감을 재활용해 만드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 책  『미래가 있던 자리』에 따르면 넝마는 진작부터 확보 경쟁이 치열한 자원이었다. 넝마는 수집에 라이선스가 필요한 것은 물론 수출 금지령도 내려졌다. 사실 채륜의 종이도 나무껍질, 대마 조각, 섬유 폐기물, 헌 어망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 위대한 발명에서 보듯 재활용은 인류 역사에서 재활용이란 말이 나오기 전부터 일반적이었다. 독일 아헨에 전해지는 카를 대제의 의자는 고대 로마 건축 재료를 재활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18세기 밀라노의 각종 수리사를 그린 그림. 왼쪽부터 의자 수리사, 가위 수리사, 칼 수리사, [사진 지식의날개].

18세기 밀라노의 각종 수리사를 그린 그림. 왼쪽부터 의자 수리사, 가위 수리사, 칼 수리사, [사진 지식의날개].

역사학자이자 독일 만하임대학의 중세사 교수인 저자는 이런 '리사이클링'을 비롯해 지금 시대에 영감을 주는 관점에서 중세의 경제를 새롭게 조명한다. 흔히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과 달리 산업을 지속가능하게 운영한 '공유경제'도 있다. 스위스·독일·오스트리아 등 3국에 면한 보덴호의 어업은 어부조합, 상인조합의 자율적 규제 속에 수백 년 번성했다. 저자는 경제공동체로 상당한 부를 쌓은 베네딕트 수도회, 이름과 달리 수녀만 아니라 여성의 주거공동체로 기능한 베긴회 수녀원 등도 주목한다.

중세판 '마이크로크레디트'도 있다. 이탈리아 여러 도시가 '몬테 디 피에타'라는 이름으로 소시민 대상의 소액대출은행을 운영했다. '크라우드펀딩'도 있었다. 아비뇽 다리의 건설 과정이 바로 그 예다. 종교개혁을 촉발한 것으로 알려진 면벌부 역시 각 지역에서 제방이나 교량 같은 공공을 위한 건설 사업의 자금 모금 기능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통념과 달리 생동감이 넘치는 중세의 면면을 소개하면서 근대의, 산업혁명 이후 최근 200년 동안의 방식이 결코 인류에게 절대적이고 유일한 방식이 아님을 강조한다. 저자의 지적처럼, 달리 보면 200년이나 된 방식이다. 지금 시대와 이후에 적용하기엔 낡은 것일 수 있다. 책의 독일어 원제는 'Wir konnten auch anders: Eine kurze Geschichte der Nachhaltigkeit.' 직역하면 '우리는 다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지속 가능성의 짧은 역사'를 뜻한다. 책에는 일찌감치 16세기에 재단을 설립해 주택단지 건설 등 공익사업을 펼친 야코프 푸거 같은 부자의 기부 이야기, 현대 미니멀리즘의 사상적 원조격이란 점에서 디오게네스 등의 이야기도 나온다.

16세기 부유한 상인 야코프 푸거가 재단을 만들어 아우크스부르크에 건설한 사회주택단지를 그린 그림. [사진 지식의날개]

16세기 부유한 상인 야코프 푸거가 재단을 만들어 아우크스부르크에 건설한 사회주택단지를 그린 그림. [사진 지식의날개]

지금 시대의 방식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현대의 소비생활에 초점을 맞춘 『디컨슈머』(원제 The Day the World Stops Shopping)에도 드러난다. 알다시피 현대는 소비를 미덕으로 추앙해왔다. 백열전구의 짧은 수명에서 보듯 이른바 '계획적 진부화'는 신상품 판매를 촉진하는 불황 타개책으로 통용돼 왔다. 값싼 우산이든 비싼 스마트폰이든 이제는 고장난 물건을 고쳐 쓰는 것이 새것을 사는 것보다 쉽지 않다.

한데 이런 식의 소비는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최근, 이 책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본격화했다.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대로 계속되면 지구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점으로 모아진다. 저자는 유엔 국제자원전문가위원회를 인용해 21세기에는 소비가 인구수를 제치고 가장 큰 환경문제가 됐다고 전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신문방송학 교수인 저자는 우리가 소비를 멈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일종의 사고실험을 펼친다. 미국의 오랜 전통이던 일요일 휴업을 지금도 법률로 강제하는 버건 카운티 등 여러 현장도 찾아간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곳곳에서 뜻하지 않게 소비 중지를 현실화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편으로 팬데믹은 반려동물의 구매 등 또 다른 소비를 부추기기도 했다.

이 책은 탈소비, 비소비를 정해진 답처럼 내세우거나 개인의 윤리적·도덕적 선택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소비와 관련된 다양한 심리적 상태나 소비의 긍정적 효과 역시 간과하지 않는다. 덕분에 한층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읽힌다.

소비 중지가 부르는 가장 큰 걱정은 경제 성장의 위축일 터. 저자 역시 책 초반부터 이를 언급한다. 한데 가파른 경제 성장 역시 인류가 최근에야 체험한 일이다. 책에 따르면, GDP와 달리 사회와 환경의 피해를 고려하는 참진보지수(Genuine Progress Indicator)는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느리게 성장해왔다고 한다. 저자는 경제 성장을 통한 빈곤 탈출 등 지금까지의 성과를 부정하지 않지만, 한결 다양한 다른 방법들도 있다는 점 역시 이 책에 실린 여러 기업과 인물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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