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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결혼에서야 스스로 남편 선택...200년전 도시로 간 그녀[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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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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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로 가는 길
에이미 스탠리 지음
유강은 옮김
생각의힘

19세기의 첫해 1801년은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시대로, 간세이(寬政) 12년이다. 이보다 200년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패권을 차지한 후 일본 열도는 평화와 고요의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에도(현재의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걸어서 2주가량 걸리는 설국(雪國) 에치고(越後)의 이시가미(石神) 마을에선 1804년, 논픽션 『에도로 가는 길』의 주인공인 쓰네노(常野)가 태어났다. 딸의 아버지 불교 정토진종의 절 린센지(林泉寺)의 주지 승려인 에몬으로, 다른 교파와 달리 결혼도 하고 평신도처럼 생활했다.

 『에도로 가는 길』은 제목 그대로 쓰네노가 에치고국 이시가미 마을을 탈출해 에도에서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파노라마처럼 소개하는 소설 같은 책이다. 논픽션으로 분류한 것은 쓰네노가 남긴 편지 등 각종 실제 문서를 토대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은이가 일본 작가가 아니라 미국 백인 여성이란 점이 특이하다. 노스웨스턴대학 역사학 교수인 에이미 스탠리는 일본 근대 초기, 특히 에도를 가장 친근하게 여기는 전문가다. 쓰네노 가족이 남긴 편지와 문서들은 130㎞ 떨어진 니가타의 공립문서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관리자들이 쓰네노 이야기의 줄거리를 조사해 웹사이트에 올렸다. 이를 본 스탠리 교수는 힘겹게 문서들을 해독해 내고 현장 취재를 덧붙여 기품 있게 제작된 흑백영화 같은 책으로 빚어냈다.

관광객이 붐비는 도쿄 아사쿠사 센소지 앞길. 이 부근은 에도시대 대표적인 번화가였다. [AFP=연합뉴스]

관광객이 붐비는 도쿄 아사쿠사 센소지 앞길. 이 부근은 에도시대 대표적인 번화가였다. [AFP=연합뉴스]

쓰네노는 열두 살 때 부모님이 정해 준 남자와 첫 결혼을 했다. 이시가미 마을에서 290㎞나 떨어진 데와국 오이시다로 시집갔다가 15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로 두 번 더, 역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과 재혼한 후 모두 헤어졌다.
 세 번 이혼한 쓰네노에게 에도는 탈출구였다. 인근 마을의 하급 승려 지칸을 알게 된 쓰네노는 그에게 의탁해 에도로 떠나기로 했다. 거의 2주를 길에서 보낸 끝에 두 사람은 1839년 10월 6일 마침내 에도에 도착했다.

 이 책에는 쓰네노의 스토리 외에 19세기 인구 120만의 도시 에도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스탠리 교수는 당시 사무라이와 하타모토(쇼군 가문 직속 가신단 중 쇼군 알현 가능한 계급)의 생활과 번주의 주택, 역참 풍경 등을 책만 읽어도 머리에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리얼하게 그려냈다.

 쓰네노와 지칸은 간다 중심부의 서쪽 외곽인 미나가와초 뒷골목에 좁은 다다미방을 빌려 살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쓰네노는 고향에 편지를 쓰는 데 몰두했다. 오빠들에게 “추우니 옷을 보내 달라”고 재촉하고, 전당포에 맡겨 놓은 옷 찾는 법 등을 설명했다. 지칸은 쓰네노를 내버려두고 다른 데로 떠나 버렸다. 특별한 재주나 기술이 없었던 쓰네노는 하녀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온갖 잡일을 하며 주인들의 시중을 들었다.

 쓰네노는 에도 곳곳을 전전하다가 고향 에치고국의 이시가미 바로 옆 마을에서 온 남자 히로스케를 우연히 만난다. 그는 쓰네노가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네 번째 남편이 됐다. 그러나 “계획한 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는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다. 히로스케는 결국 쓰네노의 네 번째 이혼자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히로스케와 재결합한 쓰네노는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을 살다가 50세가 되기도 전에 먼저 세상을 떴다. 미국 페리 제독이 문호개방을 요구하며 에도에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어느 나라나 왕이나 황제, 귀족이나 대신 등 지배층을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를 배경으로 한 문서와 영화들은 많다. 쓰네노처럼 평민의 삶이 자세하게 남아 있는 경우는 적다. 이웃 나라 이야기이지만, 19세기 초 일본 일반인들의 실생활상을 따라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어 원제는 'Stranger in the Shogun's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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