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생산액 1000억 위안? 중국의 진짜 ‘실리콘밸리’는 여기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높이 71m의 거대한 좌상 미륵불인 '러산대불(樂山大佛)'로 유명한 쓰촨(四川)성 러산(樂山)시. 중국에서는 러산이 진짜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흔히, 첨단 기술 기업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두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밸리를 빗대어 표현하지만 러산의 실리콘밸리는 함의가 다르다. 말 그대로 중국 내 핵심적인 폴리실리콘 생산지인 것. 폴리실리콘은 잉곳, 웨이퍼, 셀, 모듈 등 태양광 발전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의 가장 처음에 위치한 핵심 기초 소재다. 쉽게 말해, 태양광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원재료다.

쓰촨성 러산시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석조 불상인 러산대불(樂山大佛) [사진 셔터스톡]

쓰촨성 러산시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석조 불상인 러산대불(樂山大佛) [사진 셔터스톡]

1954년, 제럴드 피어슨, 대릴 채핀, 캘빈 풀러 세 명의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실리콘을 원료로 한 태양전지를 개발해 세상에 내놨다. 변환 효율은 6%에 불과했지만,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태양에너지 실용화에 성공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문명 발전에 태양의 무한한 에너지를 활용하는, 인류의 소중한 꿈 중 하나가 실현된 셈”이라고 보도했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65년, 중국은 폴리실리콘 생산에 성공했다. 바로 러산에서였다. 이후 반세기 동안 러산은 수많은 실리콘 관련 기업들의 성공과 실패를 자양분 삼아 주요 생산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신화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러산의 고순도 실리콘 생산 능력은 세계 선두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바로 관련 기업의 존재다. 세계 10대 폴리실리콘 기업 중 8곳(2021년 기준, 코트라)이 중국에 있는데, 그중에서 세계 폴리실리콘 시장점유율 14.9%를 차지하는 퉁웨이구펀(通威股份)의 자회사 융샹구펀(永祥股份)이 러산에 자리 잡고 있다. 융샹은 지난해에만 약 18만t의 폴리실리콘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융샹은 2023년 말까지 생산량을 연 35만t으로 늘려 생산량 증대에 일조할 것이라 밝혔다.

이 밖에도 톈허(天合), 룽지(隆基), 징오(晶澳), 셰신(协鑫) 등 세계 10위권 태양광 선두 기업 중 절반이 러산에 정착했다. 해당 기업들은 올해 1분기 폴리실리콘 생산액 118억 2700만 위안(약 2조 3046억 원), 누적 생산량 3만여t의 생산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매체 핀완은 '러산에서 진행 중인 폴리실리콘 프로젝트가 모두 완성될 시 2023년 생산액은 1000억 위안(약 19조 4890억 원)에 육박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폴리실리콘과 웨이퍼, 지난해 중국의 폴리실리콘 생산량은 50만 5000t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78.7%에 달했다. [사진 셔터스톡]

폴리실리콘과 웨이퍼, 지난해 중국의 폴리실리콘 생산량은 50만 5000t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78.7%에 달했다. [사진 셔터스톡]

그런데, 왜 하필 쓰촨성 러산일까. 이곳은 어떻게 중국의 실리콘밸리가 된 걸까?

첫째, 풍부하고 저렴한 수력 자원 덕분이다. 폴리실리콘 생산원가(매출원가)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5%에 이른다. 단순한 모래를 발전 효율이 높은 물질로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한 화학 전기 반응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러산은 쓰촨성의 6개 수력발전 산업시범구 중 하나로 전기료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폴리실리콘 생산뿐만 아니라, 업스트림인 실리콘 재료와 실리콘 웨이퍼 등의 생산 단가도 낮춰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효하게 작용했다.

둘째,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따랐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태양광 에너지 산업의 중요한 원자재인 폴리실리콘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국산 폴리실리콘 생산력 증대에 힘써왔다. 그중에서도 러산이 폴리실리콘 생산 거점이 될 수 있었던 데는 국유기업 어메이반도체재료창(峨嵋半导体材料厂, 이하 어메이반도체)의 역할이 컸다.

1958년, 베이징 비철금속 연구소 338호 연구실의 연구원들은 중국 최초로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폴리실리콘의 순도가 매우 낮아, 실험실에서 산업 현장으로 가져갈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1964년 중국 정부 부처인 야금공업부는 국가 제3선 건설전략에 따라 338호실을 러산으로 이전하고 '야금공업부 베이징 비철금속 제1연구소'로 명명했다. 이에 러산이 폴리실리콘 연구·생산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고, 약 1년 만인 1964년, 산업용 폴리실리콘 생산에 성공했다. 이곳이 어메이반도체의 전신이다.

어메이반도체는 폴리실리콘과 반도체 재료를 생산하는 업체로 ▶1970~80년대에는 폴리실리콘 연구·개발 기지 역할 ▶1990년대에는 지멘스(Siemens) 공법 연구로 외국 기업의 기술 봉쇄 해제 ▶2000년에는 연간 1000t 규모의 폴리실리콘 생산 공장 건설로 산업 규모를 확장해 나갔다. 정부 지원과 기업의 꾸준한 노력으로 2016년 중국산 폴리실리콘 공급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어메이반도체가 1960년부터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이곳으로 인재가 몰려들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중국 정부는 2023년까지 러산을 31만t의 실리콘 원료 생산 능력을 갖춘 전국 태양광 산업 혁신 시범 기지로 조성한다고 선포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전체 전력 생산량의 3분의 1을 신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고 공언했다. 폴리실리콘 수요는 중국의 탄소 중립 정책과 맞물려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추세라면, 중국의 실리콘밸리 러산이 향후 글로벌 시장에 미칠 파급력은 미국의 그곳 못지않을 지도 모른다.

차이나랩 임서영 에디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