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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신냉전, 높아질 전략적 가치에 원칙 대응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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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5년간 방위비 총액을 25조9000억엔에서 43조엔으로 급증액했다. [사진 셔터스톡]

일본은 5년간 방위비 총액을 25조9000억엔에서 43조엔으로 급증액했다. [사진 셔터스톡]

올 한해 동아시아는 아레스(전쟁의 신)의 해였다. 그 대미를 장식한 12월 일본의 3대 안보 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방위계획대강·중기방위력정비계획) 개정은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자위대에 반격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로써 유사시 상대의 잠재적 공격 원점을 선제 타격하고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미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했을 때도 적국을 공격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정부는 부인하지만 그간 유지해 온 평화헌법 상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당할 때 방어용으로만 무력행사) 원칙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방패’만 가지고 있던 일본이 ‘창’도 가지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5년간 방위비 총액을 25조9000억엔에서 43조엔으로 급증액했다. 2027년에는 인도·독일·영국을 누르고 미국·중국에 이은 세계 3위 방위비 지출국이 된다. 늘어나는 방위비 17조엔은 대부분 미사일, 탄약 등 공격 무기 확보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환영했다. 백악관 성명을 통해 “방위 투자를 의미 있는 폭으로 늘리기로 한 일본의 목표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동맹은 더욱 강화하고 현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거친 반응을 보이며 ‘1호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이끄는 대규모 항모 전단을 오키나와섬 인근으로 보내 무력시위를 벌였다.

일본이 대미를 장식했다면 북한은 한해 내내 미사일과 방사포를 쏴대며 일본이 반격 능력 장착을 선언할 빌미를 제공했다. 우려됐던 제7차 핵실험은 벌이지 않았지만 각종 미사일과 방사포 등을 평균 9일에 한 번꼴로 동·서해상에 쏴댔다. 6·25 전쟁 이후 가장 잦은 빈도의 무력도발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탄도미사일 발사는 총 31차례 63발로 파악된다. 특히 11월 18일엔 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시험 발사했다. 2017년 11월 이후 5년 만의 ICBM 발사였다. 12월 16일엔 화성-17형에 장착할 수 있는 고체연료 엔진 실험에 성공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지난해 1월에 시험 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은 마하 10 수준으로 평가됐다. 이 모든 도발과 시험들이 한·일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하거나 미국을 겨냥하는 것들이었다.

미국의 대 중국 봉쇄에 맞서려는 중국은 경제와 기술 경쟁에 이어 군사 경쟁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5년 만에 치러진 공산당 당대회에서 “강대한 전략적 억지력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며 전략핵 전력 강화를 선언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40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한 상황에서, 현재 200∼300기 수준인 중국은 2027년 700기, 2030년까지 최소 1000기를 보유할 것으로 미 국방부는 보고 있다. 미군은 최근 남중국해 해상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인 JL-3 미사일을 탑재한 진(秦)급 094형 잠수함 6대가 주둔 중인 사실을 파악했다. 사거리가 1만㎞에 달하는 JL-3은 중국의 앞마당인 남중국해에서 발사해도 미국 본토 전체를 공격할 수 있다. 심한 소음 등으로 공해상에선 미국 감시망에 발각되기 일쑤이던 중국 잠수함이 더 이상 공해상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져 미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 국방 분야 싱크탱크인 전략예산평가센터(CSBA)의 요시하라 도시 선임연구원은 11월 열린 한 포럼에서 “중국은 자신들이 실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기만 하면 전쟁을 하지 않고서도 미국과 그 동맹국들 사이가 분열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시진핑은 당대회 연설에서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포기는 있을 수 없다며 무력 통일 의지를 분명히 했다. 2022년 한 해 동안 수시로 대만 인근 해역에 대규모 군용기를 띄웠다. 중국은 러시아와 연합해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막아내는 등 북·러와 결속을 다지고 있다.

최근 미 국방부는 2022 국방전략보고서(NDS)에서 중국을 가장 중요한 전략적 경쟁자로, 러시아는 가장 급박한 위협으로 지목했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결속과 두 블록의 위와 같은 대결 추세는 내년에도 유지되거나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개정된 일본 안보 문서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북·중·러를 ‘가상 적국’으로 한국, 미국과 대만을 ‘협력 국가’로 명시했다. 중국에 대해 ‘일본과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 사항’이며 ‘일본이 동맹국 등과 협력해 대응해야 하는,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은 ‘종전보다 더욱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으로, 러시아는 ‘중국과 전략적 연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맞물려, 안보상 강한 우려’라고 지칭했다. 한국에 대해선 변경 전과 똑같이 ‘지정학적으로도, 일본 안보에도 매우 중요한 이웃 나라’로 기술했고 대만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며 소중한 친구’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이 핵잠수함 기술 공유를 전제로 한 미국·영국·호주 안보 기구인 오커스(AUKUS)에 참여해야 한다거나 향후 참여할 것이란 주장과 관측들도 대두되고 있다.

국제정치학 이론 중에 동맹전이(alliance transition) 이론이 있다. ‘우리 쪽 동맹을 잘 관리하고 적대 동맹을 분열시켜 세력균형의 판세를 우세하게 변화시킨다’는 전략이다. 과거 미·소 냉전 때처럼 대립하는 두 적대 동맹세력이 존재할 경우, 각 동맹의 맹주국은 세력균형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국의 기존 동맹을 강화하고 ▶적대 동맹국들 간 균열을 조장하며 ▶상대 동맹국을 유인하려는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다.

현재 동아시아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두 동맹 세력이 대결하는 신냉전의 모습을 뚜렷이 보여주는 지역이다.

양 진영은 무력을 과시하지만 직접 충돌은 회피하면서 외교적 수단을 통해 상대 진영의 균열을 꾀하고 있다. 동맹전이론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한·미·일·대만 대 북·중·러 대결 구도에서 동맹 균열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는 어디일까. 한반도의 두 나라일 것이다. 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설 무렵 중국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원은 바이든 정부의 대 한국 정책에 대해 ‘북한을 끌어당기고(拉), 한국은 관리하고(管), 중국은 밀어낼(趕)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 ‘한국을 당기고(拉), 북한은 달래고(管), 미국과는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서도(不鬥) 밀쳐내려 할 것(趕)’으로 분석했다. 미국은 북한을, 중국은 한국을 끌어당겨 상대 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을 전략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은 올해 내내 핵과 ICBM, 극초음속 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을 향상해 왔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굴욕 이후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향후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미 바이든 정부는 북한에 대한 독자 제재를 완화하지 않았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북한의 연이은 군사적 도발에 한국·일본과 함께 단호히 맞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김정은에게 ‘전제 조건 없이 자리에 앉겠다는 제안을 밝힌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미국의 스탠스는 상수인 반면 북한은 경제난으로 인한 정권 존립의 위기, 핵 무력이 충분히 달성됐는지에 대한 자체 판단 등이 대화 재개의 변수가 될 수 있다. 북한은 그간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태도를 돌변해왔다. 미국과 대화의 정지작업으로 미국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대신 안보 정책을 수정한 일본으로 비난의 총구를 돌릴 수도 있다.

중국은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사드 배치로 한국을 맹비난하며 산업·문화 부문에서 이른바 한한령을 내렸다. 이후 문재인 정권 5년 내내 한국을 경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취임식 특사로 시진핑의 최측근 왕치산 부총리가 방한했다. 이어 9월엔 권력서열 3위이자 역시 시진핑의 최측근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론 7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이후 한국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의 한한령이 풀렸다. 미·중 간 안보 경쟁과 경제·기술 부문의 탈동조화(decoupling), 반도체 전쟁 속에서, 한국이 모든 부문에서 미국과 완전히 동조화된다면 중국은 국익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상승한 것이다. 2023년 양국 관계에서 가장 큰 관심은 시진핑의 방한이다. 2022년 12월 한 달 동안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박진 외교부 장관과 화상회의에 이어 직접 방한까지 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두고 시진핑 방한이 머지않았다는 관측을 낳았다. 2023년에 방한하게 된다면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이후 9년 만이 된다.

미·중 경쟁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한국이 가지는 전략적 가치는 올라간다.  

북한 입장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원칙을 세우고 견지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박근혜 정부 전반기, 동아시아로의 재균형 전략을 펴던 미국과 취임 초기여서 권력이 불안정했던 시진핑 정권 사이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여로 인한 미국의 의심, 이 의심을 해소하고자 내린 사드 배치 결정으로 전략적 가치는 훼손됐다. 문재인 정권은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자 원칙 없는 반일을 내세워 국익을 손상시켰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이 집중돼 있으면서 가장 첨예한 안보 위협이 상존하는 지역이 동아시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생존과 번영, 나아가 통일을 위해선 정파적 이익을 완전히 뛰어넘는 ‘국익 최우선’이라는 원칙 위에 대미, 대중, 대일, 대러, 그리고 대북에 대한 국가 대전략을 확고히 해야 한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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