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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비웃듯 3천㎞ 무역로 뚫었다…위성 찍힌 '푸틴 어둠의 루트'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와 이란이 서방의 제재를 받지 않는 무역 통로를 개설해 활발하게 운항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볼고그라드를 거쳐 볼가강 하류 아스트라한까지 육상으로, 이곳에서 다시 카스피 해(海)를 이용해 이란으로 가는 3000㎞ 루트다. 서방의 제재를 받아온 두 나라가 새 무역 통로를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자체적인 선박 추적 자료 등을 인용해 "위성사진을 보면 100m 넘는 선박들이 정기적으로 줄을 지어 볼가 강으로 가는 통행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러시아와 이란 선박 수십 척이 운항 중이다"고 전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양국 무역통로는 러시아 아조프 해와 이란 카스피 해를 잇고, 궁극적으로는 인도양까지 이어지는 국제남북 운송로(INSTC)의 일부다. 아조프 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성과 중 하나로 꼽은 곳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내해가 된 아조프 해는 새로운 영토이고 러시아에 중요한 결과"라고 자찬했다.

유럽에서 가장 긴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러시아 남부도시 아스트라한에서 선박 수 척이 이동중인 모습을 포착한 위성사진. 국제남북운송로(INSTC)를 통하면 인도, 이란에서 아스트라한까지 물류 이송이 가능하다. 사진 맥사르 테크놀로지스 캡처

유럽에서 가장 긴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러시아 남부도시 아스트라한에서 선박 수 척이 이동중인 모습을 포착한 위성사진. 국제남북운송로(INSTC)를 통하면 인도, 이란에서 아스트라한까지 물류 이송이 가능하다. 사진 맥사르 테크놀로지스 캡처

INSTC는 러시아·이란·인도를 연결하는 육·해로 복합 운송로다. 여기를 통하면 인도가 자국 화물을 이란을 통해 러시아 남부 항구도시 아스트라한까지 옮길 수 있다. 아스트라한에서는 러시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으로 운송된다.

2000년 러시아·이란·인도가 INSTC 건설을 위한 3자 협정을 체결하고 2002년 비준 절차도 마쳤지만 20여년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3국 간 이해가 맞아떨어지자 급물살을 탔다.

인도화물운송업자 협회에 따르면 INSTC는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기존 무역로보다 거리는 40%, 비용은 30% 저렴하다. 시간상으로도 기존 항로가 40~60일이라면 INSTC는 25~30일로 단축된다.

INSTC를 통한 수출입 물자 운송이 활성화하면 2030년에는 유라시아, 남아시아, 걸프 지역 간 총 컨테이너 교역량의 75%를 감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와 이란의 밀착이 반(反) 서방동맹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왼쪽) 서기는 지난 11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오른쪽)과 이란에서 만나, 서방 정보기관에 맞서기 위한 공동방안을 논의했다. 파트루셰프 서기는 기자회견에서 "양국은 서방의 간섭에 맞서 공동으로 싸우고 제재 회피를 위해 상호 경제 관계를 확장해나가겠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러시아와 이란의 밀착이 반(反) 서방동맹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왼쪽) 서기는 지난 11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오른쪽)과 이란에서 만나, 서방 정보기관에 맞서기 위한 공동방안을 논의했다. 파트루셰프 서기는 기자회견에서 "양국은 서방의 간섭에 맞서 공동으로 싸우고 제재 회피를 위해 상호 경제 관계를 확장해나가겠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블룸버그는 "러시아와 이란 모두 서구로부터 제재 압박을 받자 협력에 나섰다"면서 "공동 목표는 서구 간섭으로부터 무역로를 지키고, 아시아 경제(인도양)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제재 및 러시아 외교 정책 전문가인 마리아 샤기나는 "서방 제재를 받지 않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라면서 "특히 서구가 중단하길 원하는 금수 물품, 무기 등의 운송 통로로 INSTC가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란 부셰르 원자력 발전소에 필요한 핵연료와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미 국무부 이란 특사인 로버트 말리는 블룸버그에 "양국 간 무기 수송 중단이 최우선 과제"라면서 "양국 무역 통로는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임스 오브라이언 미 국무부 제재정책조정관은 "이란-러시아 간 연결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제재를 회피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어떤 노력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와 이란의 교역액은 올해 연 50억 달러(약 6조3700억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세르게이 카티린 러시아 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달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회의에서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400억 달러(약 51조원)까지 갈 수 있는 '명확한 길'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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