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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석의 100년 산책

14살 때 죽음 앞두고 올린 기도, 평생 지킨 ‘기도하는 삶’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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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친구였던 안병욱 교수의 얘기가 생각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아름다웠던 사제 관계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과의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건이 허락한다면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라는 책자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마치 자기가 그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공감했다. 그래서 인류의 지혜와 교훈을 남겨 줄 수 있었다.

공자의 인품과 삶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성실(誠實)함이었다고 생각한다. 공자만큼 꾸밈없이 진실과 정직을 갖추고 산 사람이 없었을 것 같다. 그는 가난한 마음과 겸손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 정신의 그릇 속에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원천을 간직하고 살았다. 학문과 인격의 완성을 위해 평생 정진(精進)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그런 자아의 성실성이 인간관계에서는 인(仁)의 미덕을 탄생시켰다.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평생 베풀어 주었다. 그래서 스승 중의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나도 그의 제자였다면 인생이 얼마나 풍부하고 행복했을까, 하는 자부심을 가졌을 것 같다.

“건강 주시면 하느님 위해 살 것”
신앙은 철학과 체험이 승화된 것
공자의 ‘인’도 초월적 존재 상정
종교 본질은 윤리적 한계 넘어서

“아침에 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아”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러나 내가 공자를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이유의 하나는 그가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영원한 것’에의 그리움이다. 『논어』 이인(里仁)편에서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朝聞道 夕死可矣)고 고백하고 있다. 공자시대의 영원한 것은 ‘하늘의 도’였다. 종교적인 진리였다. 그 하늘의 정신적 실재가 인간화한 것이 인(仁)이었고, 인애(仁愛)를 간직한 사람이 성실한 삶을 찾아 누리게 되어 있다. 개인의 성실함이 인간관계의 어진 마음으로 진화하며, 그 어질다의 근원이 하늘과 우주의 진리라고 믿었다.

서양의 중세기는 기독교 세계관의 시대였다. 그 안에서도 ‘성실한 사람은 악마도 유혹하지 못하며 하느님도 그를 버리지 못한다’는 격언이 있다. 그런데 공자는 그 도는 내가 찾아서 발견하거나 체험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초월하는 실재’가 있어야 할 것임을 암시해 준다. 그 도를 가르쳐 주는 정신적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자세로 살았다.

철학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종교적 신앙의 문제는 윤리적 한계를 넘어 존재한다는 뜻이다. 성실함의 한계를 넘어 실재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사고와 지식보다 인륜적 삶의 가치를 포괄하면서 삶의 가치를 창출해 주는 더 높은 존재의 원천에서 주어진다는 논리다.

그것이 무엇인가. 철학의 동료들이 나에게 묻는 말이 그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도가 어떻게 종교적 신앙을 먼저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이미 철학의 탐구적 본분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다. 우리 세대의 선배였던 박종홍 교수도 같은 질문을 했다. 그는 “나는 철학적 진리의 여신 옷자락을 찾아 붙들고 눈물을 흘릴 수는 있어도 종교적 신앙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제자들에게 말하곤 했다. 신앙이 선행하면 진리의 여신은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위한 성실성은 종교 신앙과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때는 세계 휴머니스트협회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그 회원들 속에는 유신론자가 없었다. 종교적 신앙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도가 되기 전에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무신론 철학자의 저서도 읽었고 종교적 신앙이 없는 인생관과 세계관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그 결과는 내 종교적 신앙심을 더 승화시켜 주었을 뿐이다. 종교적 신앙은 인간의 성실성의 선물이나 결실이 아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가. 성실성 플러스 경건성이었다.

경건성은 우리가 모두 지니고 있는 성실함을 한 단계 더 높여준다. 반(反) 비(非)성실함이 아니고, 성실을 내포하는 초(超)성실이다. 나에게 그런 신념을 갖게 해 준 철학자는 칸트였다. 그의 종교철학 제목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이다. 종교는 초이성적인 영역의 실재임을 암시해준다. 나는 칸트를 경건성을 지닌 철학자라고 느꼈다. ‘요청적 유신론’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 경건성이 무엇인가. 나에게는 ‘기도하는 마음’이다. 내 인생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성실성을 갖춘 사람은 기도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공자의 고백이 바로 그런 뜻이었다. 도를 깨닫기 위해, 성실과 어진 마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기도에 관한 얘기가 있다. 공자가 신병으로 고통을 겪을 때 자로(子路)가 기도를 드리자고 했다. 얘기를 들은 공자가 내 건강을 위한 미신적인 기도는 원치 않으나 잘못을 뉘우치고 선을 실천하기 위해 신의 도움을 구한다는 뜻의 기도는 항상 드려왔다고 했다.

철학자 박종홍·김태길 교수의 귀의

공자에게만이 아니다. 친구인 김태길 교수도 기도드리는 말년을 지냈다. 박종홍 교수가 신앙인이 되고, 장례예배가 새문안장로교회에서 열린다는 신문 기사를 본 배종호 교수가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들려준 병중의 사연과 신앙적 회심을 전해 들은 배 교수가 남긴 말이다. “그래, 박 교수도 갈 곳이 없었겠지”라고 했다.

그렇다. 종교적 신앙은 그런 체험에 뒤따르는 인생의 승화된 삶이다. 나는 14살 때 삶의 종말인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께서 저에게도 어른이 될 때까지 살도록 건강을 허락해 주시면, 제가 나를 위해 살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는 기도였다. 기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것이 신앙적 체험이라고 믿는다. 철학의 진리는 선한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종교적 신앙은 내 삶의 목표와 인간의 영구한 희망을 남겨 주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