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널스들’…3교대 스트레스, 축구로 날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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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날에도 축구를 향한 그들의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안산시 현직 간호사들로 구성된 축구단 ‘골 때리는 널스들’ 선수들과 창단 산파 노릇을 한 강수일(뒷줄 가운데 검은 옷)이 지난 17일 안산대 운동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눈이 내리는 날에도 축구를 향한 그들의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안산시 현직 간호사들로 구성된 축구단 ‘골 때리는 널스들’ 선수들과 창단 산파 노릇을 한 강수일(뒷줄 가운데 검은 옷)이 지난 17일 안산대 운동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 17일 경기도 안산시 안산대학교 교정.

전날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얗게 변한 운동장에 축구 유니폼을 입은 한 무리의 여성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운동을 넘어 눈밭에 서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며 주저하는가 싶더니 이내 “재미있게 해보자”며 패스를 주고받았다. 이들의 정체는 ‘GOAL(골) 때리는 널스(nurse·간호사)들’. 안산 지역 병원과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현직 간호사 및 안산대 간호학과 학생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축구팀이다.

‘간호사 축구팀’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은 이 지역 연고 프로축구팀 안산 그리너스에서 활약 중인 다문화 출신 공격수 강수일(35)이다. 그는 간호사들이 최근 수년간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헌신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 우울증 수준의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축구팀을 만들었다.

폭설과 강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축구를 즐기는 골 때리는 널스들. 축구를 시작한 이후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선 기자

폭설과 강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축구를 즐기는 골 때리는 널스들. 축구를 시작한 이후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선 기자

강수일은 변성원 안산대 간호학과 교수, 김경수 헤브론 여성축구단장 등과 의기투합해 ‘우정재단’을 만들고, 안산시내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축구팀을 창단했다. 팀 명칭은 여성 축구를 주제로 한 TV 예능 프로그램(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땄다.

처음엔 10여 명으로 출발한 ‘골 때리는 널스들’은 현재 서른 명 수준으로 규모를 키웠다. 이들은 근무 일정을 조정해가며, 때로는 휴가까지 쓰면서 매주 토요일 오전에 열리는 훈련에 꼬박꼬박 참여한다. 변 교수는 “간호사는 3교대로 운영할 정도로 근무 일정이 빡빡한 직군이다. 성심성의껏 환자를 돌보느라 정작 자기 관리를 위한 활동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창단 초기엔 운동하다 다치면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간호사들이 많았지만, 훈련을 시작한 이후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참가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안산시 한사랑병원에 근무 중인 16년 차 한보라 간호사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의료계 종사자들이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방역과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나도 병원과 환자만 생각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면서 “엄마를 자주 만나지 못한 초등학생 아들이 우울증세로 인해 심리치료를 받는 걸 보며 처음으로 이 직업을 원망했다”고 털어놓았다.

한 간호사는 또 “수영·필라테스 등 다양한 운동을 해봤지만, 축구는 특별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도 야외에서 훈련하니 상쾌하다”면서 “비를 맞고 뛰거나 눈밭에서 공을 차도 즐겁다. 후배 간호사들에게도 축구를 적극적으로 권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골 때리는 널스들은 안산시 소재 병원과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현직 간호사들 및 간호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돼 창단했다. 김상선 기자

골 때리는 널스들은 안산시 소재 병원과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현직 간호사들 및 간호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돼 창단했다. 김상선 기자

보육교사 출신으로 안산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40대 만학도 김명화씨는 “시원하게 공을 차고 숨 가쁘게 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면서 “20대부터 40대까지 어우러지며 경기 중에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야말로 축구의 매력”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어 “여성이 하는 스포츠라면 에어로빅이나 필라테스를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최근엔 TV 프로그램 등의 영향으로 축구나씨름처럼 움직임이 많고 치열한 종목에 도전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면서 “19세 아들과 17세 딸도 ‘축구선수 엄마를 응원한다’며 힘을 실어준다”고 덧붙였다.

김경수 코치, 이세주 코치 등의 도움을 받아 훈련하는 골 때리는 널스들. 김상선 기자

김경수 코치, 이세주 코치 등의 도움을 받아 훈련하는 골 때리는 널스들. 김상선 기자

축구를 즐기는 여성의 인구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성인 기준 80개 팀 1812명이었던 여성 동호인 축구 인구는 올해 148개 팀 4212명으로 크게 늘었다. 1년 사이에 팀 기준 1.85배, 선수 기준으론 2.33배가 증가했다.

강수일은 “입소문이 퍼지면서 여러 도시에서 ‘우리도 참여하고 싶다’라거나 ‘우리 지역팀 창단을 도와 달라’고 연락을 해온다. 축구를 즐기는 여성들이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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