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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예능·오디션… OTT 몰아보기 콘텐트의 공통점은

중앙일보

입력

Editor's Note

권성민 PD를 만났습니다. 11년차 예능 PD인 그는 시골 할머니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가시나들’(MBC), MC와 게스트가 카톡으로만 대화하는 ‘톡이나 할까’(카카오TV) 등을 연출했습니다. 최근에는 『직면하는 마음』이라는 책도 출간했죠. 책에서 그는 PD로 일하는 소회와 대중 앞에 콘텐트를 내놓기 전 ‘쫄리는 마음’에 대해 고백합니다. 연출한 프로그램들이 새로운 형식이라 더욱 쫄린 적이 많았다고요.
10년 이상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며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권 PD에게 연출자로서의 고민과 콘텐트를 만들며 지키는 원칙에 대해 직접 들었습니다.

※ 이 기사는 ‘성장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트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콘텐트 비즈니스 설계자들 2022’ 18~19화 중 일부입니다.

10년간 미디어업계 변화에 대해 설명 중인 권PD ⓒ폴인

10년간 미디어업계 변화에 대해 설명 중인 권PD ⓒ폴인

예능 PD이자 글도 쓰고 있습니다. 두 일에 공통점이 있나요?

글을 쓰는 것도, 예능 PD로 일하는 것도 ‘쫄리는’ 순간이 많아요. 글 쓰는 일이 홀로 책임지는 느낌이라면, 예능 PD로 일하는 건 보통 20~30명의 팀원과 함께하는 일이다 보니 부담감을 느끼죠. 회사를 설득해 제작비를 받고 팀을 꾸리지만, 스스로 확신이 없어지는 순간도 있고요. 콘텐트를 만드는 게 대중의 반응을 직면하는 일이잖아요. 그때마다 쫄리죠. 중간 과정을 보여주면서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데, 반응을 확인하는 일은 매번 두렵고 피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두려움에 직면해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쫄렸던’ 순간이 있나요?

PD들이 비슷할 텐데요. 가편(가편집본)을 만들고, 내부 시사를 하는 과정이 있거든요. 가편 때 ‘어 이게 뭐지?’하는 반응을 볼 때가 그렇죠. 장면마다 ‘이런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설계했는데 사람들이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볼 때요. 예능이 소위 말하는 패턴이 있거든요. ‘이런 소재와 아이템이면, 이렇게 전개가 되겠구나’하고 예상할 수 있죠. 그런데 제가 만든 프로그램은 기존의 패턴이나 문법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더 쫄렸던 것 같아요.

올해로 11년 차입니다. 어떤 변화를 느끼나요?

미디어업계 자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일을 시작한 2012년만 해도 이제 막 종편이 출범했을 때였죠. CJ 계열 채널도 지금처럼 존재감은 없었어요. 당시는 무한도전 달력이 나오면 완판되고,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 음원이 멜론차트를 섭렵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지상파 드라마였던 ‘해를 품은 달’이 시청률 40~50%를 찍었고요. 그런 시기에 입사했으니 지상파 채널에 있다는 것으로 안정감을 느꼈죠.

최근 느끼는 건, 정말 각자도생의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예전에는 도제식으로 수련을 받아도 언젠가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었어요. 이제는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급변하는 콘텐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채널과 콘텐트가 나오고, 메타버스나 NFT까지 공부할 게 늘어났으니까요.

카카오TV로 이직한 뒤 달라진 게 있나요?

좋은 건 제약이 많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TV에 레귤러로 나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조건들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광고를 팔아야하고, 방송시간을 채워야 하니까 20분짜리를 만들 수는 없는 거죠. 시즌제를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방송사는 TV여서 갖춰야 하는 모양들이 있어요. 카카오TV에서 만드는 예능 대부분이 지상파에서는 만들 수 없는 것들이에요. 모양도, 형식도, 기술적으로도 그렇죠. 확실히 젊은 조직이어서 많은 제약 없이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어요. 지금 준비 중인 콘텐트도 호불호가 갈리는데, ‘못 보던 그림이니까 해보자’라고 했어요.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최근에는 지상파도 콘텐트 유통수익이 광고수익을 역전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요. 방송사가 플랫폼으로서의 지위가 줄어든 대신 OTT 채널‧ 해외판권 판매 등 스튜디오로서의 기능을 갖고 가는 거죠.

초기 카카오TV에서는 ‘모바일 중심’을 강조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

2020년 초에 합류했는데요. 지금은 방향이 바뀌었어요. 카카오라는 채널뿐만 아니라 OTT 채널이나 멀티플랫폼으로 볼 수 있는 콘텐트를 만들려고 해요. 제작비도 많이 들여 큰 프로젝트를 하려 하죠.

플랫폼 관련 변화는 기자들이 먼저 느꼈을 수 있는데요. 과거에는 기사를 쓰면 독자와 시청자가 바로 만났잖아요. 이제는 플랫폼의 선택을 받아야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제목이나 아이템도 클릭을 유도할 수 있는 걸로 뽑게 되고요. 그 과정을 이제 PD들도 체감하는 것 같아요. 방송을 내보내는 게 끝이 아닌 거죠. 넷플릭스와 같은 OTT에 팔릴지도 중요해진 거예요.
긍정적으로는 내수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가능성이 생겼어요. 넷플릭스 화제작이었던 ‘지금 우리 학교는’의 경우, 해외에 오히려 팬덤이 많았고요. 반면에 넷플릭스에 들어가기 위해 특정 장르나 문법에 쏠리는 현상도 생긴 것 같아요.

플랫폼의 변화가 콘텐트 형식이나 내용에도 영향을 줬나요?

OTT라는 시스템은 1편을 보고 다음 회차를 볼지 말지 선택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더 타이트하게 줄이게 되죠. 물론 TV 방송도 채널에서 이탈하는 일을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주어진 편성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원칙이 우선이거든요. 반면 OTT쪽은 ‘빈지워칭’(Binge Watching, 몰아보기)을 유도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긴장감이 다른 것 같아요.

카카오TV의 경우는 편성이 없으니까 늘어지는 구간은 계속해서 쳐낼 수 있어요. 그렇게 30분, 40분짜리로 만들면 훨씬 밀도 있게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잘려나가는 구간에도 미덕이 있을 텐데, 그걸 기다려주지 않는 거예요.

또,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은 한 회차에 이야기가 완결되잖아요. 이번 편이 재밌었다고 해도, 다음 편이 궁금하진 않죠. 다음 편을 보고 싶은 포맷은 장르적으로 정해져 있어요. 예를 들면, 오디션이나 연애 예능 같은 거죠. ‘저 출연자 어떻게 되는데?’가 궁금하잖아요. 커플이 될지, 누가 1등을 할지. 그러다 보니 이런 류의 OTT향 예능이 만들어지는 거죠.

OTT에 맞춰 콘텐트 포맷이 굳어지는군요.

최근 전 세계적인 콘텐트 마켓은 포맷 시장이에요. 예를 들면, ‘복면가왕’이나 ‘히든 싱어’ 같은 프로그램은 포맷을 사면, 출연진을 달리해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 포맷이 아니면 안 팔리는 거예요. 예측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으니까요. ‘스우파’나 ‘스맨파’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 포맷이 중요한 프로그램이죠.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연출자의 역량이 중요한 프로그램이 많아요. ‘나혼자 산다’와 같은 프로그램도 포맷보다는 구성력이나 연출자의 재량이 많이 들어가고 인형에 카메라를 넣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출을 지향하죠. 저는 연출자의 재량이 만드는 질감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한국의 콘텐트 흐름이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죠.

덧없다는 감각과 싸우는 일

 '톡이나할까' 촬영현장의 권PD ⓒ이희훈

'톡이나할까' 촬영현장의 권PD ⓒ이희훈

플랫폼이 늘며 콘텐트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제작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위의 PD들도 무력감을 많이 느껴요. ‘세상에 콘텐트가 너무 많은데, 내가 여기에 뭔가를 더 얹는 게 (제작비를 들여 만들) 가치가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하지만 드라이하게 직업인으로서 해야 할 몫이 있고, 그걸 넘어선 사명감은 조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요. 주변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의사는 아니지 않냐. 콘텐트가 없어도 사는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걸로 충분하지 않냐고요.” 물론 각자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죠.

‘콘텐트가 어떤 힘(영향력)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종종 던지게 되는데요.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열매를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빈곤을 주제로 방송을 만든다고 해서, 바로 문제가 해결되고 세상이 바뀌는 걸 보기는 어려운 거예요. 처음 PD가 됐을 때는 굉장한 프로그램을 만들 거라고 스스로 기대했는데, 내가 생각보다 보잘것없다는 걸 깨달았죠(웃음).
가수 윤종신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나는데요. 가수로서 전성기가 훨씬 더 이전이었지만, 여전히 플레이어로서 신곡을 내고 있잖아요. 꾸준히 곡을 낼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묻자 이런 말을 했어요.

(창작을 하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덧없다는 감각이 수시로 찾아오는데 그 생각과 싸우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요. 일하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태도인 것 같아요.

(후략)

더 많은 콘텐트를 보고 싶다면

‘콘텐트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해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콘텐트 업계의 변화와 함께 일과 삶의 철학에 대해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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