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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갈 때 아이 봐드려요"…日양육지원, 가장 중요한 원칙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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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7일 오전 11시 일본 오사카부 가시와라시 츠도이노히로바(모임 광장) ‘핫 스테이션’. 흘러나오는 동요에 맞춰 보육교사 2명과 봉사자 1명이 율동을 한다. 무릎에 아이를 한 명씩 앉혔다. 이들을 마주 보고 둥글게 앉은 엄마-아이 여러 쌍이 부지런히 따라 한다. 곳곳엔 장난감과 놀이 기구가 놓여 있다. 이곳은 가시와라시에 5곳 있는 자녀양육지원시설(센터) 중 하나다. 시 거주자라면 누구나 0~3세 자녀를 이곳 놀이 광장에 데려와 최대 2시간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 다른 아이 부모와 소통하고 보육 교사에게 육아 상담도 한다. 코로나19 이전 많을 때는 오전에만 엄마-아이 40여명이 찾았다.

일본 오사카부 가시와라시 츠도이노히로바(모임 광장) '핫 스테이션'의 모습. 오전 개방 시간이 마감돼 엄마, 아이 대부분은 떠나고 한 가족만 남았고, 자원봉사자가 놀잇감을 정리하고 있다. 황수연 기자.

일본 오사카부 가시와라시 츠도이노히로바(모임 광장) '핫 스테이션'의 모습. 오전 개방 시간이 마감돼 엄마, 아이 대부분은 떠나고 한 가족만 남았고, 자원봉사자가 놀잇감을 정리하고 있다. 황수연 기자.

돌쟁이 아이와 이곳을 찾은 한 이용자는 “둘이 집에 있으면 핸드폰이나 텔레비전을 보게 되는데 여기 오면 그런 게 없어서 좋다”라며 “딸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낯가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스 사나에 센터장은 “양육 경험이 없고 도움받을 사람이 없어 초보 부모가 지친다”라며 “이곳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교류의 장소”라고 말한다. 매달 특별 이벤트도 기획한다. 이달에는 크리스마스 기념 사진 찍기, 내달에는 정월 준비 등이 예정돼있다. 이스 센터장은 “부모가 오고 싶어지도록 여러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일시보육(시간제 보육)도 제공한다. 병원 이용, 취업 준비 등 사유가 있을 때 1시간에 800엔(약 7800원)을 주고 5세 이하 자녀를 최대 3시간까지 말길 수 있다.

같은 날 오후 2시 30분경, 이 지역 또 다른 자녀양육지원시설인 ‘스킵 키즈’에서도 5쌍의 엄마-아이가 놀고 있다. 여기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양육 지원 서비스를 추가 제공한다. 검진 뒤 발달 지연 등으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특별반에 배정한다. 연령에 따라 세 개 반(18개월, 24개월, 30개월)이 있어 석 달간(총 8차례) 무료로 놀이 치료와 부모 상담 등을 한다. 이 기간이 끝나고도 지원이 필요하면 치료를 이어갈 수 있게 한다. 심리상담사가 아이 상태를 체크하고 개별 치료 계획을 잡는다. 장애아 전문 시설로 가기 전 발달 장애 등이 의심되는 아이에게 무료로 관련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스쿠스쿠 방문’이라고 해서 보육시설 소속 보육교사와 함께 생후 7~8개월경의 영아 집을 찾아 나서는 재택방문 사업도 한다. ‘스쿠스쿠’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성장하다란 뜻이다. 부모가 가능한 시간대에 미리 약속을 잡고 15~20분가량 방문한다. 부모는 이때 발육이나 일상 육아에 대한 궁금증을 물을 수 있고 육아지원시설도 소개 받는다. 가시와라시의 자녀양육과 야마모토 나오키 과장은 “아이 발육이 늦거나 가정 환경에 문제가 있을 때 지원하기 위한 취지”라며 “시에서 특히 힘 기울이는 정책이며 정책 중에 가장 반응이 좋다”라고 했다.

일본 오사카부 가시와라시 츠도이노히로바(모임 광장) '핫 스테이션' 이용자. 이곳에는 0~3세 자녀를 데리고 와 최대 2시간 놀 수 있다. 황수연 기자.

일본 오사카부 가시와라시 츠도이노히로바(모임 광장) '핫 스테이션' 이용자. 이곳에는 0~3세 자녀를 데리고 와 최대 2시간 놀 수 있다. 황수연 기자.

야마모토 과장은 “이런 단독 시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일본에서는 이런 단독 시설의 형태보다 보육시설을 이용해 자녀양육지원을 더 확대해갈 것”이라며 “부모가 주거 지역에서 가능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네에 있는 보육소(어린이집), 인정어린이원(어린이집과 유치원 통합 형태), 유치원 등이 자녀양육지원 중추기관으로 역할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재희 시텐노지대학교 교수는 “일본에선 영아의 대기아동 문제와 저출산 해소를 위해 인정어린이원을 대폭 늘리면서 지역의 자녀양육지원을 담당하도록 규정했다”라며 “인정어린이원 안에 보육실을 지역자녀양육지원실로 정해 실내 놀이를 하고 날을 정해 실외 놀이터를 개방하는 등의 서비스를 한다. 자녀양육지원 담당 보육교사가 상담, 정보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부 가시와라시의 자녀양육지원센터인 '스킵 키즈'. 놀이 공간이 주 1회 오픈되고 이곳에서 발달 지연이 의심되는 영유아에게 치료 교실도 제공한다. 황수연 기자.

일본 오사카부 가시와라시의 자녀양육지원센터인 '스킵 키즈'. 놀이 공간이 주 1회 오픈되고 이곳에서 발달 지연이 의심되는 영유아에게 치료 교실도 제공한다. 황수연 기자.

원래 보육소였다가 2016년 도쿄도 분쿄구 내 1호 인정어린이원으로 인가받은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어린이원도 그렇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원에 다니지 않고 가정 보육하는 아동을 위해 주 1회 원을 오픈했다. 미야사토 아케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수는 “대학교 강의실을 조리실처럼 해 부모와 아이가 같이 간식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게 하고, 실외 놀이터에서 같이 놀 수 있다. 보육교사와 육아 관련 개별 상담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인정어린이원에서는 상시 운영되는 놀이 광장 같은 공간을 별도로 두기도 한다고 한다.

한재희 교수는 “일본은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육시설에 다니는 아이뿐 아니라 재택 양육자(기관 미이용)의 아이들도 혜택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며 “지역 보육시설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부모와 아이들이 교류할 장소를 운영한다”고 했다.

일본 도쿄도 분쿄구의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어린이원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이곳은 분쿄구 1호 인정어린이원으로 0~5세 영유아에 보육을 제공한다. 원에 다니지 않는 가정 양육 아동에게도 육아 상담과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지원해 지역의 자녀양육지원 기능을 담당한다. 황수연 기자.

일본 도쿄도 분쿄구의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어린이원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이곳은 분쿄구 1호 인정어린이원으로 0~5세 영유아에 보육을 제공한다. 원에 다니지 않는 가정 양육 아동에게도 육아 상담과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지원해 지역의 자녀양육지원 기능을 담당한다. 황수연 기자.

국내에선 자녀양육 지원을 담당하는 육아종합지원센터가 전국 130곳에 있다. 그러나 접근성이 떨어지고 지자체별 격차가 커 이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장난감 도서관 정도를 이용하지만 놀이 광장이나 시간제 보육 등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는 게 아니라 부모가 먼저 찾으려 하지 않는다. 나성웅 한국보육진흥원 원장은 “내년부터 부모급여 지급으로 영유아 가구의 가정 양육 비중이 늘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보육정책은 무상(시설)보육과 재정 지원에 집중한 탓에 가정 양육 중의 긴급 돌봄 공백 등 어려움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나 원장은 “130곳의 육아종합지원센터가 일시보육, 출산·육아 정보 제공, 부모 교육과 상담 등의 종합 육아 지원을 위한 원스톱 플랫폼으로 역할할 수 있게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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