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크라도 '6·25 휴전' 길 밟나…"美, 러 완패 원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10개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크라이나 전쟁 10개월-무엇을 남겼나 ㊤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하무트 인근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향해 포격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하무트 인근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향해 포격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아 전 세계가 들떠도, 두 나라는 그러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크리스마스 이브(12월 24일)에 10개월을 맞고 해를 넘겨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미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누적 사상자는 20만명이 넘는다(미국 합동참모본부 추정). 전사자는 우크라이나군이 최대 6만, 러시아가 최대 2만여 명에 이르고, 민간인도 3만명 넘게 숨진 것으로 관측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1633만명의 우크라이나 국민이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849만명을 제외해도 여전히 784만명 정도가 타지에서 피난민으로 지내고 있다.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리비우 인근에 자리한 우크라이나 전사자의 묘지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놓여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리비우 인근에 자리한 우크라이나 전사자의 묘지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놓여있다. AFP=연합뉴스

그럼에도 종전은 요원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크리스마스와 새해로 이어지는 연휴기간 휴전 가능성을 일축했다.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벨라루스를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군사훈련 강화에 합의하며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등에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남부 전략 요충지인 자포리자주 멜리토폴을 점령하기 위해 포격을 벌이는 중이다.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에서도 공세를 높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전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왔지만, 평화협상도 전혀 이뤄지지 않는 등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푸틴, 내년 초 전세 역전 노려”

지난 12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시내에 "러시아 영웅들에 영광을"이란 문구가 담긴 선전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2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시내에 "러시아 영웅들에 영광을"이란 문구가 담긴 선전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전쟁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건 러시아·우크라이나·미국의 ‘동상삼몽(同床三夢)’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 지속이 협상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추위 무기화’ 작전으로 올 겨울 우크라이나의 힘을 뺀 뒤, 지난 9월 30만명의 부분 동원령을 통해 끌어 모은 예비군을 전장에 모두 투입하는 내년 2~3월 전세 역전을 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푸틴의 최근 벨라루스 방문은 내년 초 우크라이나 북부나 키이우에 대한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국내에선 여전히 푸틴의 드라이브를 막을 세력이 마땅치 않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러 제재로 피해를 크게 입은 민간기업 소유주가 전쟁에 비판적이었지만 푸틴의 통제와 징벌에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러시아 시민사회의 취약성과 원자화한 상황을 고려하면 대중 봉기 발생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우크라 “협상은 러시아 시간만 벌어줄 뿐”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하무트에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참호 아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하무트에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참호 아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대화에 대해 불신이 크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 돈바스 분쟁 등에서 지난 8년간 전투를 벌이는 중에도 러시아와 협상을 벌였지만 큰 진전이 없었고, 오히려 러시아의 침공을 당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러시아 점령 하에 두는 걸 전제로 한 합의를 절대 원하지 않는다”며 “협상도 러시아가 군사를 정비해 재침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일 뿐이라 본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영토 완전 회복 ▶러시아의 전쟁 배상금 지급 ▶러시아에 대한 전쟁범죄 책임 추궁 등 러시아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을 내놓은 이유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美, 우크라·러 사이 줄타기?  

지난 1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카페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이용한 광고 포스터가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카페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이용한 광고 포스터가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속내도 두 나라와 다르다. 지난 4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이번 전쟁의 목표는 미래에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호 연구위원은 “오스틴 장관의 발언처럼 바이든 대통령은 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국력이 약해지는 걸 기대한다”며 “그렇다고 (우크라이나의 완승으로) 푸틴이 실각해 러시아가 혼란에 빠지거나,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는 건 미국이 원치 않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미국의 제한적 개입 때문에 전쟁이 장기화하고, 충돌 위협이 높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라 스트라우스 미국 전쟁과평화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에 쓴 기고문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인프라 시설 공격에 맞서 우크라이나의 보복 공격을 승인하고 이에 걸맞은 무기를 지원했다면 러시아는 폭격을 재고했을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는 소모전을 통해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걸 선호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전쟁 부담만 가중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우크라 무기 지원이 관건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결국 내년 초 전황이 협상 가능성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예측한 내년 전쟁 시나리오는 3가지다. 첫째, 러시아군이 내년 새로운 병력을 꾸려 재반격에 나서 점령지를 회복한다. 둘째, 현재의 교착상황이 2024년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셋째, 우크라이나가 돈바스와 자포리자 지역을 완전 장악하고 크림반도까지 위협한다.

어느 시나리오로 전개될 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칠 변수는 서방, 특히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전쟁의 진로와 향후 협상 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무기”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멈출 생각이 없지만 미국 내 사정은 어려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더 이상의 백지수표는 없다”(케빈 매카시 원내대표)며 백악관을 압박 중이라서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개전 이후 첫 해외 방문지로 미국을 택하고 백악관과 미 의회를 찾은 것도 미국의 초당적 지원을 얻기 위해서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를 겪는 유럽 역시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협상을 재촉하고 있다.

지난 2006년 한국 오산 미군기지에 설치된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의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2006년 한국 오산 미군기지에 설치된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의 모습, AFP=연합뉴스

이에 미국이 패트리엇 미사일 같은 첨단무기로 지원을 확대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1일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유엔 헌장의 근본 원칙에 기반을 둔 ‘정의로운 평화’에 동의한다"고 밝히며 기존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다만 현재로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생각하는 합의 조건의 간극이 크다. 이에 평화협정보다는 한국전쟁 같은 정전(停戰)이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양국의 입장차가 크지만, 오랜 전쟁으로 손실도 크다”며 “양측은 한국전쟁과 같은 휴전에 큰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는 “남북한처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휴전협상 중 치열한 고지전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10개월-무엇을 남겼나 ㊦편은 12월 23일 선보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