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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인플레이션, 생활비 위기…전세계 우울한 크리스마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2일 영국 런던의 시민들이 '웜 뱅크(따뜻한 건물)'로 운영되는 오아시스센터에 앉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2일 영국 런던의 시민들이 '웜 뱅크(따뜻한 건물)'로 운영되는 오아시스센터에 앉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가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다. 3년간 지속한 코로나19와 11월째에 접어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유가·원자재 값 인상, 보호무역주의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이는 세계 시민에게 연료·식료품비 폭등과 고금리 부담을 안겼다. 영국 시민들은 난방비를 아끼려 집 근처 '웜뱅크(warm bank, 따뜻한 건물)'를 찾고,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독일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소매 판매가 줄었다. 아프리카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고사하고 가족과 나눌 저녁 한 끼를 걱정하고 있다.

영국 동부 입스위치에 있는 게인스버러도서관은 최근 젊은 가족과 전직 청소부, 식당 종업원의 피난처가 됐다고 가디언이 지난 13일 보도했다. 이 도서관은 영국에서 운영되는 3643곳 웜뱅크 중 한 곳이다.

칼라 프란체스카(41)는 곰팡이 핀 집을 피해 두 살배기 딸과 함께 낮에 도서관에서 지낸다. 집은 난방을 끄고 곰팡이 방지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정부기관에서 청소부로 일한 마이클 톰슨(57)도 추운 집을 피해 도서관에서 몸을 녹인다. 그는 가스요금을 아끼기 위해 매일 계량기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톰슨은 "(도서관은) 따뜻한 음료로 몸을 녹이고 수다를 떨 수 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다"고 했다. 도서관 사서들도 웜뱅크 이용자들이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게 음료와 무료 와이파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영국 런던의 한 시민이 푸드뱅크에서 식료품을 고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0월 31일 영국 런던의 한 시민이 푸드뱅크에서 식료품을 고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영국 가정의 평균 에너지(가스·전기) 요금은 1200파운드(약 187만원)였지만, 올해는 2500파운드(약 390만원)로 2배 이상 올랐다. 자선단체 조셉론트리파운데이션에 따르면 영국 430만 가구가 난방비 지출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올해 실질임금은 1977년 이후 사상 두 번째로 하락했다고 노동조합회의는 이달 초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영국의 소매 판매는 당초 0.3%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0.4% 줄었다. 블랙 프라이데이(11월 25일)와 카타르 축구월드컵을 앞두고 감소한 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과 (연료비 등) 비용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영국 콜린스사전은 '퍼머크라이시스(permanent+crisis, 장기적 위기)'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웜뱅크도 후보에 올랐다.

유럽 경제대국 독일도 불황에 대비해 지출을 줄이고 있다. 지난 16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소매업협회(HDE)를 인용해 지난 10월 소매 판매가 5% 줄어든 데 이어, 크리스마스 시즌 판매가 지난해보다 4% 감소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어린이용 작은 선물은 비슷하게 팔리지만 명품 등의 소비가 줄어들며, 2007년 이후 가장 저조할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은 올해 러시아산 가스가 끊기면서 난방비 걱정을 했지만, 수입 다변화와 온난한 겨울 등으로 비교적 잘 버티고 있다. 그러나 내년은 혹독할 것으로 관측된다. 리서치기업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앤드류 커닝엄은 독일 GDP가 다음 분기에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것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더 닫게 할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마스에 작은 선물이라도 살 수 있는 곳은 나은 편이다. 우간다·탄자니아와 같은 동아프리카 가정은 크리스마스 저녁에 가족끼리 한 끼 식사를 걱정하고 있다. 중동·동아프리카 전문매체 자와야(ZAWYA)는 이 지역의 많은 도시가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다고 지난 19일 전했다.

우간다는 연말연시에 가족과 만남을 위해 고향을 찾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올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매체에 따르면 여행 비용이 60%가량 올랐다.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6%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2.2%)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코로나19 기간 많은 우간다 사람들이 수입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는 치명적이다.

탄자니아는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낮은 물가상승률(10월 4.9%)을 기록하고 있지만, 치솟는 음식 가격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위협하고 있다고 자와야는 전했다. 킬리만자로에 거주하는 음제마는 "지난달 고기 1㎏을 8000실링(약 4400원)에 샀는데, 오늘은 1만실링(약 5500만원)이 됐다"고 말했다. 동부 해안 도시 다르에스살람에 사는 음빔비는 "설탕 1㎏이 작년 1500실링(약 820원)에서 3000실링(약 1650원)이 되고, 고기 1㎏은 몇 달 전 3000실링에서 1만실링이 됐다"며 "이번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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