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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디지털 토정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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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다이어트와 금연은 새해를 맞이하면 빠지지 않는 각오입니다. 비록 우리 중 일부가 성공하고 며칠도 지나지 않아 대부분 다시 자괴감에 빠질지라도, 새날이 떠오르기 전 선포하는 새로운 삶은 어제와 다른 나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방안에서의 결기만으로는 덧없이 흩어질 듯하여 새해 종소리를 듣기 위해 시내로 나가거나, 그 먼 동해 바닷가에 찾아가 일출을 맞이하는 것 역시 나의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픈 사람들의 의례라 할 수 있습니다.

신년 각오와 정월 떡국과 함께 우리네에게 또 익숙한 의례는 토정비결처럼 새해의 운세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대운이 들거나 삼재가 끝난다는 말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칠팔월에 물가를 조심하라는 뻔한 조언에도 감사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살아갈수록 알게 되는 겸허함과 비례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왜 새해 운세를 볼까
뻔한 조언에도 감사하는 마음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여러분의 행복을 응원합니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몇 년 전부터 저는 연초마다 디지털 토정비결이라는 농담 같은 주제로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출발은 유명한 저널리스트께서 올해의 트렌드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질문을 주신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질문에 넘어가는 달력처럼 한 해를 기준으로 우리 삶이 선명히 바뀌는 것은 아니라 ‘올해’를 말할 수는 없다 했지만, 그래도 해가 바뀌는 시점에 우리가 살펴야 할 중요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것이 매년 거듭되어 벌써 4년째 접어듭니다.

그 사이 팬데믹이 찾아오고 비대면이 선호되며 자동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전 지구적인 각자도생의 노력에 패권주의와 인플레이션 고통이 더해지며 인류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서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다시 돌아보고, 지켜보고, 내다보는 일을 매년 하면서 격랑 위의 작은 배 안에서 옹기종기 함께 보듬고 살아가는 우리가 참 가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풍랑 속에서 삶의 주체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 바람과 파도가 향하는 곳을 알려드리는 일이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은 살아오면서 계속 느낀 듯합니다. 장승이 서 있는 서낭당을 지나칠 때 괜스레 발걸음을 조심하고, 산 중턱 암자에 들러 풍광을 바라보고 내려오다 마주친 돌탑에는 작은 조약돌을 올려놓고 두 손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머나먼 이역의 도시에서 잠시 들른 성당에 초를 하나 밝히고, 먼저 세상을 살다 간 성인의 묘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웠습니다. 거대한 숲속이나 끝없는 바다 앞에서 느끼는 거룩함 역시 태초의 조상으로부터 얻은 형질이라 느낍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어릴 적 개울가에서 놀다 물에 빠질 뻔한 공포는 지금도 서늘하고, 간발의 차이로 자동차 사고 현장을 천만다행으로 빠져나온 기억은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잊지 못합니다. 세상이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으며 우리의 삶이 위태함은 개인의 범주에서도, 사회의 관점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상기됩니다.

그래서 더욱 신년의 운세를 찾는지도 모릅니다. 동쪽에서 오신다는 귀인이 반가운 것은 그가 올 때까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힘을 내기 위해서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귀인이 와서 손을 내밀었을 때 미처 귀한 사람인지 모르고 일상의 지친 모습으로 퉁명스레 대할까 두렵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가 올해 오지 않더라도 내년 아니면 몇 년 후에라도 올 것이란 희망으로 살아가고 싶기에, 한자로 가득 찬 예전의 책에서 나의 미래를 얻으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올해도 사람들은 떠오르는 새해를 보기 위해 높은 산, 바다로 향할 것입니다. 어제의 태양이 오늘의 태양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도, 그걸 바라보는 내가 다른 사람이기를 희망하기에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려 할 것입니다. 매일 지평선에 떠오른 태양이 만들어준 어제는 오늘과, 오늘은 내일과 그리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몇 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아이들은 훌쩍 자랐고 나의 주름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사이 읽은 책의 두께가 몇 뼘이 되었고 만난 이들과의 인연이 차곡차곡 쌓이며 나도 모르는 사이 자람은 쉬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해 큰 각오로 다시 시작하는 우리의 내일을 위해서, 깨어있는 모두의 쉼 없는 자람을 돕기 위해서, 그리고 어쨌든 살아갈 각자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서 올해도 디지털 토정비결은 여러분 곁으로 다가갑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