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시급한 연금 개혁, 총리에게 힘을 실어 줄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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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연금 개혁 성공의 조건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국회 연금특별위원회와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에서 연금 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연금특위는 내년 4월까지 논의 내용의 입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연구와 공론화를 충분히 마무리해서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엔 연금 개혁 완성판이 나오도록 지금부터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내년 3월 재정추계 결과 공표 후, 내년 10월에 개혁안을 최종적으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국회와 행정부의 추진 일정에 큰 차이가 난다. 임기 5년 동안 허송세월한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도 5년을 그냥 보낼 거 같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일정에는 연금 개혁의 절박감이 부족하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제안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연금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던 대선후보 시절 약속과도 괴리가 있다. 임기 말에 추진하다 여의치 않으면 차기 정부로 떠넘기겠다고 해서다. 우리 상황이 이렇게 해도 될 것인지 확인해 보자.

복지부·노동부·교육부·국방부 등 관련 부처의 협조가 필수
총리가 나서 부처 간 이견 조정하고 개혁방안 도출해야
1998년 국민연금 개혁 성공도 당시 총리실 주도로 가능해
제대로 된 연금 논의 진행하기 위해 총리에게 주도권 줘야

“재정의 지속성에 관해 전문적인 검정 기법을 활용하여 평가할 때, 대규모 재정적자가 계속됨은 현재의 재정 운용이 지속가능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장래 재정 운용 기조상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의무적 재정 지출의 높은 증가율을 고려하면, 국가 부채가 이미 위험한 수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아직 파국을 눈으로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차기 한국재정학회장 취임을 앞두고 쏟아 낸 소신 발언이다.

교육부엔 사학연금 담당 과도 없어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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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인구 급증으로 기초연금은 2030년 37조원, 2080년에는 300조원이 넘어간다. 10만원 인상하면 2030년 49조3000억원, 2080년 408조원으로 100조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더 지급하자는 정치권 입장은 ‘대상자를 줄이고 취약 노인에게 더 지급하라’는 OECD 권고안과 다르다. 비용은 많이 들면서 정작 노인 빈곤율은 크게 낮추지 못하는 최악의 방향이다. 필자가 연구 책임자로 국회 입법조사처에 제출할 보고서에 따르면 기금 소진 이후 부과 방식으로 운영할 경우 필요한 국민연금 보험료는 소득의 38%를 넘어선다. 2024년 일시에 보험료를 모두 인상하는 극단적인 가정에서도 적정 수준의 재정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1% 이상의 보험료율이 필요하다.

『2021 회계연도 공무원연금기금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공무원 재직자 126만명의 2021년 근무원가는 29조6000억원으로, 공무원 1인당 2430만원에 달한다. 공무원과 국가의 부담금 14조2000억원을 1인으로 환산한 1128만원은 공무원연금 운영원가의 48%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가 13만명의 공무원을 더 뽑아 부담금이 많이 늘어났음에도 올해 3조5000억원의 공무원연금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이유다.

지난 6일 발표된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조5000억원인 적자 보전액이 2030년 7조9000억원, 2070에 19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저출산으로 미래가 가장 암울한 사학연금의 주무 부처인 교육부에는 사학연금을 담당하는 과조차 없다. 사립학교 폐교 조건으로 30대부터 연금을 받는 수급자가 있는데도 말이다.

20대 “국민연금은 못 받는 돈”

이러한 상황에서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재정추계보고서는 비공개 상태다.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개혁 논의는 국회로 떠넘겨졌다. 정작 국회 연금특위에서는 짧은 특위 일정을 고려해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논의를 제외하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의 공적연금을 통합 운영하라’는 OECD 권고와 동떨어진 행보다. 특위 일정을 짧게 잡아 놓고는 시간이 부족하니 공무원연금 등은 제외하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에 초점을 맞춰 논의하자는 주장을 많은 국민이 동의할 수 있을까?

지난달 3일 건전재정포럼(대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주최한 ‘청년들이 공감하는 국민연금 개혁’의 토론자로 참석했다. 서울대 학생인 고병규씨가 ‘20대 청년 110명 대상의 국민연금 인식조사’를 발표했다. ‘시한폭탄, 낡은 동아줄, 밑 빠진 독, 해변의 모래성, 세대 갈등, 폭탄 돌리기, 못 받는 돈.’ 국민연금에서 가장 걱정되는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들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하다는 응답도 81.9%에 달했다. 토론자인 백경훈 청사진 대표는 지금 필요한 건 ‘미움받을 용기’라 말했다. 이동학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현재의 연금 논의 구조를 “철수와 영희가 밥값을 낼 텐데, 그들은 빼놓고 자기들만 비싼 회 먹으러 가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지금 여건은 2007년 국민연금 개혁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환경이다. 당시 개혁 추진 과정에 참여한 필자의 경험에 기반한 판단이다. 당시 대통령 지지율이 낮았고,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것이 국민연금 개혁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야당의 반대, 모든 계층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컸던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개혁했다. 연금 개혁 의지로 개혁이 이루어진 것이지, 상황이 좋아서 개혁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100년 후에도 연금 지급 가능한 일본

주호영 국회 연금특위 위원장은 특위 자문위원들에게 “정치적인 상황이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집권당과 야당이 연금 개혁의 정치적 부담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위원들의 발언을 모두 실명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국민·언론·위원회에 소속되지 않은 전문가가 논의 내용을 공유하며 연금 논의를 공론화할 수 있게 됐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최근 필자에게 “100만원 월급으로 9만원 보험료를 내면서 40만원 연금을 받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만약 이대로 둔다면 후세에게 죄를 짓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기일 차관 등 보건복지부 연금 라인이 지난 18~21일 일본 후생노동성을 방문했다. 100년 후에도 지급할 돈이 있으며, 공적연금 통합 운영을 이루어 낸 일본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서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역시 성창훈 경제구조개혁국 국장과 김현곤 재정혁신국 국장 중심으로 장단기 연금개편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경제구조개혁국은 연금보건경제과를 만들어서, 경제혁신국은 ‘재정비전 2050’을 통해 고민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운영을 책임지는 국민연금공단도 김태현 이사장과 권문일 연구원장 주도로, 논란이 많은 주제 중심의 간담회와 전문가 포럼을 개최하면서 팩트 확인과 연금 개혁 필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김동현 퇴직연금복지과장 중심으로 근로복지공단과 함께 퇴직연금 정착과 수익률 제고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연금 논의엔 관련 부처 협조 필수

류근관 전 통계청장의 노력으로 시작된, 통계청이 힘들게 추진하는 ‘포괄적 연금통계’는 내년 말에 자료 확보가 가능할 것 같다.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논의 결과를 공청회에 부칠 내년 8월 이전에 자료를 확보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하다. 국세청 등 정부 부처 간 협조를 통해 통계 자료를 적기에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연금 논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기획재정부·교육부·국방부·고용노동부·금융위원회·인사혁신처·국세청·통계청 등 관련 기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부처 간 이견 조정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적임자로 보인다. 한 총리는 2001년 한국 대표단과 OECD 사무국이 연금 개편 권고 내용으로 첨예하게 대립할 때 OECD 대사로 현장을 지켰다. 총리실 산하 산업연구원(KIET) 원장으로도 재직해 전문가 이해의 폭도 넓다. 총리를 보좌하는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국민연금심의위원장을 맡았다. 필자는 이 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또 방 실장이 기획예산처 심의관 때인 2006년에 세계은행과 IMF 본부를 함께 방문한 인연이 있다.

총리와 국무조정실장의 이처럼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혁 의지가 있는 부처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소극적인 부처는 다독여 가면서 제대로 된 연금 개혁 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 같다. 1998년 성공적인 국민연금 개혁도 당시 총리실 산하 사회보장심의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대통령실의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제대로 된 연금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총리에게 힘을 실어줄 때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