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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절반, 강자가 손해였다"…우크라 본 대만이 목숨 건 전략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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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ㆍ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비대칭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중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직면한 대만은 절박하다. 2022년 3월, 추궈정(邱國正) 대만 국방부장은 “우크라이나가 비대칭 전략을 통해 러시아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10월 10일, 차이잉원(蔡英文) 총통도 “포괄적 비대칭 전쟁수행 역량을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도 이에 호응해 10월 27일 발간한 ‘국방전략서(NDS)’에서 “대만의 비대칭적 자위능력 발전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비대칭 전략의 사례분석은 아르귄 토프트(Arreguin Toft)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1800년 이후 발생한 197개 전쟁사례를 분석한 결과 강자가 승리한 사례는 70.8%였다. 하지만, 약자가 승리한 사례도 29.2%에 달했다. 특히, 1950년대부터는 강대국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가 50% 이상으로 증가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대표적이다. 즉, 세계화의 확산, 인명 손실에 대한 부담, 여론의 중요성 등이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

 지난 8월 차아잉원 대만 총통(왼쪽)이 공군 기지를 방문해 전투기 조종사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8월 차아잉원 대만 총통(왼쪽)이 공군 기지를 방문해 전투기 조종사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비대칭 전략(asymmetric strategy)은 통상 ‘약자’가 시도한다. 약자가 적의 우세한 전투력 등 강점을 회피하고, 약점을 노림으로써 승리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약자의 방법ㆍ수단ㆍ의지, 그리고 외부 지원이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만이 비대칭 전략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근해 사수, 해안선에서 적 섬멸

지난 1월 4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대만 국방부의 자료를 근거로 ‘중국의 대만 침공 4단계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1단계는 훈련을 명분으로 군사력 집결하고 미사일 공격으로 핵심 군사시설 파괴, 2단계는 우주ㆍ사이버ㆍ전자전ㆍ정보전을 통해 국가 시스템 마비, 3단계는 대만 주변을 봉쇄하고 제공권 및 제해권 장악, 4단계는 상륙작전을 통해 대만의 전 지역을 점령한다. 중국군은 이미 1ㆍ2단계까지 수행 가능하며, 3ㆍ4단계를 위한 능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대만의 대응방법은 ‘국방 4개년 종합검토보고서(2021년 발간)’에 포함되어 있다. 동 문건에는 ‘근해 사수, 해안선에서 적 섬멸’이라고 명시돼 있다. 즉, 대만 근해에서 적의 제공 및 제해권 장악을 거부하고, 해안에 상륙하는 적을 섬멸함으로써 내륙 진출을 무산시키겠다는 의도이다. 따라서 결정적인 국면은 대만 근해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상륙작전이 이루어지는 해안선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대만 육군 AH-64 아파차 공격헬기가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아파치와 같은 전력은 대만에 상륙한 중국군을 격멸하기 위해 도입됐다. EPA=연합

대만 육군 AH-64 아파차 공격헬기가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아파치와 같은 전력은 대만에 상륙한 중국군을 격멸하기 위해 도입됐다. EPA=연합

비대칭 전략에서는 약자의 방법이 강자의 예상을 벗어났을 때 효과적이다. 하지만, 대만은 우크라이나처럼 적을 내륙으로 끌어들여서 피해를 강요할 수 있는 지리적 종심이 없다. 해안에서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가 수십 km에 불과하다. 더욱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승패가 ‘상륙작전 단계’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사실은 군사 상식에 해당하고, 쌍방이 모두 인지하고 있다. 결국, 비대칭 전략의 방법 측면에서는 대만이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성비가 높은 정밀타격 무기체계 위주

70년대 초까지, 대만의 군사전략 목표는 ‘본토 수복’이었다. 이후, 미ㆍ중 수교와 중국의 국력성장을 계기로 전략목표는 ‘방어’로 전환되었다. 무기체계도 비대칭성을 띠기 시작했다. 슝펑(雄風) 계열 순항미사일이 대표적이다. 아음속 대함 미사일(슝펑-1ㆍ2)에서 시작하여, 아음속 대지 순항미사일(슝펑-2E, 사거리 1000㎞ 이상)을 거쳐, 초음속 대함순항미사일(슝펑-3, 사거리 200~400㎞)로 발전하고 있다. 유사시, 중국의 본토와 함정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 확보를 추진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주목 받은 대표적 비대칭 무기는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고속다연장로켓(HIMARS), 넵튠(Neptune) 지대함미사일 등이다. 이들 무기체계의 공통점은 신속한 이동이 가능하고, 높은 가성비를 달성할 수 있으며, 정밀타격에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대만도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고속기동다연장로켓(HIMARS) 등을 추가 도입하기로 했다. 지대함미사일은 자체 개발한 슝펑-3에 추가해, 최근에 미국의 이동식 하푼지대함미사일(HCDS)의 대량 도입을 계약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하이마스를 사격하고 있다. EPA=연합

우크라이나군이 하이마스를 사격하고 있다. EPA=연합

해군 함정도 ‘소형’ 위주로 발전시키고 있다. 배수량 4500t급 방공 호위함 4척 건조 사업은 2200t급 차세대 경량 호위함 2척으로 대체되었다. 대만 특유의 비대칭성이 적용된 함정은 스텔스 초계함 ‘타장(塔江)’이다. 크기가 685t에 불과하지만, 최대속도 시속 71㎞로 기동하면서 슝펑-3 초음속 함대함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2021~26년 기간, 총 12척 건조가 진행 중이다. 항공모함과 강습상륙함을 표적으로 일명, ‘치고 빠지는 방식’의 해상전투를 준비하는 것이다. 또한, 4척의 노후 잠수함 대체를 위해 2017년부터 총 8척의 신형 잠수함사업이 진행하고 있다. 상륙 해안지역에 설치할 ‘기뢰’ 보유량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월, 대만 공군은 초기 단계에 있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임박한 상황에서 장기간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첨단 항공 플랫폼 개발을 시작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이미 계약이 체결된 F-16V 전투기 66대의 인수를 서두르면서 적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전투기를 보호하는 지하시설 확장, 첨단 지대공미사일, 공대지 및 공대함 정밀탄약 추가 확보 등에 나서고 있다. 대만은 ‘섬’이라는 특성상 해상 및 공중 봉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비하여 군수 장비 및 탄약의 비축량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대만의 비대칭 무기 확보는 군사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구매한 무기의 인도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이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연되고 있는 무기거래 규모가 약 187억 달러(약 25조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미 계약이 체결된 고속기동다연장로켓(HIMARS), 이동식 하푼지대함미사일(HCDS)도 2026년까지 대만에 인도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시진핑 주석이 군부에 2027년까지 침공준비를 완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힌바 있다. 비대칭 전략에 필요한 무기체계 확보도 ‘시간과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병역제도는 고통 감내 의지 표현  

비대칭 전략에서 약자의 ‘의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약자가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자가 전쟁을 지속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감수해야 할 고통이 크다면 물러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토프트의 전쟁사례 분석에서도 전쟁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약자의 승리 사례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약자의 정신적 의지가 강자의 물질적 우위를 상쇄할 때 비대칭 전략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대만 육군 장병이 포탄을 나르고 있다. EPA=연합

대만 육군 장병이 포탄을 나르고 있다. EPA=연합

이러한 관점에서 병역제도는 국가 구성원들이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도 2013년 10월 징병제도를 폐지했다가 크림반도 상실과 돈바스 분쟁을 겪고 나서야 10개월 만에 부활시킨 바 있다. 대만은 공식적으로 징병제와 모병제를 병행하고 있다. 징집 병사들은 신병훈련 위주의 4개월 복무를 마치면 예비군으로 전환된다. 징집병과 예비군의 전투력 발휘가 불가능한 구조이다. 지난해 10월,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대만의 징집병사들과 예비군을 ‘딸기병사’라고 칭하면서 조롱 섞인 비판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대만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의무 복무기간 연장’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2022년 12월 7일, 국방부장은 의무 복무기간을 1년으로 하는 방안을 연말에 공식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통부(한국의 대통령실)는 이와 관련 “일정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언론은 “여당이 11월 26일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2024년 1월 총통선거를 앞 둔 상황에서 정치적 이유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만약, 의무복무 기간 연장이 정치적 이유로 불발된다면 ‘대만이 과연 비대칭 전략을 수행할 의지가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외부의 지원도 대만의 의지와 능력에 좌우

비대칭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국가의 지원은 전쟁수행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무기체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저항의지를 강화하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한 바 있다. 특히,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의 본격적인 지원은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지킬 최소한의 의지와 능력이 있음을 입증’하면서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대만의 경우도 이와 같을 수 있다. 지난 10월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에 미국이 방어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할 책무가 있다(Yes, we have a commitment to do that)”고 말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의 대만 지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해군이 일본에 전진배치한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 이 항공모함은 대만 유사시 가장 먼저 투입될 전력이다. 미 해군

미국 해군이 일본에 전진배치한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 이 항공모함은 대만 유사시 가장 먼저 투입될 전력이다. 미 해군

하지만, 지원하는 방법은 가변적일 수 있다. 지난 10월 27일, 미국은 ‘국방전략서(NDS)’를 통해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의 역량 활용을 강조하면서, ‘monitor-and-respond approach’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상황의 전개 과정을 보면서, 군사력 사용 및 개입 방식 등을 결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대만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이 미국의 지원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비대칭 전략은 무기체계만 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방법ㆍ무기체계ㆍ의지, 그리고 외부의 지원 등이 상승효과(synergy effect)를 발휘해야 성공할 수 있다. 특히, 비대칭 전략은 강자의 물질적 우세 때문에 약자에게 더 많은 인적ㆍ물적 피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그러한 고통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결국, 대만의 비대칭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난제들이 가로놓여있다. 즉, “시간은 촉박한데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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