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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종학의 경영산책

대우조선 빠른 매각이 답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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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한화그룹이 2조원을 투자해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조양)의 최대주주로 오르는 내용의 계약을 지난 16일 산업은행과 체결했다. 대조양에서는 과거 여러 사건이 발생했었는데, 그중 2017년 밝혀진 3조원대 규모의 분식회계 사건이 특별하다. 보너스를 더 받기 위해 경영진과 다수의 직원이 공모해서 이익을 부풀렸고, 그 결과 받지 말았어야 할 보너스를 받은 액수가 5년 동안만 6000억원이 넘었다. 더 과거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당시 노무현과 이명박 정권에서 임명한 사장들이 경영을 담당했는데, 이들은 분식회계와는 별도로 다수의 횡령을 저질러 회삿돈을 빼돌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임명한 정권 최고위층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향응을 베풀었다고 알려졌다. 즉 회사를 잘 경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큰돈을 챙겨갈 수 있는지와 자신을 임명한 정권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였던 것 같다. 이런 일에 협조를 구하기 위해 분식회계를 통해 적자를 흑자로 조작해 직원들에게 두둑한 보너스를 챙겨줬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경영진의 행동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들의 과반수도 정치권 출신이었다. 즉 회사가 정권의 전리품처럼 취급되고 있었다.

‘회사-산은-정부-국민’ 중첩된 지배
기업이 정권 전리품으로 여겨지며
분식·횡령 같은 도덕적 해이 만연
새 정부 들어 빠른 매각 결정 다행

관리 위임받은 대리인이 자기 이익 추구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산업은행은 대조양을 엄밀히 감독하지 못해 이런 내막을 파악하지 못했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약 7조원의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됐는데도 불구하고 대조양은 아직 적자 상태다. ‘세금 먹는 하마’라고 부를 만하다. 그동안 일부 인사들은 대조양이 앞으로 오너 경영자 체제를 대체할 지배구조의 모범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우수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으로 수차례 선정됐을 정도다. 오너 경영자 체제가 제일 좋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제대로 견제받지 않고 방치되던 회사를 모범적이라고 칭송한다는 것은 황당하다.

대조양 사례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학술적으로는 ‘대리인 문제’라고 부른다. 본인-대리인 관계에서 본인으로부터 관리를 위임받은 대리인이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 본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소위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데, 이 문제 때문에 비효율성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쉽게 설명하면 내 돈은 아끼고 남의 돈(이 경우는 회삿돈이나 세금)은 막 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배주주가 50%의 지분을 가진 기업이라면 그 기업에서 발생한 손실 중 50%는 지배주주의 손해다. 따라서 지배주주는 자신이 직접 경영을 하거나 유능한 경영자를 고용해 경영을 맡김으로써 손실을 보지 않으려고 할 유인이 있다. 산업은행은 대조양의 지분 56%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산업은행이 개인주주였다면 대조양에 이런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도록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산업은행이 본인이고 대조양 경영진이 대리인이다. 그런데 좀 더 범위를 넓혀보면 산업은행의 주인은 대한민국 정부나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이나 여당으로 볼 수 있으므로, 정부가 본인이고 산업은행은 대리인이다. 그리고 정부에 대해서도 범위를 넓혀보면 국민이 본인이고 정부가 대리인이다. 즉 이들이 국민을 대신해 산업은행의 행동을 철저히 감시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처럼 본인-대리인 관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3개가 이어지기 때문에, 모두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만 했을 뿐 국민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국민 모두가 손해를 보는 일이 벌어졌다.

‘특혜 및 헐값 매각’ 비판 타당성 없어

사모펀드들이 인수한 부실기업들은 몇 년 이내에 구조조정을 하고 실적을 개선해 매각되는 데 반해, 산업은행은 대조양을 비롯한 자회사들을 빨리 매각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인센티브 구조에 있을 것이다. 사모펀드에서는 회사를 가장 잘 경영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 매각 시점까지 경영을 맡기고 매각 가격에 따라 확실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그에 반해 정치권에서 임명한 최고경영자는 임기도 짧고 빠른 매각을 할 인센티브도 없다. 일부에서는 퇴직자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산업은행이 자회사들을 매각할 의사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문제점을 줄이기 위해 산업은행은 인센티브 구조를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산업은행은 이번 사태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은 듯하다. 분식회계 적발 이후 전임 이동걸 회장은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서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했고, 적자가 계속 나던 HMM의 사장을 외부 전문가로 교체했다. 정권교체 이후 임명된 신임 강석훈 회장도 이에 못지않은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취임 6개월 만에 협상을 모두 끝내고 대조양을 매각하는 계약까지 체결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앞으로도 산업은행이 계속해서 이런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매각이 발표되자 일부에서는 7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는데 2조원에 회사를 넘긴다는 것은 한화에 대한 특혜이며 헐값매각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그 돈이 아까워서 대조양을 팔지 않는다면 앞으로 가치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2008년 6.3조원에 팔지 않았던 회사가 2조원짜리가 됐는데, 얼마나 어떻게 더 기다린다는 것인가? 산업은행이 2001년 대조양을 인수했었으므로, 이들에게는 21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 이제는 제대로 회사를 경영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넘겨야 한다. 그래야 아까운 세금을 절약해 더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다. 앞으로 한화가 훌륭한 경영진을 임명하고 회사를 환골탈태시켜, 외화를 벌어오고 고용을 창출하며 직원들에게 넉넉한 보수를 지급할 수 있는 좋은 회사로 대조양을 발전시키기 바란다.

◆최종학=서울대 경영대 학·석사, 미국 일리노이대 박사 학위 취득 후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서울대에서 회계학을 강의하고 있다. 학문 이론과 기업 현실 사례를 결합한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5권)로 유명하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